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분 반영률 형편 없는데
효과 분석도 없이 유류세 인하 연장
시장 감시한다더니 공정위 신고 0건
정유ㆍ주유업계만 배 불리는 정책

국제유가가 결국 배럴당 120달러(8일 기준)를 넘어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석유는 당분간 석유시장에 나오기 어려울 듯하다. 가뜩이나 고물가 때문에 민생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 셈이다. 그러자 정부가 그동안 해오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3개월간 연장하기로 했다. 국민들에게 도움이 좀 될까. 혹시 기름을 파는 업체들의 배만 기름지는 건 아닐까.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3개월 간 연장하기로 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3개월 간 연장하기로 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기획재정부)가 오는 4월 말에 종료될 예정이던 유류세 20% 인하 조치를 7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 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재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나온 결정이다. 국제유가 오름세로 물가가 치솟자 물가안정대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기로 한 거다. 

국제유가 상황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2일을 기점으로 모두 100달러를 넘겼다. 7일 현재 두바이유의 싱가포르 현물 거래 가격 추정치는 배럴당 125.19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뉴욕상업거래소 선물 거래 가격은 배럴당 123.21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의 런던선물거래소 선물 거래 가격도 배럴당 119.40달러를 찍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제유가 오름세가 계속되면 유류세 인하율을 3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유류세 인하의 실효성이다. 유류세 인하책은 국민이 체감해야 가치가 있지만, 지금까지 통계로 드러난 실효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한 주유소들이 많지 않아서다.

[※참고: 더스쿠프는 ‘주유소 10곳 중 1곳만 유류세율 인하분 제대로 반영(통권 471호)’ ‘결과보고서 하나 없는 정책, ‘유류세 인하책’ 실효성 있을까(통권 465호)’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유류세 인하 효과 보고서조차 내지 않고, 모니터링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지적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바뀐 게 없다. 이 문제는 뒷부분에서 다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주유소 기름값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민간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E컨슈머)의 통계에 따르면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분을 ‘기준치’대로 반영하는 주유소는 100곳 중 10곳이 채 안 된다.

[※참고: 여기서 ‘기준치’대로 반영한다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유류세 인하’는 기름값에 붙어 있던 세금을 깎아준다는 뜻이다. 예컨대 리터(L)당 1800원인 기름에 800원이 세금이라고 가정하면 정부가 800원 중 20%(160원)를 할인해주는 셈이다. 물론 국제유가는 계속 변하고, 국제유가가 국내유가에 반영되는 시간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유소들이 유류세 할인 정책을 시작하기 전보다 얼마나 더 낮춰서 판매해야 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유류세 인하분의 ‘기준치’다. E컨슈머는 이 기준치를 토대로 전국 주유소의 기름값 판매가격을 조사한 통계치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실시한 첫날인 지난해 11월 12일, 유류세 인하분 기준치만큼 휘발유 가격을 전날보다 낮춰 판매한 주유소는 13.7%에 불과했다. 일주일 후 이 비율은 0.5%포인트 늘어난 14.2%였다. 당시 정부와 주유소 업계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기존 기름을 먼저 소비해야 한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를 체감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 시간이 흐를수록 기준치만큼 휘발유 가격을 낮춰 판매한 주유소가 더 늘었을까. 그렇지 않다. 유류세 인하 한달 후, 유류세 인하분 기준치만큼 휘발유 가격을 낮춰 판매한 주유소 비율은 ‘일주일 후’ 시점(14.2%)보다 확 줄어든 0.6%였다. 이 비중은 두달 후엔 1.2%, 석달 후엔 3.5%로 점차 늘었지만 여전히 ‘일주일 후’ 시점보다는 훨씬 낮았다. 

상당수 주유소가 휘발유 가격을 유류세 인하분 기준치보다 훨씬 더 적게 내렸다는 건데, 과연 어느 정도일까. E컨슈머는 ‘유류세 인하 한달 후’ 시점부터 매월 유류세 인하분 기준치보다 적게 할인한 주유소들이 어느 정도 선에서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통계를 함께 발표하고 있다. 쉽게 말해, 유류세 인하분 기준치가 100원이라면 0~99원 수준으로 반영한 주유소들이 0원에 가깝게 반영했는지, 99원에 가깝게 반영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반영액을 세분화하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지만, 통계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한달 후 시점에 유류세 인하분 기준치의 60%보다 적게 인하한 주유소가 무려 전체의 50% 이상이었다. 이 비율은 두달 후엔 20%대까지 떨어졌지만, 석달 후엔 다시 40% 수준을 기록했다. 주유소들이 기준치의 60%만큼도 반영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는 거다.

경유의 유류세 인하분 반영률은 18.3%(1주일 후), 18.5%(한달 후), 24.0%(두달 후) 등으로 조금씩 높아졌지만, 미반영률이 높은 건 휘발유와 다르지 않았다.[※참고: 다만 석달 후 시점에서 경유의 유류세 인하분 반영 비율은 93.4%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주유소들이 경유 가격에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애쓴 결과로 보긴 어렵다. 기존 추세와 너무 달라서다. 따라서 경유 관련 통계는 후속 통계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앞에서 나열한 통계의 요점은 단 하나다. 정부가 유류세를 낮췄지만, 실제 기름값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도 정부의 평가는 다르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 덕분에 시중의 기름값이 조금은 싸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쉽게도 정부가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폈는지는 알 수 없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효과에 관한 분석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민간단체인 E컨슈머가 분석하는 걸 정작 정책추진자인 정부가 하지 않는다는 거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부는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업계를 유도할 방법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기름값은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류세를 낮췄다고 해도 담합 등으로 인한 불공정 행위가 아니면 제재를 할 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생각해볼 문제다. 정부가 국민(소비자)을 위해 유류세를 낮췄는데, 그 이득을 소비자가 아닌 다른 이가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다면 이는 세금을 빼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다. 고작 L당 10~20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분 반영률을 높이겠다면서 민관합동 모니터링을 했지만, 실효성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유류세 인하분 반영률을 높이겠다면서 민관합동 모니터링을 했지만, 실효성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연간 125억L다. L당 1원이면 125억원, 100원이면 1조2500억원이다.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결코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주유소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4대 정유사가 시장을 이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알뜰주유소나 고속도로 알뜰주유소 등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는 주유소들이다. 정부가 뒷짐만 진 채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실제로 정부는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주유소들을 적극적으로 적발해 분위기를 환기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유류세 인하분 반영 여부를 엄정하게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결과가 어땠는지 단 한번도 발표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 조치 이후, 불법행위로 인해 인하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처분을 내린 적도, 조사를 한 적도 없다”면서 “신고가 들어와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신고가 들어온 바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유류세 인하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무턱대고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을 꺼내 들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유류세 인하 정책의 수혜는 누구에게 가고 있는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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