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달라진 리뉴얼 전략
남은 건 명품뿐이라던 백화점
MZ 잡는 데 성공한 더현대서울
백화점 3사 리뉴얼에 1조원 투자

지난해 2월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3대 명품’을 유치하지도 않은 채 MZ세대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2월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3대 명품’을 유치하지도 않은 채 MZ세대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 무신사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판매되던 신생 패션 브랜드가 백화점에 매장을 연다. 식품관이 둥지를 텄던 지하층엔 버버리, 프라다 등 명품관이 들어선다. ‘닭장 같은 매장’이 줄줄이 늘어서 있던 공간은 과감하게 터버려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개방감을 선물한다.

# 백화점이 변신하고 있다. 국내 백화점 3사가 총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대대적인 리뉴얼에 들어갔는데, 콘셉트가 흥미롭다. ‘명품을 유치해야 산다’ ‘지하층은 식품관이다’ ‘면적이 곧 매출이다’는 기존 백화점 공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다. ‘3대 명품’을 유치하지도 않은 채 MZ세대를 발판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데 성공한 ‘더현대서울’의 성공방식을 벤치마킹한 듯하다.

“백화점 전성시대가 저문다.” 미국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이런 말이 떠돈 건 2017년 무렵부터다. 발단은 저렴한 가격과 다양성으로 무장한 이커머스 업체 아마존의 등장이었다. 고급스러운 콘셉트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국 백화점들은 힘을 쓰지 못한 채 줄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터지자 ‘JC페니’ ‘니먼마커스’ 등 주요 백화점들이 파산보호(2020년)를 신청했다. 지난해엔 미국 전역에 3500여개(2005년 기준) 매장을 운영했던 ‘시어스 백화점’이 마지막 점포를 폐점하면서 시장에서 완전 철수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상점 중 하나로 군림했던 ‘메이시스 백화점’도 2023년까지 125개 점포를 추가 폐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른바 ‘오프라인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 ypse)’이 현실화한 셈인데, 국내 백화점 업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년간 30조원대에 머물던 백화점 시장 규모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27조원대로 고꾸라졌다. 국내 주요 백화점들의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백화점 3사(신세계·롯데백·현대백)의 2017년 대비 2020년 매출액은 신세계 10.3% (1조8245억원→1조6362억원), 롯데백화점 17.1%(3조2041억원→2조6551억원), 현대백화점 5.1%(1조8481억원→1조7522억원) 등으로 감소했다. 

이렇게 추락하던 국내 백화점 업계가 최근 날개를 달고 있다. 지난해 백화점 시장 규모는 3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2.6% 증가했다. 주요 백화점 실적도 회복세를 띠고 있다. 지난해 신세계 매출액은 전년 대비 23.2%(1조6362억원→2조163억원), 롯데백화점은 8.7%(2조6551억원→2조8880억원), 현대백화점은 20.1%(1조7522억원→2조1050억원) 늘었다. 

원동력은 크게 두가지다. 무엇보다 명품이 실적 개선세에 한몫했다. 백화점 3사의 지난해 명품 매출액은 두자릿수 증가세(신세계 46.9%, 롯데백 32.8%, 현대백 38. 0%·IBK투자증권)를 기록했다. 둘째 원동력은 MZ세대를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더현대서울’이다. 


지난해 2월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기존 백화점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점 1년 만에 누적 매출액 8005억원을 달성했다. 당초 목표 매출액(6300억원)의 27.0%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더현대서울은 단숨에 백화점 매출 순위 16위(2021년)에 이름을 올렸다.

‘3대 명품(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을 유치하지 못했지만, MZ세대의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더현대서울의 매출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50.3% (이하 2021년 2월~2022년 2월 기준)로 현대백화점 다른 점포 평균치(24.8%)의 두배에 달한다.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은 “차별화한 공간 구성과 콘텐츠로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를 다시 백화점으로 불러 모았다”면서 “더현대서울의 매출액은 2023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더현대서울의 성공이 부활의 날개를 편 백화점 업계에 대규모 ‘리뉴얼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거다. 

