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대한적십자사 인사 논란

대한적십자사는 국민의 적십자사회비와 헌혈사업 등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대한적십자사에 엄격한 청렴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인사 문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의 인사 논란은 고질병에 가깝다. 지난 3월엔 사무총장이 모럴해저드 논란으로 해임되더니, 최근엔 ‘깜깜이 깐부 인사’ 논란으로 시끄럽다. 

모두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 체제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대한적십자사 신 회장의 ‘맘대로 깐부 인사’ 논란을 단독 취재했다.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오른쪽)이 자신의 측근을 회장 특보로 위촉해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오른쪽)이 자신의 측근을 회장 특보로 위촉해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부회장과 회장 특별보좌관을 선임 기준도 없이 자신의 지인으로 채우는 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범죄 행위에 가까운 수준이다.” 지난 9월 23일 대한적십자사 노조 게시판에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단행한 인사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신 회장은 이보다 앞선 9월 1일 ‘경영컨설팅활동 회장 특별보좌역(이하 경영특보)’과 ‘남북협력추진활동 회장 특별보좌역’을 각각 위촉했다. 그중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사는 경영특보에 위촉된 정승진 전 A그룹 고문의 건이다.

대한적십자사 직원이 올린 글의 내용은 이렇다. “신희영 회장이 위촉한 특보 중 한명은 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친구에게 월 2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런 깜깜이 인사 전횡을 지켜보면서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부회장과 특보의 경력을 살펴보면 적십자사 사업의 특수성과는 전혀 무관한 이들이 전부다.” 신 회장이 지인을 부회장과 특보에 위촉해 ‘측근 경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오해”라면서 펄쩍 뛰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대한적십자사 시행규칙에 회장 또는 사무총장을 보좌하기 위한 특보를 둘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며 “경비 지급에 관한 내용도 시행규칙에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회장 특보의 활동비는 내부지침인 ‘특별보좌역의 위촉 및 운영에 관한 지침 제4조(수당 등)’를 따랐다”며 “이 지침에 따르면 회장 특보에게 월 150만~30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참고: 대한적십자사가 특보 위촉 근거로 내세운 시행규칙은 ‘본사직제 시행규칙 제3조(특별보좌역)’다. 시행규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특정업무에 관해 회장 또는 사무총장을 보좌하기 위해 약간 명의 보좌역을 둘 수 있다(제1항). 특정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지급할 수 있다. 다만, 직원이 특별보좌역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제2항).]

이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 노조가 애먼 트집을 잡고 있다는 건데,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신 회장의 ‘인사 실패’ 사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시계추를 2020년 11월로 돌려보자.

■사무총장 인사 실패 논란 = 그해 11월 16일 대한적십자사는 김태광 부산지사 사무처장을 제25대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신 회장의 서류·면접심사를 거쳤고, 중앙위원회 위원 28명(대한적십자사 회장 포함)이 승인했다. 김 총장이 임명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참고: 중앙위원회 위원은 회장, 전국대의원총회에서 선출한 중앙위원 19명과 중앙부처 장관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중앙부처는 기획재정부·교육부·법무부·통일부·행정안전부·국방부·보건복지부·외교부 등이다.]


하지만 김 전 총장의 선임 절차엔 큰 흠결이 있었다. 2015년 10월 김 전 총장은 대한적십자사 임직원행동강령 및 행위기준 제42조(임직원의 상호존중) 위반, 양성평등기본법 제30조(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범죄의 예방 및 성희롱 방지)와 경남혈액원 성희롱예방지침 제5조(고충전담창구) 위반으로 징계(견책)를 받았다.

일례로 김 전 총장은 2015년 경남혈액원 재직 시절, 여성 간호사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한다는 이유로 “살쪄서 유니폼 하의가 타이트하다” “바지가 너무 붙는다” “일자 몸매다” 등의 부적절한 농담을 던졌다. 간호사의 팔짱을 끼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안마를 한다’면서 어깨를 두드리고 주무르는 등 신체접촉도 했다. 대한적십자사가 김 전 총장이 ‘직원운영규정 제33조(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 이유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 측은 김 전 총장의 징계 사실을 임명 절차에서 감췄다. 중앙위 위원들에게 징계 내용을 공지하지도 않았다.[※참고:당시 신 회장이 김 전 총장의 징계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신 회장이 징계 내용을 알고 있었더라도 문제고, 몰랐어도 문제다. 전자라면 덮은 것이고, 후자라면 무능하단 방증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때부터 ‘신희영 체제’의 인사검증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는데, 이후 더 큰 사건이 벌어졌다.

