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의 재무설계 上

여기 10년 동안 4번이나 이사한 부부가 있다. 전셋값이 오르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야만 했다. 올해에도 전셋값이 올라 이사를 해야 하는데, 이를 두고 부부의 의견이 충돌했다. 아내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남편은 집값이 떨어지길 기다리자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와 한국경제교육원㈜이 이 부부의 사연을 들어봤다.

전셋값이 오르면서 내집 마련을 고민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셋값이 오르면서 내집 마련을 고민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늦은 밤, 겨우 잠든 두 자녀(10·8세)의 방문을 닫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캔을 꺼내는 한은지(가명·46)씨. 그는 요즘 들어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올 6월에 이사를 할 예정인데, 이사날이 가까워질 때마다 걱정도 늘어만 간다.

그도 그럴 게 한씨는 지난 10년 결혼생활 동안 4번이나 집을 옮겼다. 해가 바뀔 때마다 한씨가 살던 집의 전셋값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랐기 때문이다. 이사할 때마다 한씨의 집은 수도권에서 점점 멀어지고, 집 평수도 줄어들었다. 남편 오상범(가명·46)씨와 맞벌이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봤지만, 부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집값은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가계부 상황도 나빠졌다. 한씨가 다니던 옷가게가 폐업하면서 한씨도 덩달아 일자리를 잃었다. 현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녀들의 교육비를 버는 게 한씨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동시에 한씨의 ‘내 집 마련의 꿈’도 한발짝 더 멀어졌다. 이제 한씨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어한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남편은 아내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와서 집을 샀다가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수 있다며 걱정한다.

남편에게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 또한 수차례 집을 옮기면서 직장과 점점 멀어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남편이 집 사기를 망설이는 건 “조만간 집값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어서다.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다. 4~5년 뒤에 수도권에 3기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인데, 이렇게 대단지 아파트가 대거 생겨나면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참고: 3기 신도시는 정부에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계획한 대규모 택지지구다. 현재 남양주·하남·인천·고양·부천의 신도시 5곳이 지정돼 있다.]

더구나 지금 부부는 사실상 외벌이로 남편이 대부분의 소득을 책임지고 있다. “남편 입장에선 대출금을 더 늘리는 게 부담스러운 일일 거예요.” 아내도 이런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진 않았다. 아이들의 교육도 이사 문제에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주 학교를 옮겨다니면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렇게 이사 문제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부부는 재무상담을 통해 답을 정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필자를 방문했다.

그럼 부부의 재무상태를 체크해 보자. 부부의 월 소득은 406만원으로, 중소기업을 다니는 남편이 356만원을 벌고 아내가 아르바이트로 50만원을 번다. 정기지출로는 공과금 25만원, 식비와 생필품비를 포함한 생활비 89만원, 통신비 27만원, 교통비·유류비 17만원, 남편 용돈 35만원, 아내 용돈 15만원, 자녀 교육비 58만원, 보험료 69만원, 대출 상환금 19만원, 병원비 5만원, 미용비 5만원 등 총 364만원을 쓴다.

1년에 걸쳐 쓰는 비정기 지출은 명절비·경조사비 100만원, 자동차 관련 비용 100만원, 의류비 100만원, 휴가비·여행비 70만원 등 370만원이다. 월평균 30만원을 쓰는 셈이다. 금융성 상품은 적금 10만원, 주택종합청약저축 10만원, 연금저축 20만원 등 40만원이다. 이렇게 부부는 한달에 434만원을 쓰고 28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적자가 있긴 하지만 이 부부는 나름대로 ‘미래’에 투자를 하고 있다. 액수가 적긴 하지만 적금에 10만원씩 붓고 있고, 집을 마련하기 위한 청약통장(10만원)에도 가입했다. 또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연금저축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상담자들이 노후 준비는커녕 적금통장마저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부부의 가계부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그렇다면 다른 곳의 지출을 줄이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1차 상담에선 생활비(89만원)와 통신비(27만원)에 주목했다. 최근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요리할 시간이 줄었고, 자연스럽게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쉬고 싶다는 생각에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앞으로는 배달음식 횟수를 줄이고 인근 시장이나 마트에서 반찬을 사다 먹는 것으로 식비를 아껴보기로 했다. 일단은 무리하지 않고 15만원만 줄여보기로 했다. 따라서 생활비는 89만원에서 74만원으로 줄었다.


다음은 통신비다. 부부는 지금까지 스마트폰에 큰돈을 쓴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출시된 고가의 폴더형 스마트폰을 홀린 듯 주문하면서 통신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부는 “돈을 조금 더 내면 태블릿도 함께 구매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태블릿까지 할부로 구매했다. 코로나19로 밖에서 마음껏 놀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장난감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스마트폰 기기 할부금엔 할부 수수료가 있는데, 여기엔 연 6.9~7.1%의 수수료율이 적용되므로 할부금을 빨리 갚을 필요가 있다. 부부는 500만원 적금의 일부(250만원)를 써서 기기값을 전부 갚았고, 고가의 요금제도 전부 5만원대 요금제로 조정했다. 이를 통해 부부의 통신비는 27만원에서 16만원으로 11만원 줄어들었다.

이렇게 1차 상담이 끝났다. 부부는 생활비 15만원, 통신비 11만원 등 26만원을 절약해 지출을 434만원에서 408만원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적자 규모도 28만원에서 2만원으로 줄었다. 워밍업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지출을 줄였지만, 2차 상담에선 대대적인 ‘지출 다이어트’를 단행해야 한다. 그 과정은 다음 시간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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