올해 신세계는 4766억원, 롯데백화점은 5476억원, 현대백화점은 2000억원을 투자해 기존 백화점에 새 옷을 입힌다는 방침을 세웠다. 3사의 총 투자금액이 1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셈인데, 그렇다면 더현대서울 이후 달라진 백화점의 리뉴얼 트렌드는 무엇일까.[※참고: 이번 기사에선 리뉴얼을 진행 중이거나 부분 리뉴얼을 완성한 신세계 경기점, 현대 목동점을 주로 살펴봤다.] 

더현대서울은 2030세대의 매출 비중이 50%를 훌쩍 넘는다. 사진은 리뉴얼을 완성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사진=현대백화점 제공]
더현대서울은 2030세대의 매출 비중이 50%를 훌쩍 넘는다. 사진은 리뉴얼을 완성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사진=현대백화점 제공]

■트렌드❶ 온라인의 오프라인화 = 새로운 리뉴얼 트렌드를 언급하기 전에 백화점이 위기에 빠졌던 이유를 되짚어보자. 유통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유는 사실 별다른 게 아니다. ‘공룡’처럼 커진 백화점이 유통업계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MZ세대의 움직임이었다.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는 백화점에 들어찬 기성복 브랜드 대신 ‘무신사’ ‘W컨셉’ ‘29CM’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론칭한 신생 패션 브랜드를 찾았다. 바로 이것이 백화점이 온라인 편집숍에 MZ세대를 빼앗긴 이유다.

이 때문에 백화점 업계는 유통시장의 새로운 ‘큰손’ MZ세대를 유인할 전략을 세웠는데, 그게 바로 ‘온라인의 오프라인화’였다. 온라인을 좋아하면서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하고 싶어하는 MZ세대의 이중성을 파고든 전략이었다. 

가장 먼저 승부수를 던진 건 더현대서울이었다. 더현대서울 개점과 동시에 무신사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MZ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패션 브랜드 ‘쿠어’ ‘디스이즈네버댓’의 첫번째 단독 매장을 열어줬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브랜드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MZ세대가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결과였다. 

일례로, 쿠어는 월 매출 3억원을 달성할 만큼 시장에 안착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쿠어처럼 차별화한 브랜드를 경험하기 위해 멀리 제주도에서 방문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면서 “더현대서울의 경우, 백화점과 10㎞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방문하는 고객의 매출이 전체의 54.3%에 달하고 이들 중 75%가량이 30대 이하 고객”이라고 설명했다.[※참고: 디스이즈네버댓은 플래그십스토어(2019년 홍대에 개점)나 편집숍에 입점한 적은 있지만 단독 매장을 연 건 더현대서울이 처음이다.] 

이를 벤치마킹한 듯 신세계는 온라인 플랫폼을 오프라인으로 옮겨왔다. 리뉴얼이 진행 중인 신세계 경기점에 지난 3월 문을 연 ‘W컨셉’이 대표적이다. W컨셉은 신세계 계열의 온라인 패션 플랫폼으로 오프라인 점포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엔 20여개 온라인 패션 브랜드가 입점했다.

W컨셉 관계자는 “MZ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프론트로우’ ‘던스트’ 등의 브랜드를 엄선해 선보였다”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까지 리뉴얼을 진행하는 현대백화점 목동점 역시 60여개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일 계획인데, 그중 13개 브랜드가 첫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곳들이다. 지난 12일에 개점한 ‘엠엠엘지’, 7월 개점 예정인 ‘어나더오피스’ ‘이얼어즈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백화점이 기존 패션 브랜드 대신 온라인 브랜드를 끌어들이는 건 언급했듯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를 붙잡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MZ세대는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면서도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자 하는 니즈가 강하다”면서 “온라인으로만 접하던 브랜드를 오프라인에서 체험하고 싶은 이들의 니즈를 백화점이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렌드❷ 지하층 핫플레이스화 = 그동안 백화점 지하엔 대부분 식품관이나 영캐주얼 브랜드가 입점했다. 화려한 명품 브랜드는 지상에 위치하는 게 불문율이나 다름없었다. 지하철과 연결돼 접근성은 좋지만 폐쇄적이고 답답한 지하층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최근 오픈했거나 리뉴얼 중인 백화점은 다르다. 더현대서울은 MZ세대에서 핫한 편집숍 ‘포인트 오브 뷰’ ‘나이스 웨더’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 등을 지하 2층에 배치했는데 흥미롭게도 이곳이 핫플레이스가 됐다. MZ세대의 이목을 끄는 각종 팝업 스토어도 지하 2층에서 열린다. 

