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 마주한 롯데의 선택
롯데백화점 역발상 혁신카드
신세계 출신 추가 영입

코로나19 국면에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단일점포로는 유일하게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공교롭게도 그 기간 롯데백화점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렸고, 소공동 본점은 매출 1등 자리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내줬다. 그런 롯데백화점이 혁신 전략을 꺼내들면서 변화에 나서고 있다. 흥미로운 건 롯데백화점 부활의 키를 ‘신세계맨’이 잡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백화점이 신세계 출신 인재를 영입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롯데백화점이 신세계 출신 인재를 영입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1월 25일 롯데그룹은 파격적인 정기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그중에서도 롯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롯데쇼핑의 변화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통처럼 내려오던 ‘롯데 순혈주의’가 막을 내리고, 그 자리를 ‘변화가 필요하다면 외부인도 영입할 수 있다’는 절실함이 채웠기 때문이다. 그 외부인이 설령 적진敵陣의 인재라도 말이다. 

사실 롯데쇼핑의 주요 사업부 대표 절반은 비非롯데맨이다. 지난해부터 e커머스 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나영호 부사장은 이베이코리아 출신이다. 2009년 롯데에 합류한 강성현 마트사업부 대표도 한국까르푸와 보스턴컨설팅(BCG) 유통부문 등을 거쳤다. ‘비롯데맨’의 정점을 찍은 이는 지난해 11월 정기인사에서 롯데백화점 수장에 오른 신세계 출신 정준호 대표다. 

정 대표는 1987년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해 신세계에서만 30년을 일해온 ‘신세계맨’이다. 특히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해외패션 본부장으로 있을 땐 아르마니·지방시·셀린느 등을 국내에 들여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를 롯데가 영입한 건 2018년이다. 롯데는 2018년 6월 자회사인 엔씨에프(NCF)와 롯데백화점의 패션사업 부문인 GF를 통합해 패션전문회사 롯데지에프알(GFR)을 신설했는데, 설립 6개월 만인 그해 12월 정 대표를 신세계로부터 영입해 수장(대표이사 부사장)에 앉혔다. 이런 정 대표에게 롯데쇼핑의 핵심조직인 롯데백화점을 맡겼다는 건 롯데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최근 몇년간 실적은 계속 내리막이다. 2018년 3조2320억원이던 매출은 2019년 3조1300억원으로 감소했고, 2020년엔 2조원대(2조6550억원)로 떨어졌다.

영업이익도 역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2018년 4250억원에서 2019년 5190억원으로 22.3% 증가하는 듯했지만 중국의 비효율 매장을 정리한 데 따른 일시적 영향이었을 뿐이다. 2019년에도 국내 백화점 부문의 영업이익은 2.2% 감소했는데, 2020년엔 36.8%, 2021년엔 4.5%(이상 전년 동기 대비) 더 쪼그라들었다. 신세계의 백화점사업 부문 영업이익(2021년 3분기 누적)이 142.4% 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정 대표는 롯데백화점을 어떻게 탈바꿈시킬까. 첫째 전략은 ‘고급화’로 보인다. 신세계에 빼앗긴 강남을 발판으로 부활의 날개를 펴겠다는 거다. 이 전략은 그가 지난해 12월 사내게시판에 올린 9분짜리 취임인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10년 전 업계 1위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잘하는 것부터 용기 있게 다시 시작하자.”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플랜 중 하나로 ‘강남 1등 점포 전략’을 제시했다. “잠실점과 강남점의 업그레이드로 롯데백화점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는 다른 고급스러움을 넘어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1등 백화점을 만들겠다.” 

언뜻 국내 백화점 매출 1등 점포 자리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빼앗긴 걸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다점포 전략을 고수하는 동안 ‘대중 백화점’으로 포지션이 달라진 롯데백화점의 위상을 이참에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게 정 대표의 계산일 수 있다. 이를테면 ‘명품’을 발판으로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거다. 

전문가들은 정 대표의 플랜을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이후 명품이 백화점 매출을 쥐락펴락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2% 증가했는데, 명품(45.0%) 매출이 큰폭으로 성장한 영향이 컸다. 지난해 11월에도 명품 매출은 32.9% 성장했다. 

한상린 한양대(경영) 교수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쇠퇴하고 있지만 그나마 백화점이 성장하는 건 명품 브랜드 덕”이라면서 “특히 MZ세대가 뛰어들면서 명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 백화점들은 명품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은 강남점과 잠실점을 중심으로 고급화 전략에 나선다.[사진=뉴시스]
롯데백화점은 강남점과 잠실점을 중심으로 고급화 전략에 나선다.[사진=뉴시스]

정 대표의 두번째 전략은 ‘분리’다. 정 대표는 백화점과 묶여 있던 아울렛을 별도 사업부로 분리하면서 이를 “롯데백화점 조직개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성격이 다른 사업부를 떼어내 각각의 특성에 맞게 MD 전략, 브랜드 유치, 마케팅, 디자인 등의 전략을 짜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셈이다. 

이렇게 되면 백화점은 본연의 상품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 본사 상품본부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팀 단위에서 부문 단위로 승격했다. 구체적으로 남성 스포츠 부문은 ‘남성패션’ ‘스포츠’ ‘아동’으로 각각 분리하고, 식품 부문은 ‘신선식품’과 ‘F&B’로 나눠 대표 직속으로 배치했다. 해외명품 부문도 확대·강화했다.


롯데백화점은 그동안 해외명품 부문을 1개만 운영했는데, 이를 ‘럭셔리 브랜드’ ‘럭셔리 디자이너 & 컨템포러리’ ‘시계·보석’ 3개로 나눴다. 롯데 관계자는 “이번 개편은 철저히 고객과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백화점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정 대표의 플랜을 구체화할 인물도 ‘신세계 출신’이란 점이다. 1월 17일 롯데백화점으로 처음 출근한 이승희 상무(오퍼레이션 TF팀장)와 안성호 상무보(스토어 부문장)가 그 주인공인데, 그들은 각각 롯데백화점 강남점 리뉴얼과 점포 디자인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항해를 시작했기 때문에 정 대표가 어떤 성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 신세계 출신이 롯데백화점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순혈을 강조해오던 롯데그룹이 ‘변화의 방아쇠’를 당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생각이 그럴 수도 있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쉽지만 그렇게 해서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혁신의 롯데를 만들어 달라(2022년 1월 20일 사장단 회의).” 수장은 물론 상무급 임원까지 잇달아 신세계 출신으로 재배치한 롯데의 전략으로 롯데는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