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시장이 먼저 반응한 50조 2차 추경 역풍

코로나 피해 보상을 위한 재원은 적자국채 발행 없이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원이 부족하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편이 낫다.[사진=뉴시스]
코로나 피해 보상을 위한 재원은 적자국채 발행 없이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원이 부족하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편이 낫다.[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 19일 만에 회동한 3월 28일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국고채 2년·3년·5년물이 일제히 20bp(1bp=0.01%포인트) 넘게 치솟았다. 미국발 금리인상 및 통화긴축이라는 외부 요인에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적자국채가 대거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는 내부 우려가 가세한 결과다.

윤석열 당선인은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위한 50조원 규모의 2차 추경 편성 방침을 공식화했다. 당선인 측은 본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지만, 지금까지 세출 구조조정으로 수십조 재원을 마련한 역사는 없다. 결국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조달할 테고, 이는 채권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고 시장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예산의 지출 구조조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본예산 중 절반은 교부금, 채무상환, 법정부담금(연금·건강보험), 사회보장지출 등 지출 근거와 요건이 법으로 정해진 의무 지출이다. 손댈 수 있는 재량 지출도 국방비·인건비 등을 빼면 줄일 수 있는 규모가 5조~10조원 규모로 전해진다. 당선인 측은 34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사업 구조조정을 검토한다지만, 이것도 청년 지원과 돌봄격차 해소 예산이 들어 있어 여의치 않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동참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피해를 보상하는 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선 공약 규모 50조원에 연연해선 곤란하다. 국가 예산을 사용하려면 규모와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수다. 50조원은 우리나라 연간 국방예산과 맞먹는 큰돈이다.  

50조원 추경은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0조원을 제시하자 윤석열 당선인이 맞받으며 내세운 것이다. 추경 규모를 미리 정하지 말고, 정확한 손실추계와 지출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합리적 규모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50조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돼도 1차 추경을 통해 16조9000억원을 지원하고 있으니 그 나머지를 논의하는 게 합리적이다.  

적자국채 발행은 국채 등 채권금리를 끌어올려 국민의 금리 부담을 가중시킨다. 국채 금리는 이미 7년 반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벌써 연 6%대 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이 등장했다. 신용대출 금리도 5%대로 올라갔다.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대출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코로나 피해보상금으로 얼마 지급하면서 대출금리를 상승시키면 중장기적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적자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국제유가와 각종 원자재,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심각한 상태인 물가 오름세를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2차 추경을 할 경우 중시해야 할 원칙은 추가적인 국채 발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선 직전 초유의 2월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1075조원을 넘보게 됐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많이 불어난 것을 비판해온 국민의힘과 새 정부가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두달 앞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땜질식 추경을 계속하면 국가재정을 관리하기 어려워진다. 감염병 관리를 위한 특별회계를 만들면 법으로 재원을 규정하는 게 가능해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목적에 맞게 지출할 수 있다.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부가가치세 수입의 10%, 개별소비세 수입의 10%를 기본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는 연 7조원 이상 재원을 바탕으로 코로나19 특별회계를 설치해 소상공인을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윤석열 당선인도 공약집에 ‘코로나 극복 및 회복지원 특별회계 설치해 한시적 운영’이라고 적었다.

국가채무와 재정적자를 일정 수준 이내로 억제하는 재정준칙 제정도 시급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4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하지만 한국은 2020년 말 정부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뒤 1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코로나 피해 보상은 필요하지만, 국가채무를 증대하는 적자국채 발행 없이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원이 부족한데 공약을 지키려고 무리하면 탈이 난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가능한 수준을 가려내고, 어려운 부분은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빚을 내지 않고 지출예산을 절약해 소상공인을 지원하려면 새 정부가 추경안을 만드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현 정부는 이미 확정돼 집행 중인 지출예산을 줄이는 데 소극적일 것이다. 인수위 차원에서 추경안을 준비해 5월 10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국회에 제출하고 심의해 결정하면 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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