신세계 역시 지하층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신세계 경기점은 지하 1층을 명품관으로 바꿨다. 버버리·프라다·보테가베네타·발렌시아가 등 숱한 명품 브랜드가 지하 1층에 배치된 셈이다. 

이처럼 지하층이 백화점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건 MZ세대가 백화점의 중요한 고객층이 됐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전 젊은 세대와 달리 MZ세대는 돈을 모아 명품을 사는 데 거리낌이 없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제품이라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이렇게 평가했다. “MZ세대는 4050세대에 비하면 구매력이 높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콘텐츠를 SNS에 올리고 확산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한다. 백화점으로선 MZ세대가 오가는 ‘길목’에 눈길을 끌 만한 매장을 배치하고 이들이 콘텐츠를 확산하도록 하는 홍보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❸ 바깥 같은 실내 = 백화점의 달라진 ‘리뉴얼 트렌드’는 또 있다. 실내를 ‘바깥’처럼 넓게 만드는 거다. 흥미롭게도 이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달라진 전략이다. 사실 백화점의 매출 공식은 ‘면적’이었다. 동일한 면적에 최대한 많은 매장을 입점시켜야 매출이 늘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이 때문에 ‘휴식공간이 부족하다’ ‘답답하다’는 소비자들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백화점은 ‘매출 공식’을 바꾸지 않았다. 

변곡점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만들어졌다. 소비자는 매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답답한 백화점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이는 매출을 깎아먹는 원인이 됐다. 이런 문제점을 정면돌파한 게 더현대서울이다.

실제로 더현대서울은 백화점의 금기를 깨고 천장을 유리창으로 만들어 자연광이 들도록 했다. 아울러 전체 영업면적(8만9100㎡·약 2만7000평)의 절반가량을 실내 조경이나 휴식 공간으로 꾸몄다. 백화점으로선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포기하는 도박에 가까운 전략이었지만, 뜻밖에도 더 많은 소비자를 유인하는 히든카드가 됐다. 

백화점 3사가 올해 총 1조원을 투자해 리뉴얼을 진행한다. 사진은 신세계 경기점 지하 1층.[사진=신세계 제공]
백화점 3사가 올해 총 1조원을 투자해 리뉴얼을 진행한다. 사진은 신세계 경기점 지하 1층.[사진=신세계 제공]

이를 의식한 듯 신세계 경기점 역시 개방감을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하 1층의 천장을 지상 1층까지 뚫어 층고를 높였다. 165㎡(약 50평)가량의 면적을 ‘텅 빈 공간’으로 만든 셈인데, 소비자로선 실내에서도 뻥 뚫린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관계자는 “백화점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선 MD 차별화뿐만 아니라 하드웨어(공간)도 트렌드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면서 “경기점의 경우 층고를 터서 더욱 쾌적하면서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이런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목동점의 경우 유플렉스(지하 2층)를 리뉴얼하면서 10여개 브랜드를 줄이는 대신 유휴공간을 확대했다”면서 “향후 리뉴얼 점포의 상황에 맞게 유휴공간을 넓혀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은희 교수는 “과거 백화점이 시계와 창문을 없애 인위적으로 고객을 가두고자 했다면 지금의 백화점은 고객이 스스로 머물고 싶게끔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특히 미래의 고객인 MZ세대가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콘텐츠를 선보이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면 백화점은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건 명품뿐”이라던 백화점은 ‘MZ세대의 놀이터’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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