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제도 만든 선진국
‘무엇이 필요한가’ 고민할 때

엔데믹(풍토병·endemic) 전환을 앞두고 노사 사이에 ‘다른 의견’이 충돌한다. 한쪽에선 출근을 권유한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한쪽에선 ‘재택’을 원한다. 재택근무가 확산한 만큼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논리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사측은 사측대로 노측은 노측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럼 엔데믹 상황에서 우린 뭘 해야 할까. 해외는 신新노동학을 어떻게 설계해 놨는지 살펴보자.

엔데믹 전환을 앞두고 출근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엔데믹 전환을 앞두고 출근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출퇴근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체력을 허비하는 줄 몰랐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시간을 공짜로 얻은 기분이다.” 지난 2020년 1월, 국내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재택근무가 확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재택근무자는 114만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9만5000명과 비교하면 무려 12배 증가했다. 재택근무 도입을 희망하는 이들도 55만1000명에서 118만8000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전에 없던 신조어도 등장했다. 집(home)과 사무실(office)를 합친 ‘홈피스’, 일(work)과 삶(life)을 적절하게 섞는다(blending)는 ‘워라블’, 화상회의를 할 때 허리 위(upper)의 옷(wear)만 갖춰 입는다는 ‘어퍼웨어’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재택근무는 우리 사회에서 조금씩 일상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가 지난 1일 재택근무를 종료하고 ‘사무실 출근’ 체제로 전환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유행이 정점을 지났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힌 포스코는 서울지역 사무직 직원에게 우선 적용하고 계열사도 순차적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포스코를 시작으로 사무실 출근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재택근무 직장인 8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자.

전체의 87.3%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유지되길 희망한다고 대답했다. 그동안 재택근무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응답자 중 69.1%는 그 이유로 ‘출퇴근시간 절약’을 꼽았다. ‘출퇴근 대중교통 이용 스트레스가 없어서(42.0%)’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36.3%)’라는 의견도 많았다.

반면 11.8%는 재택근무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대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업무 효율성 저하(71.7%)’였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요 대기업(매출액 상위 600대 비금융기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재택근무로 ‘업무 효율성이 악화했다’는 응답은 46.1%로, ‘좋아졌다’는 응답 10.1 %보다 36.0%포인트 높게 나왔다. 

업무 효율성·생산성 문제는 재택근무 유지 여부를 두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논란 중 하나다. 근로자와 기업 간 시각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직장인 대부분이 재택근무 유지를 희망하지만 상당수 기업이 “엔데믹으로 전환하면 예전 근무형태로 돌아갈 것(56.4%·한국경영자총협회 매출 100대 기업 조사)”이라고 선언하는 것도 결국 업무 효율성·생산성 문제와 연관이 있다.

이번엔 한국은행 런던사무소의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에서도 재택근무의 생산성을 두고 의견이 나뉜다. 재택근무로 기업의 중간비용(사무실 임차비·에너지 사용비 등)이 절감되고 출퇴근시간이 줄어든 긍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직원 간 상호작용이 결여되고 육아·가사 병행으로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부정적인 요인이 혼재해 있다고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업무 특성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콜센터는 재택근무의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보다 높았지만 은행은 재택근무가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끝으로 보고서는 “향후 재택근무가 더욱 활발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부정적인 요인을 보완하는 조치들이 시행된다면 생산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해외에서는 오래전 재택근무 관련 제도를 마련했다. 재택근무로 발생할 수 있는 노사 갈등의 요인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은 2002년 ‘텔레워크에 관한 기본 협정(The European Framework Agr eement on Telework)’을 체결했다.

[※참고: 텔레워크는 멀리서(tele) 일한다(work)는 의미로, 1973년 미국에서 나온 신조어다.] 독일은 지난해 ‘모바일 워크법(Mobile Work Act)’이라는 재택근무 법률안을 공표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갑작스럽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터지자 아무런 준비 없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면서 “2020년 고용노동부가 재택근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제도화된 대책은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엔데믹으로 재택·원격근무 또는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업무가 확산할 것이다. 노사 간 다툼 없이 표준화된 법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택근무가 ‘좋다’ ‘싫다’를 따지는 비생산적인 질문이 아닌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생산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아직까지 재택근무 관련 통계는 사무관리나 대기업 중심이었기 때문에 소위 좋은 일자리의 워라밸만 부각되는 양극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점들도 세심하게 살펴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택근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만큼 이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은 SK텔레콤의 거점옾피스.[사진=뉴시스]
재택근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만큼 이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은 SK텔레콤의 거점옾피스.[사진=뉴시스]

이영면 동국대(경영학) 교수는 “구성원 간 소통이 많이 필요한 직무는 사무실 출근이 효과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대면 근무보단 효과가 떨어지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고, 회사마다 처한 환경은 다르겠지만 ICT 기술을 잘 활용하면 재택근무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장점은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해 재택근무 확산에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엔데믹 전환을 앞둔 지금, 우리는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성숙한 재택근무 문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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