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 영업정지 처분 효율성 논란
집행정지 가처분 통해 영업활동 지속
대체할 수 있을 땐 솜방망이 과징금 선택

“HDC현대산업개발에 내려진 행정처분에 실효성이 없다.” 최근 서울시가 HDC현산에 내린 2건의 영업정지 처분을 두고 쏟아져 나온 지적이다. 1건은 HDC현산이 신청한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이 인용돼 행정처분이 언제 이뤄질지 기약할 수 없게 됐고, 다른 1건은 과징금 4억원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서울시와 법원이 대기업을 봐주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여기엔 다른 허점이 숨어 있다. 

HDC현산은 2건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영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HDC현산은 2건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영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에 내린 행정처분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6월 발생한 광주 학동 재개발현장 철거건물 붕괴사고의 책임을 물어 서울시가 HDC현산에 행정처분을 하는 과정에서 실효성 논란이 불거져서다. 기업이 잘못을 저질러 벌을 주려는데, 이게 벌인지 아닌지 모호하다는 게 논란의 골자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참고: 서울시는 올해 1월 터진 HDC현산 광주 화정동 아파트 신축공사 외벽 붕괴사고에 관한 행정처분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따져 보자. 현재까지 HDC현산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에 내려진 행정처분은 2건이다. 그중 1건은 ‘부실시공’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철거도 시공에 포함된다’고 해석한 국토교통부가 서울시에 HDC현산의 부실시공에 관한 행정처분을 요청했고, 서울시는 지난 3월 30일 8개월의 영업정지를 처분했다.[※참고: 사고가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났는데도 서울시가 처분을 내리는 건 행정처분 대상 기업의 본사가 서울시에 등록돼 있어서다.]

다른 1건은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에 관한 행정처분이다. 도급받은 공사를 하도급했으면 하수급 업체를 관리할 의무가 원청에 있는데, 원청인 HDC현산이 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거다. 지난 4월 14일 서울시는 ‘부실시공’ 영업정지 외에 추가로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2건의 행정처분대로라면 HDC현산은 1년 4개월간 영업활동을 할 수 없다. 하지만 HDC현산은 행정처분과는 무관하게 당분간 영업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논란❶ 가처분의 효력 = 우선 ‘부실시공’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은 집행정지됐다. HDC현산이 이 행정처분을 받자마자 법원에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함과 동시에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서울행정법원이 4월 14일 HDC현산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HDC현산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게 가처분을 인용한 이유다. 

이에 따라 HDC현산에 내려진 8개월 영업정지가 실현되려면 수년이 걸릴 공산이 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련 재판이 3심까지 간다면 행정처분이 실제로 집행되는 데 5년이 걸릴지 6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서울행정법원의 ‘가처분 인용’을 비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 법원이 가처분을 받아준 건 HDC현산만을 위한 조치가 아니어서다. 하도급 업체나 자재납품 업체 등 아무런 잘못 없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잘못을 저지른 건설사는 면죄부를 받은 채 영업활동을 펼쳐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의 답은 후술하기로 하고, 두번째 영업정지 처분의 현 상황을 살펴보자. 

■논란❷ 봐주기 갑론을박 = HDC현산에 내려진 2건의 행정처분 중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에  관한 8개월 영업정지 건은 언급했듯 과징금으로 대체됐다. 그러자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ㆍ화정동 참사 시민대책위원회(이하 현산시민대책위)’ 등 일부에선 “서울시가 HDC현산을 봐준 것 아니냐”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좀 냉정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제80조 제1항 별표6)에 따르면 지자체가 건설사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경우는 크게 네가지다. ❶시정명령(건기법 제81조 제5호ㆍ제7호ㆍ제10호)을 정당한 사유 없이 행하지 않은 경우 ❷건설기술진흥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건기법 제82조 제1항 제6호ㆍ제7호, 제2항 제5호)한 경우(중대재해와 국가기관의 요청, 부실공사 등 포함) ❸과징금을 제대로 안 내거나 과징금을 안 낸 상태에서 다른 규정을 또 위반해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 ❹행정처분 대상(건설사업자)이 과징금 부과를 원하지 않는 경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자체가 ‘이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❶~❸의 요건에 해당한다면 지자체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 ❶~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지자체는 영업정지 혹은 과징금 중 선택해서 처분할 수 있다. HDC현산의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은 ❶~❸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인 서울시는 영업정지 처분이나 과징금 부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❹의 요건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제80조 제1항 별표6)에 따르면, 건설사업자가 과징금 부과를 원하지 않는 경우 지자체는 무조건 영업정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❶~❸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에서 건설사업자가 과징금 부과를 원할 경우)엔 영업정지가 아닌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형 건설사가 선택의 기로에서 영업정지를 택한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다”면서 “HDC현산 역시 과징금을 선택해 우리로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두환 한두환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서울시가 HDC현산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을 한 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형 건설사들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곧바로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영업정지를 언제 받을지 조정한다.[사진=뉴시스]
대형 건설사들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곧바로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영업정지를 언제 받을지 조정한다.[사진=뉴시스]

