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0.73%포인트 초박빙 접전의 의미

민심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한번 해보라’고 기회를 주면서도 충분한 지지를 몰아주진 않았다. 국민과 소통하며 옳은 일을 가려서 해야 할 책무가 윤 당선인에게 주어졌다.[사진=뉴시스]
민심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한번 해보라’고 기회를 주면서도 충분한 지지를 몰아주진 않았다. 국민과 소통하며 옳은 일을 가려서 해야 할 책무가 윤 당선인에게 주어졌다.[사진=뉴시스]

국민의 심판은 준엄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48.56% 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47.83%. 1987년 대통령직선제 부활 이후 가장 적은 표 차이(0.73%포인트·24만7077표)로 당락을 가른 20대 대통령선거는 냉정하고 무서운 민심을 엿보게 하고 여러 숙제를 남겼다. 

국민은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져온 진보-보수 권력의 10년 주기를 5년으로 단축했다.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과 장모를 둘러싼 주가조작 의혹 등 문제가 불거졌지만, 유권자들에게는 부동산값 폭등, 양극화 심화, 청년실업 등 현 정부 5년의 실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시도별 득표 상황을 보면 얼추 서울에서의 표 차이(31만766표)만큼 이 후보가 총 득표에서 밀렸다. 그만큼 서울 시민의 집값 민감도가 컸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이 후보는 호남에서, 윤 당선인은 영남에서 각각 싹쓸이에 가까운 표를 얻음으로써 엷어지는 줄 알았던 지역주의를 재확인시켰다.  

우리 사회의 넘쳐나는 갈등 문제는 진보-보수 진영 간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표를 노린 갈라치기 전략이 전개되며 세대 갈등을 넘어 젠더 갈등이 두드러졌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자. 대선의 향방을 가른 최대 부동층인 2030세대에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당선인은 박빙이었다. 20대 이하에서 이 후보는 47.8%, 윤 당선인은 45.5% 지지를 얻었다. 30대에선 윤 당선인 48.1%, 이 후보 46.3%였다. 

그런데 성별 표심은 확연히 갈렸다. 20대 이하 남성에서 윤 당선인이 58.7%인 반면 이 후보는 36.3%에 그쳤다. 반대로 20대 이하 여성에선 이 후보가 58.0%, 윤 당선인은 33.8%였다. 20대 이하 남녀 10명 중 6명이 각각 윤 당선인과 이 후보에게 표를 준 것이다. 30대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30대 남성에선 윤 당선인 52.8%, 이 후보 42.6%였는데 30대 여성은 이 후보 49.7%, 윤 당선인 43.8%로 나왔다. 

다른 세대에선 보이지 않는 성별 표심 엇갈림 현상이 2030세대에서 뚜렷한 것은 국민의힘과 윤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 ‘이대남(20대 남성) 몰입’ 공약을 동원한 젠더 갈라치기 전략을 구사한 결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반면 여성 유권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윤 당선인은 20·30세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이 후보가 반사효과를 봤다.  

개표 결과 무효표가 30만7542표로 윤 당선인과 이 후보 간 득표 차이보다 6만여표나 많은 점도 주목된다. 이번 무효표는 18대·19대 대선 때의 두배를 넘는 규모다. 무효표가 급증한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의 ‘사퇴’ 문구가 본투표 투표용지에 반영되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게다.

두 후보가 사퇴하기 전, 2월 23~28일 실시된 재외국민 투표에서도 무효표가 나왔을 수 있다. 어찌 됐든 1·2위 후보간 득표 차이보다 무효표가 많다는 사실에 정치권은 ‘표를 의식한 정치공학적 후보 단일화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유권자의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에선 ‘전쟁’화한 지 오래다. 더구나 20대 대선은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0선’ 후보간 경쟁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실패를 보여준다. 

민심은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윤 당선인에게 ‘한 번 해보라’고 기회를 주면서도 충분한 지지를 몰아주진 않았다. 여소야대 국회 구도에서 총리 인준과 내각 구성 등 정부 출범과 국정 운영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국민통합과 협치, 정치개혁 등 쉽지 않은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지역별·세대별·성별 갈라치기를 방치하거나 다시 쓰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윤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후보 자신과 국민의힘의 승리라기보다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이어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많이 듣던 표현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그랬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국민이고, 이들 국민을 섬기겠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실천이다. 그러려면 갈라치기하지 말고, 국민과 소통하며, 인기를 끄는 일보다 옳은 일을 가려서 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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