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국민 안중에 없는 신구 권력 힘겨루기

협치가 실종된 분노의 정치는 정치혐오를 넘어 국민을 절망시킨다. 신구 권력 모두 국민을 바라봐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협치가 실종된 분노의 정치는 정치혐오를 넘어 국민을 절망시킨다. 신구 권력 모두 국민을 바라봐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대한민국은 정치가 국민의 삶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권 행태를 걱정하는 특이한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동 불발에 이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 한국은행 총재 후보 지명에 대한 반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법무부 업무보고 보이콧 등 사상 초유의 신구 권력 힘겨루기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국민을 신물나게 한다. 

[※ 참고: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8일 저녁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겸한 첫 회동을 갖는다. 대선이 치러진 지 19일 만으로,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 성사된 만남이다.]

대내외 경제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세계는 신新냉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 여파로 원유와 밀 등 곡물, 각종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며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과 성장둔화란 2중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연내 6차례 금리를 더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미국이 돈줄을 죄면 달러 투자금이 미국으로 역류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곳곳에서 긴축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 국내 증시가 영향을 받고, 원화 환율이 뛰는 배경이다.

국내 물가도 이미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서울시내 휘발윳값이 L당 2000원을 넘어섰다. 휘발윳값을 넘보는 경윳값에 화물차 운전사들은 달릴수록 적자가 쌓인다고 한숨을 쉰다. 수입 곡물 가격도 8년 9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특히 밀가루 가격 상승은 각종 식품과 음식 가격에 바로 전가된다. 국제유가와 세계 곡물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를 더 끌어올릴 것이다. 

사회적으론 코로나19 창궐이 생활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급속 확산하며 누적 확진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매일 300~400명이 코로나로 사망한다. 장례식장과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3일장을 넘어 8일장까지 하는 지경이다. 의료체계도 한계에 이른 상태다. 병원에선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못 구해 아우성이고, 약국에선 해열제와 감기약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경제·사회적으로 위기 및 재난 상황이다. 하지만 기민하게 대응하며 민생을 챙겨야 할 신구 정권은 정쟁을 일삼고 있다. 협치와 국민통합은 선거 때 잠시 캠페인으로 외쳤을 뿐 이내 갈등과 대립 구도로 돌아섰다. 서로 거칠고 날선 발언을 쏟아내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신구 정권의 잇단 파열음 배경에는 감사원의 감사위원 선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감사원의 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총 7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다. 그중 두자리가 현재 비어 있다. 자리를 지키는 5명 중 3명은 문재인 정부 성향 인물로 분류된다. 청와대가 한명만 더 임명하면 4대 3 구도로 기울어져 문 정부의 부패나 비리 적발 등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당선인 측과 청와대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역대 대통령 다수는 협치보다 여론에 호소하는 편 가르기로 야당을 굴복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공전하자 대국민담화를 통해 야당을 비판했다. 여야 간 공방이 벌어질 때마다 “야당이 민생을 외면하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공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집권 초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야당을 몰아세웠다. 청와대 눈에는 야당이 ‘촛불혁명’의 힘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데 급급한 적폐세력으로 비치는 듯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이튿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모시겠다”고 했지만, 구권력과 계속 충돌하고 있다.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넘도록 문 대통령과의 회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제1야당이 될 민주당사를 찾지도, 민주당 인사를 만나지도 않았다. 대신 용산 이전 논란이 커지자 지휘봉을 들고 집무실 조감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인수위 사무실 앞 천막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주겠다고 했다. 

지지율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한 윤 당선인으로선 협치는 정국을 이끌어가는 데 필요조건이다. 용산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도 찬성보다 반대가 많다. 협치가 불발되면 여소야대라는 현실을 감내해야 하고, 향후 국정은 험로를 걸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모이면 나라와 정치 걱정이다. 국민은 협치가 실종된 분노의 정치에 답답하고, 불안하고, 피곤하다. 민생과 경제, 국민 생명은 안중에 없이 힘겨루기를 일삼는 정치권 행태는 정치혐오를 넘어 국민을 절망시킨다. 

3월 24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오랜 만에 붉은 악마 응원단의 카드섹션이 펼쳐졌다. “보고 싶었습니다.” 정치권도 제발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꼴보기 싫은 정치’ 말고, 정치가 코로나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걱정하는 ‘보고 싶은 정치’ 좀 해주라.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