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의 재무설계 下

여기 월급을 공개하지 않는 남편이 있다. 결혼 이후 월 390만원씩 생활비만 지급해 왔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재무설계를 신청했을 때에도 월급 공개만은 꺼렸다. 남편이 왜 월급을 밝히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럴 경우엔 상담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재무설계가 완벽하게 이뤄지기 힘들다. 부부관계든 재무적 관계든 ‘신뢰’가 담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재무 이벤트가 여럿 있을 경우엔 한꺼번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재무 이벤트가 여럿 있을 경우엔 한꺼번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재무설계 2편 Review = 1년 전 작은 가게를 창업했지만 코로나19 국면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 처리한 안희민(가명·46)씨. 사장님에서 주부가 된 안씨는 하루에 아르바이트 2개를 뛰면서 창업 과정에서 빌린 3000만원(이하 창업투자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안씨는 이내 포기를 선언했다. 이대로 가다간 평생 빚만 갚으면서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빚도 빚이지만 창업을 반대했던 남편 박창주(가명·49)씨가 빚 갚는 걸 돕지 않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안씨는 홧김에 과소비를 일삼았고, 빚은 줄어들 리 없었다.

부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의 상담실을 찾아왔다. 1·2차 상담에서 살펴본 부부의 총 소득은 590만원. 남편이 생활비 명목으로 월급 중 390만원을 지급하고, 아내는 아르바이트로 200만원을 벌고 있었다. 다만, 남편이 월급을 공개하는 걸 상담 내내 거부해 실제 소득을 확인하진 못했다.

지출은 정기지출 612만원, 비정기지출 월평균 39만원, 금융성 상품 5만원 등 656만원으로, 월 적자는 66만원에 달했다. 이를 근거로 부부는 1·2차 상담에서 필자와 함께 식비 40만원, 보험료 14만원, 통신·인터넷·TV 14만원, 아내 용돈 100만원 등 168만원을 줄였고, 66만원 적자도 102만원 흑자로 돌아섰다.

여기에 보험을 정리하고 받은 해지환급금 124만원도 추가로 생겼다. 이는 홧김에 씀씀이를 키웠던 아내가 지출 줄이기에 적극 동참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재무설계 최종편 = 내년이면 남편은 50대에 접어든다. 이 시기엔 본격적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데 집중해야 하지만, 부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3000만원의 창업투자금을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13살인 아들의 자녀 교육비도 감당해야 한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금도 4000만원 남아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은 부부가 한달에 169만원씩 갚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상담에선 창업투자금을 갚을 방법만 마련하기로 했다.

이렇듯 부부가 직면한 재무 이벤트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단기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장기 이벤트가 많은 경우엔 한 이벤트에 집중하는 ‘세로저축’보단 재무 이벤트를 동시에 준비하는 ‘가로저축’이 효과적이다. 저축을 여러개로 나눠 장기투자하면 복리효과는 물론 상품에 따라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다. 아울러 모든 이슈를 한번에 대비하고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부부는 모든 재무 이벤트를 한꺼번에 대비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부부의 유일한 저축수단인 예금 액수를 5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부부는 이를 비상금으로 쓸 예정이다. 의류비·자동차 세금·여행비 등 1년간 쓰는 비정기지출(월평균 39만원)이 예상보다 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예금액을 15만원을 늘린 부부는 연금저축펀드에 15만원씩 납입하기로 했다. 이 펀드는 연금저축보험보다 사업비(보험사·금융사에 지급하는 비용)가 낮고, 수익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납입을 계속해야 하는 연금저축보험과 다르게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납입금을 조절하거나 아예 쉴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다만, 수익률이 높은 만큼 원금 손실의 위험을 안고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부부는 개인퇴직계좌(IRP)를 만들어 15만원씩 납입할 계획을 세웠다. IRP는 연소득 5500만원을 기준으로 그 미만이면 16.5%, 이상이면 13.2%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연간 납입액 400만원 한도 내에서만 공제가 가능한 연금저축펀드와 다르게 700만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올해 안에 공제를 다 받고 싶지 않을 경우엔 내년으로 이월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부부는 연금저축펀드와 IRP를 이용해 노후를 대비하기로 했다.

노후 대비책을 세웠으니 이번엔 창업투자금 3000만원을 갚을 플랜을 세웠다. 금리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예금금리도 상승한 점을 감안해 적금통장을 만들어 월 37만원씩 납입하기로 했다. 운용 기간을 2년으로 설정하고 돈이 모이면 중도상환할 예정이다. 다달이 갚아나가는 것도 좋지만 부부의 지출이 예상보다 늘었을 경우를 대비해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적금통장으로 빠져나가도록 설정해 뒀다.

마지막으로 자녀 교육비와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적립식펀드에 20만원씩 거치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언급했듯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주식과 펀드의 수익률이 나빠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주식이나 펀드로 솔루션을 세우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하지만 ‘10년 후’ 아이에게 쓸 자금을 마련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부의 자녀는 13세로 대학에 들어가려면 6~7년이 남아있다.

이에 따라 오래 납입할수록 제 효과를 발휘하는 적립식펀드가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부부도 동의했다. 요즘 같은 하락장에서 저가매수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부에게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봤다.

이렇게 부부의 재무 상담이 모두 끝났다. 부부가 지출 줄이기를 통해 확보한 102만원은 ▲비정기 지출 대비(예금 15만원 추가) ▲노후 준비(연금저축펀드 15만원·IRP 15만원) ▲대출상환금 마련(적금 37만원) ▲자녀 교육비 마련(적립식 펀드 20만원)에 알뜰하게 썼다.

창업투자금을 모두 갚은 뒤에는 적금에 붓던 37만원 중 절반을 예금통장으로 옮기고, 나머지 반은 다른 안정적인 상품에 추가 투자하는 식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상담을 끝내면서 못내 아쉬웠던 점이 있다. 남편이 소득을 공개하고 돈을 합치기로 결정했다면 부부는 좀 더 수월하게 재무솔루션을 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월급 규모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재무설계의 시작이 ‘투명성’이라는 점을 남편도 인지했으면 한다. 필자의 바람처럼 부부가 뜻을 모아 미래를 대비하길 바란다. 재무설계의 기본은 다름 아닌 ‘신뢰’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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