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50개 기업 코로나19 전후 이익의 질 분석
48개 기업 이익의 질 나빠졌지만
평균 주가상승률은 48.3% 달해
성장성은 후퇴, 기업 가치는 거품
아이러니한 상황 갇힌 한국 경제

# 2년 전 불청객처럼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계 경제에 동시다발적인 충격파를 던졌다. 국제유가는 폭락과 급등을 반복했고, 글로벌 공급망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종잡을 수 없는 경기 상황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어야 할지 닫아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 이렇게 시작된 ‘변동성의 시대’에 우린 어떤 지표에서 미래 비전을 발견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대기업 150곳(이중 이익의 질이 마이너스 수치거나 300% 이상인 곳은 통계에서 제외ㆍ실제 분석 81곳)의 이익의 질質과 주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결론부터 말하면,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81개 기업 중 48개 기업의 이익이 질이 악화했지만, 81개 기업의 평균 주가는 되레 상승했다. 더 놀라운 건 이익의 질이 악화한 기업 48개의 주가(48.3%)가 그렇지 않은 기업(15.9%)보다 32.4%포인트나 더 뛰었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의 미래가 어두워졌다는 시그널이기도 하지만, 거품의 징조이기도 하다.

이익의 질은 기업의 지속적인 수익성과 미래 투자 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익의 질은 기업의 지속적인 수익성과 미래 투자 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일으킨 거대한 변동성은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과 주식시장의 투자자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겼다. 기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 속에서 투자자에게 미래 성장 가능성을 입증해야 하고, 투자자는 코로나19라는 대외적 리스크에도 믿고 베팅할 만한 기업을 탐색해야 해서다. 

물론 기업이 경영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판별할 지표가 없진 않다.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두 지표의 한계는 명확하다. 먼저, 매출액이 커도 지출한 비용이 많으면 이익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당기순이익은 기업의 영업활동뿐만 아니라 영업 외 부수적 활동을 통한 이익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기업이 본업을 통해 얻은 실질적 성과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 

그렇다면 기업과 투자자는 무슨 방법으로 투자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까. 바로 이 지점에서 살펴봐야 할 지표가 ‘이익의 질質’이다. 이익의 질은 기업의 당기순이익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으로 나누고, 이를 백분율로 환산한 수치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이익의 질이 좋다는 의미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당기순이익보다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생산ㆍ영업ㆍ투자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펼치려면 현금흐름이 충분해야 해서다. 기업이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면 원자재 조달, 광고비 집행, 원리금 상환, 임금 지급 등 경영활동에 문제가 생길 공산이 크다.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도 부족해진다. 연구ㆍ개발(R&D), 생산설비에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 쪼그라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본업(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늘리고, 이를 다시 생산ㆍ영업ㆍ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흐름을 변수로 활용한 이익의 질은 기업의 현재 가치와 미래 성장성을 모두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셈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의 이익의 질은 어땠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더스쿠프(The SCOOP)는 매출액(2020년 기준) 순으로 사업보고서가 있는 기업 150개를 선정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3분기와 이후인 2021년 3분기 이익의 질을 비교ㆍ분석해봤다.

단, 통계의 신뢰성을 위해 당기순이익과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의 차이가 지나치게 큰 경우(이익의 질 300% 초과), 마이너스 수치가 나오는 경우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이를 통해 총 81개 기업을 추렸다. 

■전체 통계의 기록 = 자, 그럼 그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코로나19 이후 지난해 3분기 국내 기업들의 평균 이익의 질은 86.7%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3분기(71.4%)보다 15.3%포인트 악화했다.

반면 같은 기간 총 당기순이익은 코로나19 이전 34조4963억원에서 이후 60조3432억원으로 74.9% 증가했다. 이익의 규모는 커졌지만 이익의 질은 되레 나빠진 거다. 

기업별로 살펴봐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81개 기업 중 코로나19 이전보다 이익의 질이 개선된 기업은 33개뿐(40.7%)이었다. 전체 기업의 59.3%에 해당하는 48개 기업은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54.5%에서 106.4%로 나빠졌다.


■업종별 통계의 기록 = 이번엔 업종별로 살펴보자. 총 23개 업종 중 15개 업종이 코로나19 이후 평균 이익의 질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가장 큰폭으로 이익의 질이 추락한 업종은 항공ㆍ우주업종이었다. 여기에 속한 2개 기업(한국항공우주ㆍ한화시스템)의 평균 이익의 질은 코로나19 이전 39.0%에서 코로나19 이후 201.0%로 162.0%포인트 악화했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항공ㆍ우주업종은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리스크가 있다”면서 “코로나19 이후엔 항공기 수요 감소, 부품 수급 문제 등으로 민항기 수출까지 위축되면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가장 큰폭으로 나빠진 산업은 항공·우주업종이었다.[사진=KAI 제공]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가장 큰폭으로 나빠진 산업은 항공·우주업종이었다.[사진=KAI 제공]

항공·우주업종 다음으로 이익의 질이 나빠진 업종은 ▲철강(32.0%→127.0%) ▲제지ㆍ목재(49.0%→115.0%) ▲해운ㆍ물류(50.0%→106.0%) ▲정유ㆍ화학(91.0%→126.0%) ▲유통(29.0%→64.0%) ▲소비재(101.0%→125.0%) ▲서비스(56.0%→71.0%) 등의 순이었다.

반면 23개 업종 중 코로나19 이전보다 이익의 질을 개선한 업종은 ▲자동차(79.0% →48.0%) ▲자동차부품(72.0%→ 51.0%) ▲비철금속(86.0%→79.0%) ▲기계(75.3%→ 61.0%) ▲섬유ㆍ의류(157.0%→ 116.0%) 등 5개에 불과했다.