김 전 총장의 ‘셀프특혜’ 논란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김 전 총장은 호텔 숙박비를 자신과 비서실용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대한적십자사 내부 규정 어디에도 임직원에게 숙박비를 제공하는 규정이 없었지만 김 전 총장은 자신의 돈처럼 썼다.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특별보좌역 인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특별보좌역 인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한적십자사는 김 총장의 호텔 숙박비 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뒤늦게 ‘내부규칙’까지 만들었다. ‘별정직원(사무총장)에 대한 주택 및 주택임차자금 대여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회장이 별도로 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전 총장 인사 실패에 셀프특혜까지…

김 전 총장 한명을 위한 시행규칙을 만든 셈이었다. 시행규칙을 제정하는 과정도 문제가 숱했다. 김 전 총장 취임 9일 만에 제정된 이 규정은 어떤 심의·의결기구도 거치지 않았다.

결국, 김 총장은 지난 3월 8일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됐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대한적십자사는 김 총장을 해임했다. 대한적십자사 노조 관계자는 “지난 3월 김태광 전 사무총장을 둘러싼 인사 문제와 셀프 특혜 논란이 불거지면서 신 회장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반발이 컸다”고 말했다.

■특보 위촉과 갑론을박 = 이런 상황에서 신 회장이 경영특보에 아무런 설명이나 소통 과정도 없이 ‘친구’를 앉혔으니, 노조가 반발하는 건 당연했다. 실제로 정 특보는 신 회장의 측근이다. 두 사람은 같은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했다. 북한에 병원을 짓는 대북사업도 함께했다. 정 특보는 당시 A그룹 임원으로 일하면서 신 회장의 대북의료지원사업을 도왔다.

물론 대한적십자사의 주장대로 회장 특보를 위촉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정 특보가 대한적십자사 특보로 활동할 만한 전문성을 지녔느냐다. 대한적십자사의 ‘특별보좌역의 위촉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살펴보자.

이 지침에 따르면 특보의 조건은 ▲적십자 사업에 영향력과 활동력이 인정되는 사람 중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 ▲적십자 사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앞선 두 조건과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 정 특보의 경력을 살펴보자. 정 특보는 A그룹 임원 출신이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구조조정본부에서 일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계열사 대표를 역임했다. 이후 A그룹 산하 야구단 대표(2011~2014년)와 상근 고문(2014~2015년)으로 근무한 뒤 퇴임했다. 2018년부터는 줄곧 부동산 개발 기업에 몸을 담았다.

신 회장과의 관계를 빼면 어디에서도 대한적십자사 업무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대한적십자사 노조가 신 회장이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맘대로 위촉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정 특보는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대기업 계열사 대표 등의 업무 경력을 갖고 있다”며 “지난 7월 출범한 적십자의료원의 조직진단과 경영컨설팅 등의 자문을 수행할 역량을 갖췄다고 판단해 위촉했다“고 밝혔다.

■ 위촉 전 터진 월권 논란 = 설득력이 아예 없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엔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정 특보의 ‘월권 논란’이다. 9월 1일 공식 위촉된 정 특보는 ‘임명장’을 받기도 전인 8월 세차례에 걸쳐 대한적십자사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이유는 역시 ‘임명되지도 않은’ 부회장의 임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부회장은 명예직이다. 소정의 활동비 정도만 받는다.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정 특보는 고위관계자를 첫번째 만난 자리에서 “연봉 1억2000만원을 맞춰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고위 관계자가 “규정상 불가하다”고 답하자, 두번째 만남에선 “임금을 줄 수 있는 한시적 직책은 없느냐”면서 7000만원의 임금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정 특보는 “능력 있는 사람을 활용하려면 제대로 임금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회장 대신 내가 나섰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도 “정 특보와 고위 관계자가 임금 문제를 논의한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임금을 올리는 방안이 적절하지 않다는 데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임명장 받기도 전에 인사 논의

하지만 정 특보와 대한적십자사 측의 주장과 달리 이 지점엔 문제점이 상당하다. 언급했듯 당시 정 특보는 임명장을 받기 전이었다. 정 특보에겐 부회장의 임금을 알아볼 권한이 없었다는 거다. 임명장을 받은 후 고위 관계자를 만났더라도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의 공식 임무는 회장의 ‘경영컨설팅 활동’이다.

