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찬·윤정희의 흙수저 2부작
조상현 아이커머 대표 1부
HPE 플래티넘 파트너사 아이커머
전산시설·통신설비 등 하드웨어 넘어
IT인프라 종합 컨설팅 기업으로 성장
뼈를 깎는 혁신 거듭해 ‘팔색조’ 변신

# 숱한 미디어가 재벌 총수를 조명한다.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투자할지 묻고 거기서 얻은 결과를 이슈화한다. 일견 가치 있는 일이다. 이들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60% 남짓을 책임지는 기업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궁금한 점도 있다.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날리든, 자신이 밀어붙였던 사업이 접히든, 또다른 기회를 예외 없이 보장받는 그들의 전략과 철학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느냐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돈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 그래서 더스쿠프는 ‘평범한 우리’가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다름 아닌 밑바닥에서 시작해 기업의 가장 윗단까지 올라간 ‘흙수저 대표’들이다. 이를 위해 이윤찬 편집장이 그들과 마주 앉고, 윤정희 기자가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흙수저 2부작의 기록, 첫번째 주인공은 조상현(47) 아이커머 대표다.

조상현 대표는 아이커머의 사원으로 시작해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사진=천막사진관]
조상현 대표는 아이커머의 사원으로 시작해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사진=천막사진관]

IT인프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휴렛패커드(HPE)의 비즈니스 파트너엔 일종의 등급이 있다. ‘플래티넘(Platinum)’은 그중 가장 높은 등급인데, 이 수준에 오르려면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은 기본이고, HPE에서 매년 주관하는 숱한 자격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국내 기업 중 플래티넘에 속하는 곳이 20여개를 밑도는 이유다. 

HPE의 플래티넘 파트너는 허들을 넘은 대가로 신뢰성 등 수많은 전리품戰利品을 얻는다. 그중에서도 일정한 매출이 보장되는 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메리트다. 이 때문에 몇몇 플래티넘 파트너는 ‘새로운 길’을 걷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기도 한다. 매출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면에서 IT 엔지니어링 서비스 업체 ‘아이커머(iComer)’는 독특한 기업이다. 뼈를 깎는 노력을 쏟아부은 덕분에 2016년 HPE의 플래티넘 파트너에 오르는 데 성공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2년 창업 초창기 PCㆍ프린터 등 하드웨어 제품에 국한됐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상화 인공지능(AI), 슈퍼컴퓨팅(HPECㆍHigh Performance Computing) 등으로 넓혀 나갔다.  

또다른 사업 분야인 IDC(인터넷 데이터센터) 부문에서도 ‘팔색조 변신’을 거듭했다. 처음엔 IDC에 들어가는 하드웨어만 공급했지만, 지금은 IDC의 ‘브레인’이라 부르는 컨설팅과 설비관리 솔루션까지 아우르고 있다. 

지난해엔 IT 영역을 넘어 ‘인문학 콘텐츠’ 영역까지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작명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음’, 개명을 돕는 ‘이름드림’ 등 모바일 앱을 론칭한 건 대표적 사례다. 이런 변신의 중심엔 사원에서 시작해 대표 자리까지 오른 조상현(47) 아이커머 대표의 리더십이 있다.

그는 “혁신의 철학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서 “직원에게 일의 행복을 선물하려면 회사가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말로 ‘흙수저 CEO’인 조 대표를 만나 그의 경영 철학을 들어봤다. 

✚ HPE의 플래티넘 파트너가 되는 건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연실적 기준부터 충족해야 하는데, 하드웨어 부문과 서비스 부문의 통합 매출이 연간 최소 80억원 이상 돼야 합니다. HPE가 자체적으로 주관하는 시험을 거쳐 자격증도 취득해야 합니다. 영업은 물론 엔지니어까지 각 분야에서 최소 8~10명의 인력이 HPE가 원하는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할 정도로 과정이 까다롭습니다.” 

✚ 부문별로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의 종류도 천차만별일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가령, HPE사의 자격증 중엔 CL(Continuous learning)배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CL은 분기마다 이수해야 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종인데, HPE의 분야별 시스템을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래티넘 파트너가 되려면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이죠. 아울러 HPE는 파트너사가 PC 등 하드웨어의 단순 유지ㆍ보수뿐만 아니라 컨설팅 영역까지 다루길 원합니다. 그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SRI(Service Ratio Index)라는 지표를 만들어서 하드웨어 제품 대비 서비스를 얼마나 판매했는지 따져보기도 하죠.”

✚ HPE가 운영하는 다양한 사업 부문의 높은 요구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HPE의 국내 플래티넘 파트너사는 단 15곳뿐입니다. HPE는 지금도 클라우드-서비스-하드웨어 순으로 (사업의) 중요도를 설정하고 관련 자격증을 계속 신설하고 있는데, 파트너사는 매년 수백만원의 응시료를 들여 자격증을 갱신해야 하죠.”

✚ 플래티넘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겠군요. 한편으론 아이커머의 매출에서 HPE가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할 것 같은데요.
“지난해 기준 HPE 부문의 매출만 200억원 이상입니다. 비중으로 따지면 아이커머 전체 매출의 70% 수준입니다.” 

✚ 많게는 매출의 70%… 이 정도면 플래티넘 파트너만 유지해도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했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플래티넘 파트너는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니까요.” 

