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한국 소비자 농락하는 수입차

수입차의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풀 옵션’이다. 수입차는 국내시장에서 무조건 풀 옵션으로 판매된다. 많은 옵션 부품을 장착해 팔기 때문에 수입차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문제는 소비자가 원하는 옵션을 선택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수입차는 국내시장에서 ‘풀 옵션’으로 판매돼 가격이 비싸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삼성역 부근의 수입차 거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삼성역 부근의 수입차 거리. 수입차 판매를 맡고 있는 국내 딜러사의 매장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인근에 있는 BMW코리아의 공식 딜러사 코오롱모터스를 찾았다. 규모가 상당히 컸고, 깔끔했다. 매장에 들어서자 미모의 안내원이 마중 나와 간단한 음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한편으론 부담이 느껴졌다.

코오롱모터스 매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 매장도 찾았다. 미모의 안내원은 없었고, 전시장 규모는 수입차 매장에 비해 작았다. 간단한 음료 서비스가 제공됐다. 수입차 매장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차량을 직접 보면서 딜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수입차의 옵션가격은 일급비밀

코오롱모터스에서 지난해 수입차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BMW 520d’의 가격과 제원•옵션에 대해 물었다. 판매가격은 6260만원. 엔진은 4기통 디젤 엔진이고 풀 옵션이 적용됐다. BMW 520d의 배기량은 1995cc로 중형차에 포함된다.

국산차 중 같은 배기량인 현대차 ‘쏘나타 프리미엄’(1999cc)의 가격과 비교해봤다. 판매가는 2785만원. BMW 520d보다 무려 3475만원 싸다. 이런 가격차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우선 6260만원짜리 수입차 BMW 520d에 적용되는 관세부터 살펴보자. 유럽차량의 수입관세는 4%다. 관세를 제외하면 개별소비세•교육세•부가가치세 등의 과세는 국내차와 같다. 수입차의 수입원가는 공개되지 않는다. 영업비밀이다. 다만 업계에선 판매가의 60~70%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원가는 약 4000만원이다.

 
어떤 소비자는 ‘브랜드 가치 차이’ 때문에 수입차가 비싸다고 생각한다. 오해다. 최근 수입차와 국산차인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의 차이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해마다 발표하는 ‘글로벌 톱 100 브랜드’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세계 자동차업체 중 7번째로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벤츠와 BMW는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아직은 벤츠와 BMW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수입차와 비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브랜드 때문에 가격차이가 나봤자 수천만원까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또 다른 소비자는 ‘수입관세 때문에 수입차가 비싸다’고 생각한다. 이는 오해다. BMW 520d에 붙는 관세는 160만원에 불과하다. 자동차 원가에 관세를 붙여도 4160만원(원가 4000만원+관세 16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BMW 520d의 가격은 왜 6260만원일까. 비밀은 옵션에 있다.

수입차는 국내에서 ‘풀 옵션’으로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BMW 520d에 들어가는 품목은 에어백•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사이트 임팩트 프로텍션•글라스 선루프•주차 경보 시스템•후방 카메라•내비게이션 시스템 등이다. 풀 옵션 품목이 모두 63개에 달한다.

옵션은 기본 차량에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별도로 선택해 부착하는 장치나 부품을 뜻한다. 하지만 수입차 업계에선 통하지 않는 말이다. 국내 소비자는 수입사가 정한 풀 옵션으로 차량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옵션이 많이 적용되기 때문에 가격은 당연히 비싸진다. BMW코리아뿐만 아니라 벤츠코리아•아우디코리아 등 국내 수입차는 모두 이런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벤츠코리아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 3위를 기록한 ‘벤츠 E300 엘레강스’의 판매가격은 6940만원(배기량 3498cc)이다. 판매조건은 풀 옵션이다. 최고급 가죽 스티어링 휠•코너링 라이트•파노라마 썬루프•내비게이션 시스템 등 51개 옵션이 차량에 적용됐다. 배기량이 같은 국산차인 기아차 ‘K7 3.3GDI 노블레스’(3342cc, 4245만원)와 판매가격을 비교하면 벤츠 E300 엘레강스가 2695만원 더 비싸다. 수입차가 풀 옵션만을 판매하며 가격을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형 패키지는 가격 부풀리기

▲ 국내시장에 들어온 수입차가 경기도 평택국제자동차부두에 주차돼 있다.
수입차 업계에선 옵션을 모두 뺀 자동차를 뜻하는 ‘깡통차’라는 용어가 있다. 옵션을 빼면 빈 깡통처럼 가격이 푹 꺼진다는 의미다. 수입차의 턱없이 비싼 옵션 가격을 비꼰 말이다. 물론 소비자가 수입차를 구매할 때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야 차량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수입차의 풀 옵션 전략은 국산차의 판매 방식과 비교된다. 국산차는 기본 품목이 들어간 차량에 소비자가 원하는 옵션을 추가로 부착해 판매한다. 소비자로선 자신이 원하는 옵션 품목을 선택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량을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수입차는 옵션 판매가격을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 벤츠코리아의 한 딜러는 수입차의 풀 옵션 판매를 ‘한국형 패키지’라고 표현했다. 벤츠 독일 본사가 한국시장을 분석해 국내 소비자에게 맞는 스타일의 옵션을 적용한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해외에서 수입차를 사와 국내에 판매했던 A씨는 “국내 소비자는 (수입차의) 수입원가뿐만 아니라 옵션 판매가격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이 적당한 가격에 사는지, 비싸게 사는지 전혀 알지 못 한다”며 “이런 점을 수입사와 딜러사가 이용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수입사 관계자는 “수입차의 생산공장은 해외에 있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옵션을 하나하나 맞춰서 수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 말이 맞다면 수입차는 한국이 아닌 다른 해외시장에서도 풀 옵션 판매전략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다. 독일 자동차 회사인 BMW와 벤츠는 미국시장에서 수입차로 분류된다. 하지만 풀 옵션 판매가 아닌 기본 품목에 소비자가 원하는 옵션을 추가하는 판매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생산 공장이 해외에 있다’는 수입차 업계의 변명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

Issue in Issue 옵션가격 할인전략의 꼼수
옵션 빼고 팔아도 마진 많이 남아

국내시장에서 수입차의 옵션은 다른 용도로 쓰일 때가 많다. 차량판매가 잘 되지 않을 때 ‘옵션을 할인해주겠다’며 판매가를 낮추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개인 딜러는 자신이 챙기는 이익을 줄이며 옵션 가격을 할인해 준다. 나아가 공식 딜러사는 6000만원대 차량의 옵션을 조정해 4000만원에 팔기도 한다. 쉽게 말해 2000만원을 할인한다는 말인데, 업계에선 ‘2000 프로모션’이라고 말한다. 이는 수입차 한대를 팔면 마진이 그만큼 많이 남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모션이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 r|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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