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분식회계 논란 홍역 치른 셀트리온
2018년 신외부감사법 도입했지만
우리나라 회계투명성 개선 요원해
경영의 기본 재무적 지표 정확해야

전세계적으로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 열풍이 불면서 비재무적 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회계 등 재무적 정보는 되레 뒷전으로 밀린 것 같다. 하지만 재무 정보는 기업의 경영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다. 이 안에 들어있는 숫자에 기업의 명운이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숫자가 기업의 진실을 담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이 분식회계 의혹으로 금융당국의 심판대에 올랐다.[사진=셀트리온 제공]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이 분식회계 의혹으로 금융당국의 심판대에 올랐다.[사진=셀트리온 제공]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이 분식회계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재고자산 관리, 의약품 판권매각, 해외 유통사와의 거래 등에서 셀트리온이 실제 매출·정산과 다르게 회계처리를 했다는 게 논란의 쟁점이었다.

4년 가까이 이어진 셀트리온 논란은 지난 3월 11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의결로 마침내 결론이 났다. 대심제大審制(제재 대상인 기업이 회의에 참석해 입장을 소명하는 제도)로 진행한 이번 의결에서 증선위는 “셀트리온의 회계처리 일부가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했지만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며 검찰 고발 대신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증선위는 셀트리온그룹에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담당 회계법인 감사 제한 ▲내부통제 개선 ▲과징금 부과 등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셀트리온그룹은 향후 투자자 및 외부 감사인에게 회계 정보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해 증선위에 보고하고, 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

이번 의결로 셀트리온은 증권시장에서 거래정지 및 상장폐지를 면하게 됐다. 내리막길을 걷던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의 주가도 다시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 3사의 소액주주만 8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셀트리온의 분식회계가 사실이었다면 투자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게 분명하다. 분식회계를 나와 상관없는 남의 얘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분식회계에서 ‘분식粉飾’이라는 단어는 2000년 미국 언론에서 처음 사용했던 ‘cosmetic accounting’이라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직역하면 ‘화장발 회계’다. 이를 일본에서 분식(ふんしょくㆍ훈쇼쿠)으로 번역하면서 한자어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분식회계라는 말이 통용됐다. 

물론 분식회계의 공식적인 명칭은 따로 있다. 영어로 ‘accounting fraud’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회계사기’다. 회계사기는 기업범죄 중에서도 죄질이 나쁘고 사회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 사회적 자본의 하나인 신뢰를 추락시키고, 종국에는 국가경쟁력마저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혹자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셀트리온)이 어째서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인 걸까. 사실 국내 기업의 분식회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전에도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은 여럿 있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당국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해도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또다른 분식회계 사건이 터져나오기 일쑤였다. 

대규모 분식회계의 대표적인 사례로 2015년 발생했던 대우조선해양 사건이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분식회계 규모만 5조원대에 이른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은 금융당국의 제재로 영업정지를 당했고, 법인에 속해 있던 회계사들은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영진도 무사하지 못했다.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회사의 매출액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자회사 손실을 반영하지 않는 등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고 전 사장은 2017년 대법원 판결에서 징역 9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회계투명성 개선 요원해 

대우조선해양 사건은 우리나라 회계제도가 변화한 분기점으로 꼽힌다. 이 사건 이후 2018년 11월 정부가 ‘신新외부감사법’을 도입하면서다. 신외부감사법의 취지는 회계투명성의 제고였다. 이를 위해 정부가 주기적으로 감사법인을 지정하고, 자산규모ㆍ업종 등에 따라 적정 감사시간을 적용하는 것으로 제도를 재정비했다.  

그렇다면 효과는 어땠을까. 대우조선해양 사건이 터질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는 61개국 중 61위, 2017년 63개국 중 63위로 연거푸 꼴찌를 기록했다. 신외부감사법을 도입한 이후에도 좀처럼 바닥(2018년 62위ㆍ2019년 61위)을 벗어나지 못했다.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2020년이다. 2020년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46위에 오른 한국은 2021년 같은 조사에서 64개국 중 37위에 올랐다. 신외부감사법을 도입한 후 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럼에도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비하면 회계 부문의 성과는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이는 단번에 회계투명성을 개선하기란 쉽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경제대국으로 꼽히는 독일(2021년 회계투명성 16위), 영국(32위), 일본(36위)도 회계 부문에서는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자본주의 원류源流로 꼽히는 미국조차 2021년 회계투명성 조사에서 20위에 그쳤다. 미국인들의 각별한 ‘숫자 사랑’을 떠올리면 의외의 결과다.  

하지만 미국 역시 분식회계로 큰 대가를 치른 적이 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에너지기업으로 꼽혔던 엔론(Enron)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엔론은 2000년 기준 연평균 성장률 6.6%, 연간 매출액 1008억 달러(약 122조원)를 기록하며 ‘가장 혁신적인 미국 기업’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곳이다. 

그런 엔론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게 바로 분식회계였다. 그 중심에 엔론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과 최고재무책임자(CFO) 앤드류 파스토(Andrew S. Fastow)가 있었다. 

이들은 매출액 성장세에 비해 수익성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자 회계조작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부풀렸다. 2001년 드러난 엔론의 분식회계 규모는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최악의 회계부정 스캔들로 남아있다. 

2001년 발생한 에너지기업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회계부정 스캔들로 기록됐다.[사진=CHRON 제공]
2001년 발생한 에너지기업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회계부정 스캔들로 기록됐다.[사진=CHRON 제공]

엔론의 분식회계가 미국 사회에 일으킨 충격과 파장도 엄청났다. 엔론은 파산했고, 분식회계를 주도한 스킬링과 파스토는 증권사기죄 혐의로 각각 징역 24년형,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엔론의 장부 감사를 담당했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 sen)도 엔론 스캔들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다 2002년 해체됐다. 

숫자에 진실을 담는다면…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의회는 제2의 엔론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이라는 엄격한 기업회계법을 제정했다. 자, 어떤가. 거짓으로 꾸민 숫자가 기업을 넘어 한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기업의 숫자를 책임지는 CFO의 역할도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CFO는 숫자의 파악ㆍ관리뿐만 아니라 중대한 업무의 컨트롤타워, 전사적 리스크의 관리자 역할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회계부정 리스크를 방지해야 할 책무도 당연히 CFO에 있다. 바라건대 기업의 CFO라면 자신들이 발표하는 숫자가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숫자만은 절대 속이지 말자는 것이다. 기업이 숫자를 속인다면, 회계 지능이 높아진 소액주주들도 예전처럼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다. 그들의 한 맺힌 응징은 생각보다 더 처절할지 모른다.

글=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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