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10년 비틀어진 역사
이통3사 견제 위해 도입됐지만
자금력 등에서 상대 되지 않아

지금은 퇴색할 대로 퇴색했지만 알뜰폰의 도입 취지는 다음과 같다. “이통3사가 통신 시장을 장악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완화하고, 통신 시장에 경쟁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통3사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결국 이통3사의 판이 돼버렸다. 자회사를 앞세워 시장에 침투한 이통3사를 막을 방법이 없 었기 때문이다. 그럼 알뜰폰은 왜 만든 걸까. 더스쿠프가 알뜰폰 10년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이통3사를 견제할 목적으로 도입된 알뜰폰의 의미가 무색해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통3사를 견제할 목적으로 도입된 알뜰폰의 의미가 무색해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기 알뜰폰 요금제를 쓰는 스마트폰 2대가 있다. 한쪽은 이통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알뜰폰 요금제를 쓰고, 다른 한쪽은 중소 알뜰폰 업체 요금제를 쓴다. 스마트폰 기종과 요금제 가격, 서비스 품질이 전부 동일하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텐가. 소비자는 십중팔구 이통3사를 선택할 것이다. 브랜드 후광효과에 AS 등 신뢰성도 이통3사가 높을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일까. 현재 알뜰폰 시장은 이통3사가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양정숙(무소속)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10월 말 기준 이통3사 자회사들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은 49.9%에 달했다. 알뜰폰 가입자가 증가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통3사의 점유율은 이미 절반을 넘어섰을 수도 있다.[※참고: 과기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알뜰폰 이용자는 1013만6238명으로 전체(7256만9554명)의 13.9%에 달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혹자는 ‘대기업이 알뜰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나가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물어볼지 모른다.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이통3사 알뜰폰을 쓰는 게 소비자 입장에선 이득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알뜰폰 제도가 통신망 시장을 독점한 이통3사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틀어진 역사❶ 방어벽 미비 = 도대체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시계추를 알뜰폰이 처음 등장한 12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10년 3월 정부는 전기통신사업법에 가상이동통신망 사업자(MVNO)를 위한 조항(제38조)을 신설했다. 이통3사가 장악하고 있는 통신망 시장을 경쟁체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법에 따라 전국에 기지국을 설치해야 하는 규정 탓에 통신망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웠던 신규 사업자가 대거 등장했다. 이통3사로부터 통신망을 임대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알뜰폰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통화 품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으면서도 요금제가 이통3사보다 싸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알뜰폰 가입자는 2011년 40만2000명에서 2012년 127만7000명으로 1년 만에 3.1배로 증가했다.

그 중심엔 신규 사업자들이 있었다. 2012년 4월 기준 알뜰폰 업체 ‘스페이스네트’의 가입자는 17만명(1위)을 넘어섰다. 국내 최초로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진 에넥스텔레콤의 가입자도 15만2000명(2위)에 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소 사업자에게 알뜰폰 사업은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통3사가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2012년 6월 알뜰폰 시장에 뛰어든 SK텔레콤 자회사 SK텔링크는 불과 7개월 만인 2013년 1월 10만 가입자시대를 열어젖혔다. KT 역시 자회사 KT엠모바일(2015년 4월)·스카이라이프(2020년 10월)를 통해 알뜰폰 유통을 시작했고, LG유플러스는 미디어로그(2014년 7월)에 이어 2019년 말 CJ헬로비전(현 LG헬로비전)까지 인수하면서 알뜰폰 시장을 두드렸다. 알뜰폰이 이통3사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지만 정작 이들의 진출을 막을 법적 수단은 없었다.

■비틀어진 역사❷ 기울어진 저울 = 저울은 당연히 이통3사 쪽으로 기울었다. 2017년 12월 26.6%였던 이통3사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은 2년 반만인 2020년 6월 37.4%까지 치솟았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업계 관계자들은 이통3사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한 이유를 ‘돈싸움’에서 찾는다. 신규 가입자에게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전자기기를 지급하거나(추첨 등) 일정 기간 요금제를 대폭 할인해준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거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사실 알뜰폰 이용자는 마케팅에 민감하다. 2년간 가입을 유지해야 하는 일반 요금제와 다르게 알뜰폰에는 약정조건이 없어서다. 이 때문인지 알뜰폰 가입자는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거나 더 저렴한 요금제가 나오면 통신사를 쉽게 갈아탄다. 중소 사업자들이 자금과 마케팅 여력이 충분한 이통3사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비틀어진 역사❸ 정책의 빈틈 = 물론 이런 과정에서 정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부는 알뜰폰 사업자들의 경영난을 돕기 위해 사업자들이 정부에 내야 할 전파 사용료(2020년 기준 총 350억원)를 2020년까지 면제해줬다.[※참고: 정부는 2021년엔 전파 사용료의 20%, 2022년엔 50%를 부과하는 등 비용 부담을 조절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망 도매대가(알뜰폰 사업자가 이통3사로부터 통신망을 빌리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도 인하하기 위해 이통3사와의 협상도 수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단순히 비용을 덜어주는 방법만으로 중소 사업자가 이통3사와 경쟁하는 건 달걀로 바위 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다.

국회에선 이통3사의 점유율을 50%로 제한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회에선 이통3사의 점유율을 50%로 제한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알뜰폰 사업자들이 마케팅 과열 경쟁을 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창직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사무국장은 “얼마 전 몇몇 알뜰폰 업체가 모여 마케팅 가이드라인에 관해 처음으로 의견을 나눴다”면서 “알뜰폰 사업자끼리 마케팅 유형이나 자금 투입 규모 등을 조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리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정부에서도 뒤늦게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 국회에선 이통3사 알뜰폰 자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이 총 5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점유율 상한제’를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점유율 상한제가 자칫하면 알뜰폰 시장의 성장세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단순히 이통3사의 점유율을 제한하기보다는 알뜰폰의 역할을 재조명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고심해야 한다”면서 “알뜰폰 사업자들이 유효경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중장기 로드맵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알뜰폰은 ‘이통3사 견제’라는 당초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예고된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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