이중 자동차부품과 비철금속 업종은 코로나19 이후 ‘단가 상승’의 수혜를 입은 업종으로 꼽힌다.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부품과 비철금속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제품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 거다. 판가 상승은 자동차부품 제조사들과 비철금속을 제련하는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됐다. 

섬유ㆍ의류업종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빠른 회복세가 이익의 질을 개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정민혜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상반기엔 중국 시장, 하반기에는 미국 시장이 살아나면서 섬유ㆍ의류업종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참고: 23개 업종 중에는 예외도 있었다. 3개 업종(조선ㆍ무역ㆍ건축자재)이 이익의 질을 따져볼 수도 없는 상태에 있었다.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기업(9개 기업 중 7개)이 대부분이어서 이익의 질을 산출해도 결과값이 마이너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익의 질과 주가의 기록 =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이익의 질은 증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익의 질이 악화했다는 것은 기업의 미래 성장성이 나빠졌다는 신호다. 따라서 주가도 하락세를 띨 공산이 크다. 예컨대,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나빠진 48개 기업의 주가가 코로나19 이전보다 하락했을 거란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81개 기업 중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개선된 33개 기업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15.9%였다. 33개 기업 중 코로나19 이후 주가가 상승한 기업은 21개였는데, 이들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35.2%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익의 질과 주가가 어느 정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참고: 이익의 질이 악화한 기업의 주가 변화는 2019년 11월 15일과 2021년 11월 15일을 비교했다. 11월 15일은 기업들이 3분기 분기보고서를 가장 많이 발표한 날이다.] 

문제는 이익의 질이 악화한 기업들의 주가 추이다. 81개 기업 중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악화한 48개 기업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48.3%였다. 이익의 질을 개선한 기업들의 평균치보다 32.4%포인트 높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악화했지만 주가가 상승한 기업은 31개로 이익의 질과 주가가 ‘정(+)의 관계’였던 기업의 수(21개)보다 많았다.

■기업별 주가의 기록 = 이번엔 기업별로 살펴보자. 이익의 질이 악화하는 동안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기업은 카카오다. 이 회사의 주가는 2019년 11월 3만1211원(수정 주가 적용)에서 지난해 11월 12만9000원으로 313.3% 치솟았다. 같은 기간 이익의 질이 31.1%에서 77.4%로 악화한 것과는 정반대로 주가가 흘렀다.

카카오와 같은 방송ㆍ통신ㆍIT 업종인 네이버의 주가도 136.8%(17만3500원→45만4000원) 뛰어올랐다. 그사이 네이버의 이익의 질은 85.9%에서 136.1%로 나빠졌다. 이밖에도 ▲효성티앤씨(236.3%) ▲삼성SDI(216.8%) ▲포스코케미칼(210.2%) ▲코오롱글로벌(161.1%) ▲LG화학(140.9%) ▲금호석유화학(127.2%) ▲LG이노텍(108.0%) 등이 100%가 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악화한 기업들 대부분 주가는 되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네이버 제공]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악화한 기업들 대부분 주가는 되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네이버 제공]

코로나19 이후 주가가 급등하는 사이 이들 7개 기업의 평균 이익의 질은 136.5%로 나빠졌다. 이는 코로나19 이전(62.4%) 대비 74.1%포인트 악화한 수치다.  이렇게 이익의 질과 기업의 주가가 반대로 움직인 건 투자자들의 관점 때문이다.

투자의 기준을 기업별 이익의 질에 두기보다 메타버스ㆍ플랫폼 비즈니스ㆍ전기차ㆍ2차전지 등 신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뒀다는 얘기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국내 증시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익의 질이 주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이익의 질이 악화하면서 주가도 하락한 기업은 17곳에 달했다. 이들 기업의 평균 주가 등락률은 –11.6%였다. 여기에 속한 주요 기업은 ▲롯데쇼핑(-23.7%) ▲현대그린푸드(-18.9%) ▲롯데제과(-17.9%) ▲GS리테일(-17.5%) ▲오뚜기(-17.4%) ▲동원F&B(-7.0%) 등이다. 

기능적 고착화 현상과 ‘독버섯’ 

흥미롭게도 주가가 하락한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코로나19로 서민의 팍팍해진 삶이 그대로 투영되는 유통ㆍ식음료 업종이라는 점이다. 경기침체와 체감경기 둔화의 여파가 크게 미치는 업종에선 기업의 주가에 이익의 질이 잘 반영된 셈이다. 

앞서 살펴본 분석을 종합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이 대폭 늘면서 이익의 규모는 커졌지만, 이익의 질은 나빠졌다. 그런데도 이익의 질이 나빠진 상당수 기업의 주가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상승했다. 자, 어떤가. 결과만 두고 보면 아이러니의 연속이지 않은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양동훈 동국대 경제대학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익의 질이 악화해도 주가가 상승한 원인은 국내 주식시장의 ‘기능적 고착화’ 현상에 있다. 기업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무적 지표가 있어도 증시의 자금은 결국 이익의 규모가 큰 곳으로 흐른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이후 과잉 유동성이 증시를 과열시킨 현시점에선 이런 투자 흐름이 향후 독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혹자는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고 주가가 오르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질문은 틀렸다. 이익의 질이 떨어지면, 기업은 미래를 내다보기 힘들다. 미래 성장동력에 투입할 만한 현금이 부족할 수 있어서다.

흔히 말하는 기업의 ‘펀더멘털’이 약해질 우려도 있다. 그렇다. 문제는 이익의 질이다. 외형은 커졌지만 이익의 질은 악화한 지금, 국내 기업들은 도태 혹은 도약의 갈림길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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