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등록제에 숨은 숱한 문제점

#반년 만에 같은 도시에서 두번의 중대 건설 사고가 발생했다. 두 사고 현장의 시공사(HDC현대산업개발)마저도 같았다. 이 때문인지 해당 건설사의 건설업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 ‘건설업 등록’을 취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이 답을 찾기 위해선 우리나라가 어떤 제도를 택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건설업을 하려면 건설업 등록을 해야 한다. 일정한 기준만 충족하면 건물을 만들 수 있다. 1999년 시장 활성화를 취지로 건설업 면허제를 등록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진 만큼 문제점도 숱하다. 건설업 등록 기준은 지나치게 간소화돼 있고, 갱신 주기도 없다. 대표자, 회사주소 등 변경할 게 생겼을 때엔 자율적으로 신고해야 하지만, 이때 사고기록이나 시정명령ㆍ영업정지 등 행정처분 현황은 기록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문제로 건설업 등록이 취소된 건설사가 ‘재등록’하는 절차가 까다로운 것도 아니다. 재등록 금지기간(명의 대여 제외 최대 5년)만 지나면 등록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때에도 어떤 사고를 냈는지, 행정처분은 무엇이 있는지 적을 필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를 친 건설사의 건설업 등록을 취소하는 게 상책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건설업 등록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건설업 등록제의 현실과 해외 사례까지 짚어봤다. 

광주 서구 화정동 HDC현산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광주 서구 화정동 HDC현산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건설의 문제 
■ 문턱 낮춘 등록제 위기만 키워놔 
■ 건설업 등록제 문제점 따져봐야 


2021년 6월 9일 철거 중인 건물이 도로로 쏟아져 내렸다. 사고 원인으로는 불법 재하도급을 통한 날림 공사가 지목됐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2년 1월 이번에는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져 내렸다.

불법 재하도급, 충분한 검토 없이 이뤄진 시공 행위가 원인으로 꼽혔다. 모두 HDC현대산업개발의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비극이었다. 현장 노동자는 물론 시민까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건설업 등록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 현장 사고를 연이어 낸 건설업체의 ‘건설업 등록 취소’는 얼마만큼 효과 있는 조치일까. 답을 찾으려면 우리나라가 ‘건설업 등록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설업 등록제의 원형은 건설 면허제도다. 이 제도는 건설사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업체를 골라내기 위해 1950년대에 도입했다. 공사실적, 자금, 신용, 기술 등을 기준으로 면허를 발급하고 건설공사를 계약대로 하지 못한 사업자에게는 법적 조치를 취했다. 정부가 면허 발급으로 건설업체의 수준을 관리했던 거다.

능력이 떨어지는 건설업체가 건물을 지었을 때 발생하는 피해가 재산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제도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건설업 등록제는 진입 문턱이 점점 낮아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의 건설업 등록제는 진입 문턱이 점점 낮아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건설 면허제가 부실시공까지 막을 수 있던 건 아니었다. 1990년대 성수대교 붕괴(1994년)ㆍ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이후 부실시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수많은 시민이 사망하고 피해자가 됐다.

성수대교 시공사였던 동아건설은 다양한 건설 면허 중 ‘철근재설치업’ 면허가 취소돼 철 구조물이 들어가는 대형 건축물을 만들 수 없게 됐다. 삼풍백화점 시공을 담당했던 삼풍건설산업은 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고, 골조공사를 맡았던 우성건설은 6개월간 영업이 정지됐다.

그런데 두 사고 이후 정부는 건설 면허의 문턱을 되레 낮췄다.[※참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김영삼 정부 시절에 터졌다. 건설 면허제도를 바꾼 건 1998년 출범한 국민의정부 때다.] 1999년 정부는 건설산업기본법을 개정해 건설 면허제를 건설업 등록제로 전환했다.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5년에 한번씩 이뤄지던 면허 갱신도 함께 폐지됐다.

건설업 등록제에서도 건설 면허제와 비슷한 등록 기준을 적용했다. ▲기술능력 ▲자본금 ▲시설 및 장비 등이다. 면허 갱신을 없애는 대신 ‘주기적 등록’이란 제도를 도입해 보완했다.[※참고: 2016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으로 주기적 등록도 현재는 이뤄지지 않는다.] 등록 기준에 해당하는 내용이 바뀌면 일정 기한 내 자율적으로 신고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건설업 등록제도는 건설업체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만한 제도일까. 건설업 등록 기준을 다시 세세하게 살펴봤다. 건설 업종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 부문은 3가지다. ▲명확한 사무실 ▲자본금 ▲자격증을 가진 건설기술인 보유 여부다. 건설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한 셈이지만, 문제가 숱하다. 