■논란❸ 실효성 없는 제도 = 논란❶과 논란❷를 살펴보면, HDC현산이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두건이나 받고도 멀쩡히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줘서도, 서울시가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해줘서도 아니다. 

문제는 실효성이 없는 제도에 있다. 논란❶의 사례처럼, 집행정지 가처분이 사회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기업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제도를 활용하면 행정처분을 기약도 없이 미룰 수 있다. 논란❷의 경우에서 보듯, 제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건설사는 영업정지 처분과 터무니없는 수준의 과징금 처분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행정처분을 골라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심각한 건 이런 제도적 허점을 HDC현산만 파고든 게 아니란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을 통해 최근 5년간(2017~2021년)의 건설사 영업정지 처분 현황을 살펴보니, 영업정지 처분의 실효성은 거의 없었다. 

이 기간 건설사(2021년 시공능력평가 100위 기준)들이 받은 영업정지 처분은 총 17건이었다. 이중 11건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발목이 잡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후 행정처분이 이뤄졌다. 가처분 탓에 행정처분이 뒤늦게 이뤄진 11건 중 8건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 2건은 설계 기준 미달ㆍ불량자재 사용, 1건은 시설ㆍ장비 기준 미달로 인한 영업정지 처분이었다.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집행정지 가처분으로 이익을 최대한 누린 끝에서야, 그것도 자신들이 원하는 시기에 행정처분을 받은 셈이다.[※참고: 2021년 내려진 영업정지 처분은 총 7건인데, 이 가운데 제대로 집행이 이뤄진 건은 1건에 불과하다. 4건은 건설사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집행되지 않았고, 1건은 집행정지 가처분 이후 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 처분이 철회됐다. 나머지 1건은 건설사 대표가 건설업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일수가 15일 감경됐다.] 

전체 17건 중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11건을 제외한 나머지 6건은 영업정지 처분이 곧바로 집행됐는데, 주목할 건 이들 모두 자본금 기준 미달이나 보증금 기준 미달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과징금을 낼 돈이 없어 영업정지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처럼 기업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제재가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건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한두환 변호사는 “건설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행정처분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면 이는 당초 법 취지와 맞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면서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행정처분 규정을 어떻게 손보는 게 좋을까. 처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건설사가 집행정지 가처분이나 과징금 등으로 회피할 수 없도록 영업정지 처분을 강력하게 집행하는 거다. 다른 하나는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을 부과할 때 과징금 액수를 영업정지가 유발할 손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거다.

현재 여론은 “HDC현산을 시장에서 퇴출하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영업정지 처분의 강력한 집행에 무게가 실려 있는 셈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제3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점에서 더욱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상당수 전문가는 과징금 수준을 영업정지에 따른 손해와 맞먹도록 손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원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과거에도 건설사의 영업정지 처분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지만 집행정지 가처분 제도를 악용하는 걸 현실적으로 막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울러 건설사와 관계된 협력업체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무작정 영업정지 처분만을 주장하기보다는 과징금 규정을 강화하는 게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 “영업정지와 과징금 중에서 건설사들이 과징금을 택하는 건 그게 더 이익이기 때문”이라면서 “애초부터 과징금으로 처분을 내리면 건설사의 회피 수단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HDC현산에 내린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시가 HDC현산에 내린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잘못을 저지른 건설사는 자신에게 내려지는 행정처분의 수위를 취사선택할 수 있었다.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었다. 법망 안에서 그런 선택권을 부여받았다.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HDC현산이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런 실효성 없는 제도, 언제까지 더 유지할 텐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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