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원-하청 구조의 늪
상담사 괴롭히는 실적 압박과 감시
노조 설립 원천 차단하는 원청

“카드사 콜센터 연결되는 데 한시간이 걸렸다.” “배달앱 콜센터가 전화를 도통 받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상당수는 이같은 푸념을 늘어놓은 적 있을 것이다. 그만큼 ‘콜센터’ 상담사와 통화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코로나19 국면에선 더 심해졌다. 그런데,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더스쿠프가 그 이유를 찾아봤다.

콜센터 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최소한의 상담사만 채용한다.[사진=연합뉴스]
콜센터 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최소한의 상담사만 채용한다.[사진=연합뉴스]

노동자 40만명(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 추정치), 시장 규모 3조원…. 콜센터는 이제 하나의 산업이라 불려도 무방하다. 통신사, 카드사, 제조사, 공공기관부터 배달앱 등 플랫폼 업체까지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콜센터의 외주화가 확산하면서 ‘컨택센터’라 불리는 콜센터 전문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중 몇몇은 매출액 3000억~4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콜센터 산업의 이면은 여전히 어둡다. 콜센터 상담사는 고강도 노동, 간접고용,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런 콜센터 상담사들을 향해 사회의 관심이 쏠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휘몰아치면서다.

2020년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게 기폭제 역할을 했다. 1m 안팎의 간격으로 빽빽하게 책상이 들어찬 공간에서 200여명이 근무한 ‘11층 콜센터’. 그곳에선 170여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콜센터 상담사가 감염병에 취약한 밀집된 노동환경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수많은 미디어가 콜센터에 주목했고, 각계각층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이 주목한 건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환경 개선 문제가 아니었다. 콜센터가 직장 내 첫 집단감염 사례라는 것, 이를 기점으로 코로나19가 얼마나 더 확산할지에 모든 시선이 쏠렸다. 

그래서인지 집단감염 사태 후 2년이 흘렀지만, 콜센터의 노동환경은 달라진 게 없다. 우리가 놓친 건 무엇일까. 콜센터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를 확인했다.

■원-하청 구조의 덫 = “콜센터의 모든 문제는 원-하청 구조에서 시작한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꼬집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기업ㆍ공공기관이 콜센터 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콜센터를 운영해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당연히 저비용·고효율 업체를 선택한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콜센터를 운영할 업체를 선정하는 ‘최저가낙찰제’를 통해서다. 이 과정에서 콜센터 상담사의 급여는 최저임금(기본급) 수준으로 고정된다. 

최재혁 전국사무금융노조 비정규센터 부국장은 “하청업체 간 경쟁 속에 상담사들은 높은 업무 강도 대비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면서 “콜센터 산업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여기서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업체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충분한 인력을 뽑지 않는다는 점이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휴게시간은 물론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콜 처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콜센터 상담사들은 하루 8시간 100~200건의 콜을 처리한다. 업무 시간 8시간 중 92.6% (한국노동연구원)를 고객 응대에 쓰고 있는 셈이다. 

■실적 압박과 감시 체계 = 콜센터 상담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실적 압박과 감시 체계다. 상담사들은 출근과 동시에 ‘관리자’로부터 초 단위 전자 감시를 받는다. 휴식·근무 여부부터 처리 콜 수, 고객 응대 시간 등이 실시간 모니터링된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울 때도 관리자에게 보고해 ‘이석 체크’를 해야 한다. 이석 시간 동안 처리하지 못한 콜 수까지 기록될 정도니, ‘초 단위 감시’라 할 만하다. 

문제는 촘촘한 감시체계에서 진행된 ‘업무 평가’가 상담사의 급여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점이다. 콜센터의 임금체계가 콜 수 등 실적 위주여서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는 상담사들은 인센티브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관리자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콜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콜센터 상담사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사진=뉴시스]
콜센터 상담사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사진=뉴시스]

그렇다고 상담사를 감시하는 관리자의 처우가 괜찮은 것도 아니다. 관리자 역시 실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관리자가 담당하는 콜센터의 실적이 원-하청 계약을 맺을 때 평가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기업들은 콜센터 업체의 ‘통합품질관리지수’를 평가해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다”면서 “문제는 평가 기준의 중심이 콜 처리 수인 데다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있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참고: 원청은 하청의 통합품질관리지수를 평가해 계약 시 반영한다. 대표적인 평가지표인 ‘응대율’과 ‘서비스 레벨’은 상담사가 ‘걸려온 콜 중 처리한 콜의 비중’ ‘걸려온 콜 중 20초 내에 받은 콜의 비중’을 나타낸다. 모든 하청업체는 원청에 90% 이상의 응대율과 서비스 레벨을 목표로 제시한다. 그 목표를 달성해내는 건 최소 인원의 상담사다.]  

■여전히 취약한 노동환경 = 이처럼 콜센터는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춘다. 콜센터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취약한 ‘3밀(밀접·밀집·밀폐)’ 노동환경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상담사 대부분은 좁은 책상이 1m 안팎의 간격으로 빽빽하게 들어찬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제대로 된 환기시설이나 휴게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도 태반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2m 이상 거리두기’ 방역지침을 내렸지만 콜센터 환경을 바꾸는 덴 무용지물이었다. 정부 지침의 최소 기준이 1m인 데다, 강제사항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재혁 부국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콜센터 환경이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의 경우) 업체 측이 휴게실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비용을 이유로 설치가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 이처럼 콜센터 상담사를 둘러싼 문제는 쌓여있다. 하지만 콜센터 상담사들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들의 노조 가입률이 0.1%가량에 불과해서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응집하지 못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생계가 달린 경력단절여성이나 취업이 어려운 청년층이 주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행여 파업이나 집단행동을 불사하더라도 업체들이 손쉽게 상담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목소리’를 막는 요인이다.

더욱이 원청은 ‘눈엣가시’ 같은 노조 설립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지난해 9개 공공기관(IBK기업은행ㆍ근로복지공단ㆍ창업진흥원 등)이 콜센터 입찰제안요청서 평가 항목에 ‘상담사 집단화 방지’란 내용을 담은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최재혁 부국장은 “실제로 상담사를 관리하는 업체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면서 “계약서 조항에 명시되지 않더라도 노조 설립을 막도록 하는 게 일반화해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콜센터 상담원들은 언제쯤 ‘환한 빛’을 볼 수 있을까. 무엇도 달라진 게 없는 지금,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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