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청탁금지법 시행 7년째
여전히 실효성에는 의문
들쭉날쭉 기준, 포괄적 범위 등
근본적인 제도 정비 고민할 때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2016년 첫 시행 이후 두번(2018년 · 2021년)의 개정 절차를 거쳤다. 그런데도 청탁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숱하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는 여전히 만연하고, 되레 애꿎은 민간인들만 이 법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제 역할을 하려면 모호한 기준과 지나치게 넓은 규제 범위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9일 청탁금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9일 청탁금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사진=뉴시스]

2016년 9월 28일. 지난한 여정 끝에 마침내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청탁금지법이란 이름보다 더 잘 알려진 이 법의 별칭은 ‘김영란법’이다. 2012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의 제안으로 법안을 마련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디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후 2년여간 논의 끝에 2015년 3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청탁금지법이 통과됐다. 청탁금지법이 정식 시행된 것은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청탁금지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그만큼 첨예했다는 방증이다.

이렇듯 상당한 진통 끝에 청탁금지법을 시행한 지 올해로 7년째다. 청탁금지법의 취지는 사적私的 이익을 취하기 위해 행하는 부정한 청탁을 방지해서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취지는 잘 실현됐을까. 

2020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후 기업의 평균 접대비 지출액은 18억원으로 시행 이전(2016년 · 24억원) 대비 6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서비스 분야의 종사자들이 금품 · 향응 등의 부정부패를 경험한 비율도 2016년 1.8%에서 2020년 0.4%로 1.4%포인트 감소했다. 통계상으로는 청탁금지법이 나름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그럼에도 청탁금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은 여전히 숱하다. 심지어 악법惡法의 소지가 있다며 청탁금지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의원 · 고위 공직자 등 규제해야 하는 대상 대신 애먼 시민들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기 위해선 청탁금지법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여부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초과한 금품 · 향응 등을 받으면 형사처분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초기 청탁금지법에는 (공직자를 위한) 식사 대접은 3만원 이하, 선물은 5만원 이하, 경조사비는 10만원 이하의 범위에서 이뤄지도록 제한을 뒀다.[※참고: 2018년 1월 개정 시행령을 통해 경조사비는 5만원 이하로 줄었다. 대신 농수산물 및 그 가공품(상한액 10만원)을 별도의 항목으로 분류했다.]

청탁금지법 실효성 여전히 의문

문제는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공직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대가성 없이 식사 자리를 갖거나 선물을 해도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 거다.

이 때문에 한때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회사 동료끼리 밥을 먹어도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다”면서 더치페이 앱이 유행하기도 했다. 귀갓길에 쥐여주는 택시비조차 법에 저촉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으니, 청탁금지법이 무고한 시민들의 ‘먼지떨이’로 작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자동차 시장에도 청탁금지법의 여파가 미쳤다. 달라진 시승 문화가 대표적이다. 시승식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수천억원을 들여 개발한 신차를 처음 선보이는 중대한 이벤트다. 

과거 시승식에서는 업계 종사자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이 두루 모여 여유롭게 시승하고 신차에 관한 비평을 나눴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의 시행으로 그런 여유는 사라지고, 되레 시승용 신차의 연료비까지 계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계에서도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애로 사항이 나타났다. 국내 교수 · 연구자들이 해외에서 열리는 학술회의나 세미나에 초청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해진 거다. 통상적으로 주최 측은 행사에 초청하는 학자들에게 발표비와 경비를 지원하는데, 청탁금지법으로 그 제약이 커졌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해당 행사가 직무와 관련된 것인지 ▲주최자 · 참석자는 누구인지 ▲행사의 목적과 내용은 무엇인지 ▲행사 운영에 있어 내부 결재가 존재하는지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따져봐야 한다. 청렴하고 투명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청탁금지법이 한편으로는 학자들의 자유로운 학문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청탁금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공직자들은 올해부터 농축수산물 및 그 가공품에 한정해 20만원(기존 10만원) 내에서 명절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다. 국회에서는 이를 두고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농어촌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세를 몰아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식사비 상한액을 기존의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명분은 역시 코로나19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경영난에 빠진 외식업체 · 자영업자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목적이다. 

의도는 좋다. 상한액을 늘리는 것도 공직자 및 그와 연관된 민간인들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단지 상한액을 높이는 것만으로 청탁금지법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을까.  

청탁금지법에는 100여개가 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정치인 · 언론인을 상대로 금품을 제공했던 ‘가짜 수산업자’ 스캔들에서 볼 수 있듯, 고가의 선물을 매개로 한 부정청탁은 아직도 만연하다. 청탁금지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청탁금지법 대대적 개선 필요  

청탁금지법이 본래의 취지를 되찾으려면 규정 내 들쭉날쭉한 기준, 지나치게 포괄적인 규제 범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가령, 청탁금지법의 적용 대상인 ‘공무수행사인’의 개념과 범위를 다시 정하고, 고위공직자들이 빠져나가기 쉬운 각종 예외사항들을 없애야 한다.

공직자와 민간인의 교류에서 ‘직무 관련성’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도 세분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은 줄이고, 공적 업무의 질은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래 대한민국의 국격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청탁금지법의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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