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주유소 5곳 2주간 모니터링 결과
유류세 인하율 반영 시기와 반영률 비슷
유류세 인하 목적 분명히 하고 대안 고민해야

# “기름에 붙는 유류세를 줄여야 한다.” 그동안 기름값이 비싸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유업계에서부터 흘러나온 주장이다. 하지만 유류세율을 대폭 떨어뜨린 지금도 유류세율 인하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이들이 숱하다. 그러자 “고유가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 문제는 고유가 상황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유류세율 인하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유류세율이 ‘7%포인트 추가 인하’된 7월 1일부터 18일까지 특정 지역의 주유소 다섯곳(4대 정유사 폴주유소+알뜰주유소)을 지정해 가격 변동 추이를 살펴본 결과, 모든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 대비 휘발유는 89원 이상, 경유는 120원 이상 비싸게 팔고 있었다. 유류세율, 국제유가 변동 상황, 변동된 가격 적용 시점, 환율까지 모두 고려한 가격이다. 

# 유류세 인하책, 이대로 계속 끌고 가도 괜찮은 걸까.

시장은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지만 강제할 수단은 없다.[사진=뉴시스]
시장은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지만 강제할 수단은 없다.[사진=뉴시스]

지난 6월 8일을 기점으로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전환했다. 8일 배럴당 117.50달러였던 두바이유는 7월 15일 기준 101.03달러로 14.0%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122.11달러에서 97.59달러로 20.1%나 떨어졌다. 

이상한 건 국내 유가는 그만큼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아니 되레 올랐다.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L)당 2042.04원에서 2049.04원으로 0.34% 올랐고, 국내 경유 평균 판매가격 역시 L당 20 36.52원에서 2099.72원으로 3.1% 상승했다.

정유업계의 주장을 수용해 가격 반영 기간의 격차를 2주 정도로 잡아도 매한가지다. 6월 8일보다 2주 앞선 5월 25일 두바이유와 WTI는 배럴당 109.19달러와 110.33달러였는데, 7월 1일 106.34달러와 108.43달러로 떨어졌다. 하락률은 각각 2.6%, 1.7%였다. 

국제유가가 하락세인 상황에서 지난 7월 1일 정부가 유류세 법정 최대 인하폭을 30%에서 37%로 7%포인트 확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유가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이를 잘 보여주는 또다른 통계도 살펴보자.

6월 17일부터 7월 1일까지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8.55% 하락했는데, 7월 1일부터 15일까지 국내 휘발유와 경유의 평균 판매가격은 각각 4.43%, 2.68% 떨어지는 데 그쳤다. 유류세 인하폭 확대가 시장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건데, 평균 판매가격으로만 따진 탓에 나타난 착시는 아닐까. 

실제로 몇몇 미디어는 “기름값이 눈에 띄게 내렸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더스쿠프(The SCOOP)는 유류세 추가 인하 직전인 6월 30일부터 7월 15일까지 2주간 영등포구 일대 주유소 5곳(폴주유소 4곳+알뜰주유소 1곳)의 가격을 모니터링해봤다.

[※참고: 각 주유소 판매가격은 휘발유와 경유를 나눠 살펴보기 위해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비교했다. 국제 가격은 국내 가격보다 2주간 앞선 가격으로 비교했으며, 국제 가격에는 당시 환율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기준치 가격을 잡고 당시 주유소 판매가격과 비교했다.]

정부의 유류세율 7%포인트 추가 인하 방침에 따르면 6월 30일 대비 7월 1일 휘발유 가격은 곧바로 L당 57원, 경유 가격은 L당 38원(이하 기준치) 더 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 기준치만큼 휘발유 가격을 낮춘 곳은 알뜰주유소(-58원)뿐이었다.

두곳은 기준치보다 약간 덜 낮췄고, 한곳은 변동이 없었으며, 다른 한곳은 되레 42원을 인상했다. 경유 가격은 폴주유소 한곳을 제외하곤 인하폭이 기준치에 훨씬 못 미쳤다. 휘발유 가격에 변동이 없던 폴주유소는 경유 가격도 내리지 않았다. 

일주일 후(8일)에도 비슷했다. 휘발유 가격과 경유 가격을 유류세 7%포인트 인하폭보다 더 낮춘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추가 인하 첫날 가격을 바꾸지 않았던 주유소는 여전히 가격을 바꾸지 않았다.

2주 후(15일)에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모든 주유소가 휘발유 가격을 기준치보다 최소 22원, 최대 53원 더 많이 내렸다. 경유 가격은 대부분의 주유소들이 기준치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내렸고, 한곳은 기준치보다 조금 더 내렸다. 하지만 주유소별로 최대 41원을 더 적게 내렸다. 경유 가격에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셈이다. 

