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과 사각지대
학동 사고 과징금으로 일부 대체
화정동 사고는 아직까지 청문 중

7개월 간격을 두고 같은 도시에서 두번의 건설 사고가 벌어졌다. 지자체는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고 정부가 만든 사고조사위원회는 가장 큰 처벌인 등록 말소와 영업정지 1년 처분을 지자체에 권고했다. 그러나 엄중한 처벌은 없었고, 정부의 개선책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2022년 1월 발생한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시공 현장 붕괴 사고는 아직까지 행정 처분이 결정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2022년 1월 발생한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시공 현장 붕괴 사고는 아직까지 행정 처분이 결정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 2021년 6월 9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수주한 도시정비사업 현장(광주 학동)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변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길 가던 버스 위로 무너져 내렸다. 시민 8명이 다치고 9명은 목숨을 잃었다. 

# 2022년 1월 11일. 이번에는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시공 현장(광주 화정동)에서 아직 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건물이 붕괴했다. 1명이 다치고 노동자 6명이 사망했다. 

붕괴 사고가 발생한 시점부터 2개월간 국토교통부는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운영해 사고 원인을 파악했다. 이 위원회는 무단 공법 변경, 구조물 안전성 결여, 콘크리트 품질 부실, 감리 부실 등 거의 모든 건설 과정에서 총체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최대 영업정지 1년이나 등록말소가 가능한 건설산업기본법 83조 10항을 적용할 수 있다며 관할 지자체(서울시 등)에 엄중한 판단을 요청했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서울시는 2021년 6월에 발생한 학동 철거 현장 사고는 ‘부실시공(2022년 3월)’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4월)’으로 각각 8개월씩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영업정지 처분을 두번 받은 셈이었지만, 현산은 영업활동을 계속했다. ‘부실시공’을 문제 삼았던 영업정지는 현산이 제출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효력을 잠시 잃었다.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과 관련한 영업정지는 과징금으로 대체했다.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과징금’과 ‘집행정지’로 일단락된 셈이다.

그럼 화정동 사고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론 난 게 하나도 없다. 서울시는 건설사고조사위가 원인을 발표한 후인 8월 현산의 의견을 들었다. 원칙대로라면 청문 이후 1개월 내 처분이 내려져야 했지만 서울시는 현산에 ‘추가 청문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청문 시점은 올해 안으로 예정돼 있지만, 명확한 날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산이 추가 소명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미 전달했고 광주시 측이 의견을 개진한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늦는 건 처분만이 아니다. 사고 직후 ‘제도 개선을 하겠다’는 계획 중 일부는 아직까지 현실화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건 민간 주택공사 감리 배치 기준이다. 국토부는 공공공사에만 있던 감리 배치 기준을 민간주택공사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7월에야 감리제도 개선 연구를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 갈 길이 멀단 얘기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익희 현산 대표(왼쪽)와 최익훈 현산 대표. [사진=뉴시스] ​
​지난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익희 현산 대표(왼쪽)와 최익훈 현산 대표. [사진=뉴시스] ​

국토부가 직접 처분을 내리는 개선책도 지금으로서는 반쪽짜리다. 서울시가 주저하고 있는 사이 국토부가 형사 재판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직권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시행령을 바꿨다. 하지만 이마저도 건설사고조사위(사망자 3명 이상ㆍ부상자 10명 이상ㆍ붕괴 등으로 재시공 필요)가 열리는 사건에만 적용할 수 있다. 

사고는 광주에서 터졌는데,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은 서울시에서 담당하는 구조적 문제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일부 개정안(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월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 개정안이 통과해야 서울시(건설업체 등록 소재지)뿐만 아니라 광주시(사고 발생 소재지)도 현산(사고 책임 업체)에 행정 처분을 내릴 수 있다. 

만약 학동 사고와 관련한 영업정지처분이 그대로 이뤄졌다면 현산은 3월부터 11월까지 신규 수주를 할 수 없었다. 가처분을 통해 ‘집행정지’를 얻어낸 현산은 그 기간 도시정비사업을 포함해 9건의 신규 수주를 했다. 금액으로 치면 2조467억원 규모다. 신규 수주 계약 중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맺은 공공재개발 사업(3307억원)도 있다.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한발짝 뒤처진 상황에서 현산은 여전히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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