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약사의 재무설계
빚만 갚는 게 능사는 아냐

신용카드 할부금부터 주택담보대출까지…. 많은 이들이 대출을 달고 산다. 다만, 대출에 대비하는 자세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대출을 먼저 갚는 데 올인하고, 어떤 이는 대출 상환을 뒷전으로 미뤄놓고 투자에 집중한다. 문제는 둘 다 좋은 방법이 아니란 점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듯, 대출 상환과 투자도 균형이 필요하다. 여기 대출 상환에 온 힘을 쏟는 ‘페이 약사’가 있다. 그의 가계부를 통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살펴보자.

30대 페이 약사인 박씨는 소득의 절반을 대출을 갚는 데 쓰는데, 최선의 선택인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30대 페이 약사인 박씨는 소득의 절반을 대출을 갚는 데 쓰는데, 최선의 선택인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때 ‘페이 약사의 월급’이란 제목의 게시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남의 약국에 근무하면서 월급 받는 약사의 소득을 정리한 글이었는데, 약사의 소득 수준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이 글은 금세 누리꾼의 관심을 끌었다.


흥미로운 건 게시물에 언급된 약사의 월급이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에서 근무하는 약사의 월급이 수도권보다 적게는 50만~100만원에서 많게는 150만~200만원 더 많았다. 액수가 과장된 듯하지만 주장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약사의 월평균 수입은 대도시 534만원, 농촌지역 590만원이었다(2019년 기준).

지역에 따라 페이 약사의 월급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근무처가 도심과 가까워질수록 일하고자 하는 약사가 많아 그만큼 월급이 줄어드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페이 약사로 일하는 박은혜(가명·32)씨도 약사치곤 소득이 적은 편에 속한다. 그의 월소득은 450만원이다. 평범한 직장인에 비하면 금액이 적은 게 아니지만, 일주일에 6일을 근무하고 받는 월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그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재무목표도 구체적으로 여러개 세웠다. 1순위는 전세보증금이 오를 것을 대비해 2년 안에 4000만원가량의 여유자금을 만드는 것이고, 2순위는 1억8000만원짜리 전셋집에 묶여 있는 전세대출금 잔액 6000만원(연이율 약 2%)을 하루빨리 갚는 거다.

다음은 ▲5년 안에 차 구입 자금 3000만원 모으기 ▲10년 안에 내 집 마련을 위한 자금 3억원 모으기 ▲65세부터 노후연금 200만원씩 수령하기 ▲부모님 건강을 위한 비상금 1000만원 모으기 순이다. 이 목표를 전부 대비하려면 꽤나 많은 여유자금이 필요해 보였다.

Q1 지출구조

그럼 박씨의 가계부를 한번 살펴보자. 언급했듯 박씨의 월소득은 450만원이다. 여기서는 월소득 기준으로 소비생활을 따져보기로 했다. 얼마 전 스마트폰을 바꾼 박씨는 기기할부금을 포함해 통신비로 9만원을 지출한다.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는 65만원, 공과금은 8만원이다. 교통비와 문화생활비는 10만원씩 낸다. 의류비·휴가비·운동비 등 1년간 쓰는 비정기 지출은 월평균 81만원이다.

박씨는 전세대출 원리금을 상환(월 110만원)하는 것 외에도 개인적인 용도로 쓴 마이너스 통장(잔금 1000만원·연이율 약 4%)을 갚아나가고 있었다(월 104만원). 마지막으로 보험료(26만원)까지 계산하면 박씨의 정기지출은 423만원이다. 금융상품은 청약저축(2만원)과 개인연금(25만원)이 전부인데, 이를 합하면 박씨의 월 지출은 총 450만원이다.

Q2 문제점

알뜰하게 가계를 설계한 것 같지만, 언뜻 봐도 저축액이 부족하다. 박씨가 하는 저축이라곤 청약통장에 2만원 넣는 것과 개인연금이 전부다. 일반적으로 20~30대 싱글이 소득의 절반을 저축에 할애하는 것을 생각하면 소득의 6.0%밖에 저축하지 않는 박씨의 상황은 문제임에 틀림없다.

박씨는 “대출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는 성격”이라면서 “남는 돈을 모조리 대출을 갚는 데 쓰고 있다”며 저축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가계부를 되짚어보면 박씨가 먹고 생활하는 데 쓰고 남은 돈을 모조리 대출금을 갚는 데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대출을 빨리 갚기 위해 애쓰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저축 등을 통해 목돈을 만들어 투자를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한다면 또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박씨에게 대출만 갚기보단 재테크로 종잣돈을 마련해보자고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지출액이 꽤 큰 비정기지출(월 81만원)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경험상 비정기지출 예산을 미리 짜두지 않으면 과소비의 덫에 걸릴 위험이 크다.

Q3 해결점

필자는 박씨가 밝힌 재무목표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솔루션을 제시하려 애썼다. 그러기 위해선 여유자금부터 만들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연이율(2%)이 낮은 전세대출 상환금(월 110만원)을 10만원으로 확 줄여 이자만 갚기로 했다. 연이율(4%)이 센 마이너스 대출 상환금(104만원)은 60만원으로 줄여 원리금도 조금씩 상환하자고 조언했다.

여기서 생긴 월 142만원을 저축에 넣어 종잣돈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중 100만원은 CMA통장에 저축할 예정이다. 이는 81만원씩 쓰는 비정기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인데, 예상보다 지출이 늘어날 경우를 감안해 저축액을 100만원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비정기지출은 자연스럽게 박씨의 가계부에서 사라졌고, 사실상 142만원 중 17만원만 쓴 셈이 됐다.

남은 125만원 중 100만원은 적금통장에 납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쓰인 돈은 향후 전세대출 원리금을 갚거나 다른 재테크 상품에 투자하는 데 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25만원은 적립식 펀드에 납입하기로 결정했다. 납입액을 더 늘리고 싶었지만 안전을 중시하는 박씨의 투자성향을 고려해 손실 위험이 없는 적금에 더 많이 넣기로 했다.

납입 만기는 1년으로 설정했고, 성과를 살펴본 뒤 적금과 적립식 펀드의 비중을 조절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박씨는 안전성과 수익성을 균형 있게 맞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중요한 건 박씨가 재무설계를 제대로 실행에 옮기느냐다. 결국 가계는 본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

글 = 천눈이 한국경제교육원㈜ PB 팀장
nunn2247@naver.com | 더스쿠프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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