중요한 건 주유소들이 유류세 인하분을 지속적으로 반영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18일 기준으로는 모든 주유소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기준치보다 덜 내렸다. 휘발유는 최소 89원, 최대 101원을 덜 내렸다. 경유는 최소 120원, 최대 182원을 덜 내렸다. 말하자면 18일 기준으로 소비자들이 휘발유는 최소 89원 이상 비싸게, 경유는 최소 120원 더 비싸게 샀다는 얘기다.

[※참고: 이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게 있다. ▲석유제품 판매가격이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조금씩 변동하지 않는다는 점(일주일 후에도 같은 가격을 유지하는 곳이 많음) ▲주유소들이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하는 시기와 반영률이 꽤 비슷하다는 점 등이다. 정부가 합동점검을 통해 담합 여부를 조사한다고 하고 있지만, 과연 이런 부분까지 들여다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게 일부 주유소만의 횡포일까. 그렇지 않다. 12일 E컨슈머(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정부가 유류세를 기존 대비 20% 인하한 지난해 11월 12일 이후 8개월 동안 전국 주유소의 99.6%가 휘발유 가격과 휘발유 가격을 국제유가 인상 가격보다 더 많이 올렸다.

이는 폴주유소나 알뜰주유소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한국도로공사에서 운영하는 고속도로알뜰주유소조차 다르지 않았다. 유류세 인하 조치의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득을 봤을까. 당연히 정유사 혹은 주유소들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는 국제유가 상승기에 국민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그 인하분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않아 다수의 국민은 체감하지 못한다. 그 바람에 유류세 인하분의 혜택은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챙기고 있다.

세금을 정유사와 주유소에 나눠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참고: 정부(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들도 국민인데 그들이 수혜를 입는다고 유류세 인하 조치가 잘못된 건 아니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이는 ‘국민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유류세 인하 조치의 목적을 간과한 궤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정부 합동점검반이 시장을 잘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주유소들이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정부는 시장에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라’고 강제할 만한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도 않다. 담합과 같은 불공정행위가 드러나야 그나마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그런 행위를 적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류세 인하 조치 이후 지금까지 공정거래위원회에 단 한건의 고발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복잡한 문제 탓에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의견은 다양하다. 

유류세를 건드리지 말고, 자가용 이용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사진=뉴시스]
유류세를 건드리지 말고, 자가용 이용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사진=뉴시스]

첫째, ‘유류세를 더 낮추는 게 상책’이란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주유소들이 낮춘 유류세율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류세를 더 낮추는 건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게 분명하다.

사실 부작용도 많다. 지금과 같은 반복적인 유류세 인하 조치는 시장에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정부는 유류세를 낮춘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심어줄 수도 있다. 정부로선 한번 내린 유류세율을 다시 올리기도 쉽지 않다. 만약 그랬다간 국민의 반발을 부를 공산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가격고시제’를 다시 시행하면 어떠냐는 주장도 나온다. 정유사의 석유제품 공급가격과 주유소의 판매가격을 정부가 정하자는 거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997년에 폐지한 제도다.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커진 시장을 정부가 관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의 유류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유류세는 그대로 걷되 이 재원을 보조금 형태로 저소득층에 직접 지원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야 유류비 상승에 따른 부담을 크게 느끼는 이들에게 혜택이 가고, 정부의 모니터링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거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세계 각국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데 힘을 쏟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유류비를 보조하는 건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다른 한편에선 ‘국제유가에 따라 유류비가 오르내리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유류세는 그대로 두고, 대중교통으로 유입될 이들을 고려해 대중교통 지원을 늘리는 걸 생각해보자’는 의견이 나온다. 설득력이 없진 않지만, 이럴 경우 고유가에 따른 부담은 물론 정부의 물가관리 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여지가 있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됐든 현재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숱하다는 점이다. 유류세 인하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 건 아니지만, 투입 대비 효과를 따지면 분명 실패다.

어쩌면 목적이 불분명한 정책을 섣불리 시행한 뼈아픈 결과일지도 모른다. 저소득층의 유류비 경감을 위한 것이라면 유류세 인하보단 유류비 보조가 적절하고, 전국민 유류세 감면을 지향했다면 유류세 인하분 반영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유류세만 낮추고 모든 건 시장에 맡겼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 과연 이런 고민들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전임 정부의 뒤를 따라 실패한 정책을 따라갈 것인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지는 이제 윤 정부의 몫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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