또다시 유류세 인하 카드 꺼내든 정부
인하분 반영 상황 모니터링 한다지만
2019년 모니터링 결과보고서도 없어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한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국민으로선 내심 반갑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분이 시장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감시도 하겠다고 밝혔으니, 안심도 된다. 하지만 정부의 말처럼 유류세 인하분이 시장에 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2018년 유류세를 낮췄을 때도 정부는 똑같은 약속을 했지만 공수표에 그쳤다. 정부는 당시 시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유류세 인하책의 결과보고서도 만들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시장에 유류세 인하분이 잘 반영되도록 감시하겠다지만 별도의 제재수단조차 없어 감시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기획재정부는 시장에 유류세 인하분이 잘 반영되도록 감시하겠다지만 별도의 제재수단조차 없어 감시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지난 10월 26일 정부(기획재정부)가 또다시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냈다. 이날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통해서다. 2018년 11월 한시적(인하율 조정 후 3개월 연장 포함 총 9개월) 유류세 인하 조치를 단행한 지 3년 만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자 물가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유류세율을 낮추겠다는 거다. 

정부가 내놓은 유류세 인하율은 20%다. 역대 최대 인하율이다. 인하 기간은 11월 12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약 6개월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석유류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면 L당 휘발유는 164원, 경유는 116원, LPG는 40원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세수는 2조5000억원가량 줄어든다. 

■변수❶ 주유소의 이상한 가격 = 민생 안정을 위한 조치인 만큼 국민으로선 반길 일이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 조치를 반기기 전에 생각해 볼 게 있다. 크게 두가지인데, 하나는 유류세 인하 조치가 기름값에 얼마나 잘 반영되느냐다. 2018년 11월 6일부터 2019년 5월 6일까지 6개월간 유류세를 15% 인하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국민이 유류세 인하를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속 시원하게 기름값이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은 당시 유류세 인하 후 기름값을 수시로 조사해서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유류세를 인하한 지 한달이 지난 시점에도 상당수 주유소는 유류세 인하를 반영한 가격으로 기름값을 낮추지 않았다. 

예컨대 유류세를 인하한 지 한달이 지난 시점(2018년 12월 6일)에 주유소가 국제유가 하락분까지 반영했다면 휘발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 조치 전(11월 5일)보다 L당 241원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를 반영한 주유소는 전국 1만1407곳 중 2743곳(24.1%)에 불과했다. 주유소 80%가량이 인하율을 제대로 반영한 건 유류세 인하 조치가 떨어진 지 두달이 흐른 뒤였다. 

반면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된 후 기름값은 빠르게 올랐다. 정부는 2019년 5월 6일 이후 유류세 인하율을 기존 15%에서 7%로 낮춰 기간을 연장했는데, 8일(5월 14일) 만에 휘발유 가격을 올린 주유소가 전체의 96.5%에 달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인 2019년 6월 6일엔 주유소들이 휘발유 가격을 L당 56.0원 인상했는데, 유류세 인하율 조정과 국제유가를 고려한 적절 인상 가격은 46.7원이었다. L당 9.3원을 더 올린 셈이었다. 

결국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빠르게, 내릴 때는 천천히’라는 공식이 그대로 적용됐다는 거다. 누군가는 줄어든 유류세로 배를 불리고, 원래 국민이 누렸어야 할 유류세 인하 효과는 반감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변수❷ 정부 뒤늦은 대처 =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유류세 인하율이 제대로 시장에 반영되지 않을 때 정부가 뭘 했느냐다. 2018년 유류세 인하 대책을 내놓을 당시 정부는 업계(정유소와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신속히 반영하도록 요청하고, 일별 가격보고제도를 통해 인하분이 적시에 반영되는지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정유사 간, 주유소 간 가격 담합 여부도 살펴보고, 소비자단체 등과 협력해 석유류 가격 감시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정유소든 주유소든 시장에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정부가 적극 대처하겠다는 경고성 시그널이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석유류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도록 돼있다”면서 “우리가 계획경제 체제가 아닌 이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상 없다”고 털어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류세 인하분이 시장에 적기에 반영되는지 모니터링하겠다던 정부는 관련 결과보고서조차 만들지 않았다. 당시 산자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모니터링은 했지만 공개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면서 “에너지석유사업감시단의 조사결과와 비슷하지 않겠는가”면서 엉뚱한 소리만 늘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다시 내놨으니, ‘실효성 논란’이 일 만하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에도 “유류세 인하분이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가도록 현장점검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수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더스쿠프가 기재부에 ‘2018~2019년 때와 달라진 현장점검 대책이 있는가’라고 묻자 담당 공무원은 이전과 똑같은 답을 내놨다.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것이다. 하지만 별도의 결과 자료를 내놓을 계획은 없다. 가격을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다.”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는 효과분석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다음엔 좀 더 개선된 정책을 내놓을 것 아닌가.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나 효과분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류세 인하 다른 속내 있나

그러자 일부에선 기재부의 갑작스러운 유류세 인하 조치 배경을 두고 의문을 제기한다.[※참고: 기재부는 10월 17일까지만 해도 “유류세 인하를 검토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과세수가 정부 예상치보다 10조여원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데, 초과세수액을 줄이려 억지로 돈을 쓰는 것 아니냐는 거다. 일반 기업에선 돈이 남으면 좋지만 정부가 돈을 남긴다는 건 예산운용을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다.

실제로 정부 예산운용을 책임지는 기재부는 지난 10월 20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세수 예측을 좀 더 정확하게 했더라면 코로나19 위기 당시 더 공격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었을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가 정책을 펼치면 당연히 ‘피드백’을 해야 한다. 현 정책을 점검해야 더 나은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는 2018~2019년 때와 마찬가지로 정책만 달랑 내놓고 결과보고서를 만들 생각은 없다. 정책이 국민 돈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잊은 모양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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