■건설업 등록제 빈틈❶ 남지 않는 기록 = 첫째, 시공사의 과실이나 고의로 발생한 사고는 건설업 등록제 아래에선 잡아내기 어렵다. 변경 신고를 할 때 사고나 행정처분 관련 사항을 기록할 필요가 없어서다. [※참고: 처음 건설업에 등록할 땐 ‘행정처분’을 받았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설립하기도 전에 행정처분을 받을 이유가 없어서다. 다만, 변경 신고를 할 때 ‘행정처분’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 건 문제다.] 

물론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재해나 사고가 발생하면 어차피 건설업체는 행정처분을 받는다. 큰 잘못이면 등록취소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그게 아니라면 시정명령으로 잘못을 고친다. 그런데도 건설업 변경 신고를 할 때 행정처분 내용을 넣을 필요가 있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건설업체의 부실시공이나 불법하도급이 적발될 경우 개별법에 따라 가볍게는 시정명령에서부터 과태료, 과징금, 영업정지, 등록말소 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빈틈이 있다. 모든 사고가 행정처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홍근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 16~2019년 국토교통부가 각 지자체에 보낸 영업정지 요청 117건 중 실제로 이뤄진 건 25건(22.2%)에 불과했다. 무혐의 또는 처분불가 처리된 건은 41건(35.0%)으로 되레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7년 발생한 평택대교 상판 사고다. 당시 시공 중이던 다리가 무너져내렸다. 사고조사위원회를 꾸린 국토부는 설계누락, 시공절차 미흡과 함께 시공자ㆍ감리자의 기술적 검토가 없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아울러 현장 관리 역시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현장 대리인 등 공사 품질 담당 직원을 정규직이 아닌 채용직으로 배치돼 현장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설계부터 현장 관리까지 켜켜이 쌓여있던 문제가 사고로 이어진 거였다. 

당시 시공사였던 대림산업(현 DL이앤씨)은 이 조사 결과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행정처분을 담당하는 서울시는 2년 후인 2019년 ‘부실시공 처분 제외 결정’을 내렸다. 국토부가 시공사의 잘못을 꼬집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시공사가 그 결과를 받아들였지만 행정처분 결과는 남지 않았다.

이는 건설사 등록제도에서 ‘사고 기록’을 빼놔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큰 사고가 발생해도 지자체 등이 ‘행정처분’하지 않으면 기록이 사실상 남아있지 않아서다. 

■건설업 등록제 빈틈❷ 등록 취소 후의 간편함 = 건설업 등록제의 문제는 ‘진입’ 때만 있는 건 아니다. 등록 취소가 된 다음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자! 다시 행정처분의 사례를 들어보자. 건설업체의 행정처분 이력은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KISCON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10대 건설사(20 21년 시공능력평가 기준) 중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중대재해 발생’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곳은 2곳이었다.[※참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말하는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 ▲부상자ㆍ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영업정지 기간은 각각 1개월, 2개월이었다. 


그런데 이 기간 건설업체가 못 하는 건 일종의 영업행위인 ‘수주 활동’이다. 기존에 계약된 공사는 계속할 수 있다. 더구나 이 기록도 영업정지 종료일로부터 3년 뒤면 사라진다. 

영업정지보다 더 무거운 처분인 등록 취소의 경우엔 어떨까. 사업자 명의 대여로 취소된 것이 아니라면 최장 5년간 같은 사업자가 다시 건설업을 등록할 수 없다. [※참고: 등록 취소 처분 기록은 최대 5년까지 열람 가능하다.]

제법 긴 시간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바꿔 말하면 ‘5년만 지나면’ 어떤 사고를 쳤든 건설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재해, 사고를 일으킨 건설사의 임원들이 다시 건설업으로 진출하려 할 때 금지 기간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며 “사장, 이사진만 바꿔 재진입하는 일이 없도록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행법상 건설업 등록을 할 때 재무적인 위험이나 기술자 보유 등을 평가할 순 있어도 해당 건설사의 과실이나 의도로 발생한 사고는 평가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일부 해외 국가에서 건설업 인증을 할 때 손해보험사의 이의제기(클레임) 여부까지 검토하는 것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화정 아이파크 건설현장 피해대책위원회가 1월 22일 서구청장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화정 아이파크 건설현장 피해대책위원회가 1월 22일 서구청장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건설업 등록제 빈틈❸ 이상한 심사주체=건설업 등록제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등록 기준 심사를 공공公共이 아닌 대한건설협회가 담당하고 있다는 건 심각한 빈틈이다. 대한건설협회 심사를 통과하면 각 건설사의 주소지가 있는 지자체에서 건설업 등록을 승인한다.

하지만 대한건설협회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근거해 건설 사업자가 만든 단체다. 사업자가 만든 단체가 사업자 등록 심사를 담당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과 다를 바 없다. 

건설 면허제의 취지는 부적합한 건설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턱은 낮아졌고(등록제 전환), 재무 상태를 제외한 나머지 조건은 평가 기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나마 사업자의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처벌 수위는 강해졌다.

하지만 법이 모든 사고를 막지는 못한다. 과실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도 행정처분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법이 현장 사고를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건설업 등록제의 원래 목적은 제대로 달성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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