인사 문제는 그의 권한 밖이다. 실제로 정 특보가 임명 전부터 움직이자 대한적십자사 안팎엔 “회장을 등에 업은 실세가 움직인다”는 뒷말이 나돌았다. 정 특보를 만난 고위 관계자도 아무런 권한이 없는 정 특보의 (부회장 임금 관련) 요청을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못했다. 정 특보가 어떤 생각을 가졌든 그것과 무관하게 대한적십사자 내부에선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던 거다.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사회비와 헌혈사업 등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일반기업보다 더 높은 청렴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사회비와 헌혈사업 등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일반기업보다 더 높은 청렴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사기업이 아니다. 국민이 납부한 적십자회비와 헌혈사업에서 나온 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임명되지도 않은 회장 측근이 고위 관계자에게 ‘임금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참고: 사실 정 특보가 대한적십자사 고위직 인사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익명을 원한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정 특보가 고위직 후보군의 인사 정보를 요청한 일이 있다”면서 “이 역시 임명 전에 있었던 일이다”고 털어놨다.]


특보는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업무를 보좌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있는 시스템이다. 일정한 활동기간이 있고, 월 150만~300만원(회장 특보 기준) 수준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물론 대한적십자사 시행규칙상 특보는 회장 맘대로 위촉할 수 있지만 임명 전에 공정하면서도 엄정한 임명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건 시대적 과제이자 공공기관의 의무다.

■논란 키운 신 회장의 답변 = 정 특보가 자신의 말대로 열심히 일하고 상당한 실적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인사 절차 탓에 대한적십자사 안팎엔 정 특보 관련 말들로 시끄럽다.

문제는 신 회장이 이런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노조가 특보 논란 관련 비판글을 게시판에 올리기 전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신 회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신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정씨를 특보에 선임한 것은 친구라서가 아니라 대기업 감사실에서 오래 근무한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대한적십자사) 감사실이 일을 못한다고 질책했던 것을 해결하려고 10개월이란 기간으로 임명했다.”

언뜻 봐도 적십자사의료원의 경영컨설팅을 맡기기 위해 특보를 위촉했다는 대한적십자사의 공식 입장과 다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신 회장의 말한 감사는 문제점을 조사하는 사후적인 감사가 아니다”며 “조직의 상황을 진단하고, 목적 달성에 필요한 것을 분석하는 컨설팅 관점의 감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신 회장이 밝힌 감사는 분명 전통적 의미의 ‘감사監査’다.

신 회장이 ‘깜깜이 인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신 회장은 성추행 논란이 있었던 김 전 사무총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번에도 특보를 위촉하는 과정에서 내부와 소통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제아무리 능력이 있고, 덕망이 있더라도 회장의 친구라면 ‘낙하산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검증 절차도 밟지 않고 특보에 오른 친구란 사람은 임명되기 전부터 부회장 임금 문제를 논의했다. ‘공정한 절차’가 화두인 요즘, 작은 기업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이곳은 공공기관인 대한적십자사이지 않은가.”

깜깜이 인사 막을 시스템 갖춰야


이제 공은 신 회장과 정 특보에게 넘어갔다. “열심히 일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정 특보는 그만한 실적을 남겨야 한다. 신 회장 역시 ‘깜깜이 인사’를 해명하고, 반대하는 쪽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회장이 맘대로 ‘깜깜이 인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스스로 바꿔야 한다.

신 회장은 지난 10월 14일 참석한 국정감사에서 ‘특보 임명 논란’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특보에 관한 오해를 일부 언론사와 소통해 해결했다.” 여기서 말한 일부 언론사가 더스쿠프라면 우리와 해결한 건 없다. 우리와 해결할 일도 아니다. 이 문제는 언론사가 아닌 내부에서 풀어야 한다. 그게 공공기관 수장의 책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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