아이커머는 2016년 HPE의 플래티넘 파트너사로 선정됐다.[사진=연합뉴스]
아이커머는 2016년 HPE의 플래티넘 파트너사로 선정됐다.[사진=연합뉴스]

✚ 그런데도 아이커머는 혁신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컨설팅 분야에 진출했고, 최근엔 IT 분야를 넘어선 사업도 펼치고 있으니까요. 안정을 택하기엔 뭔가 아쉬운 점이 있었나요?
“이번엔 제가 물어볼까요? IT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 글쎄요, 머리에 딱 떠오르는 단어는 4차 산업혁명, AI, 5G, AR 등이네요. 
“네, 대부분 그렇게 답할 겁니다. 하지만 IT에 그렇게 ‘멋진’ 기술만 있는 게 아닙니다. IT를 지탱하는 뿌리는 ‘하드웨어’입니다. 연구실에 PC가 없으면 AI 연구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죠. 하지만 하드웨어 부문은 상대적으로 천대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 천대라고 하면…. 
“아이커머는 창업 초창기 PC 등 하드웨어를 배송하고 설치하는 일을 했습니다. 나름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데, 업계 사람들마저 ‘박스떼기’라면서 폄훼했습니다. 제품을 납품하러 가면 “어디 배달 왔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숱했죠. 그래서 제 스스로 한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 그게 뭔가요?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드웨어를 둘러싼 편견을 극복해보자’ 였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점을 알아주고 (함께 일하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보상해줘야 한다는 나름의 사명감 같은 거였죠.” 

✚ 총대를 메겠다는 심정이었나요? 
“뭐, 결과적으론 그런 셈이네요(웃음).” 

✚ 어쨌거나 편견을 없애겠다는 생각이 ‘혁신의 길’로 이어진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HPE와 거래하면서 ‘하드웨어’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덕분에 AI를 활용한 가상화 기술, 슈퍼컴퓨팅, GPU(그래픽 처리 장치) 시스템 구축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었죠.”

✚ 결핍이 창조적 힘을 발휘한 셈이네요. 
“좀 거창한데요(웃음).” 


“항상 갈망하며, 우직하게 나아가라”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


부족하지 않다면 뭔가를 채울 필요가 없다. 결핍이 없으면 굳이 메우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혁신은 언제나 갈망과 결핍에서 싹튼다. 하지만 한 사람의 결핍이 회사의 방향을 돌려놓을 순 없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의 ‘혁신 의지’가 담보돼야 한다.

아이커머도 마찬가지다. 창업자가 HPE의 플래티넘 파트너사의 위치에 만족했다면, 지금의 아이커머도 없었을지 모른다. 과연 아이커머의 창업자는 어떤 경영철학을 갖고 있었을까. 

아이커머의 창업자는 서정묵 회장이다. 50대 중반이던 2001년 삼성SDS 공공사업본부장직을 끝으로 대기업 생활을 마감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이커머를 설립하며 서 회장이 내건 철학은 명확했다.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그 철학은 ‘i-Comer(아이커머)’라는 사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객(i) 모두 여기 이 회사로 오라(come)’는 뜻의 사명엔 아이커머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외부 고객은 물론 ‘내부 고객’인 임직원들까지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회사의 자본을 불리겠다는 욕심을 내기보단 다같이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게 창업주의 기본 마인드였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사원이었을 때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이런 철학이 아이커머가 팔색조 변신을 하는 데 뿌리 역할을 한 건 사실이죠.” 

아이커머는 혁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진은 아이커머가 
아이커머는 혁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진은 아이커머가 구축한 국민연금공단의 인터넷 데이터센터.[사진=아이커머 제공]

✚ 다시 사업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이커머 사업의 또다른 한축인 IDC는 낯선 분야입니다.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구글을 보면 커다란 전산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IDC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IDC란 ‘서버의 호텔’이라고 할 수 있죠.” 

✚ 좋은 호텔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아이커머도 IDC에 적절한 컨설팅을 제공하나요? 
“그렇습니다. 서버들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환경을 제공합니다. 서버들이 잠을 잘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온도가 적당해야 하겠죠. 위험에 대비한 출입ㆍ보안 시스템도 필요할 것이고요. 어떤 서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수 있는 외부 상황실도 있어야 할 겁니다. 이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바로 IDC라고 보시면 됩니다.” 

✚ 설명을 들어보니 기존 하드웨어 사업의 연장선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IDC 사업 초창기에는 전산실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공급했습니다. 전산실에 전원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UPS(무정전전원장치) 같은 부품들이 대표적입니다. 2002년부터 5~6년 정도는 계속해서 단품일(하드웨어 공급)에 집중했죠.”

✚ 그렇다면 언제부터 IDC 분야에서도 혁신을 꾀하기 시작한 건가요?
“2008년으로 기억합니다. 말씀드렸듯 저에겐 ‘하드웨어 부문의 한계를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컨설팅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하드웨어 공급만으론 수익을 내는 데 제약이 있기도 했고요. 그러다 말로만 컨설팅을 해선 안 되겠다 싶어 (전산 시스템의) 설계-관리-모니터링에 이르는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습니다. FMS(Facility Monitoring Solution)라는 이름의 통합 설비관리툴을 자체 개발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결과적으론 컨설팅부터 솔루션에 이르는 수직계열화에 성공했죠.”

✚ 지금이야 ‘혁신의 길’이란 말로 그간의 노력을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여정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벌이는 일이 많으니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초창기에는 고객사가 HPE나 삼성밖에 없어서 어떻게 다른 고객사를 확보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죠. 당시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신규 사업을 위해) 공부도 해야 하다 보니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갔습니다. 회사에서 밤새 제안서를 정리한 뒤 책상 두개를 붙여 쪽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제본한 자료를 들고 PT를 하곤 했죠.” 

✚ ‘라떼’는 사양하겠습니다(웃음). 
“아, 그런 시절이군요. 하하.” 

미국의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저서 「그릿(GRIT)」에서 끈질긴 노력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공의 비결은 타고난 재능에 있지 않다. 역경과 슬럼프를 이겨내고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열정과 끈기에 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실없는 ‘농弄’을 섞긴 했지만, 조 대표가 얼마나 많은 열정을 자신의 일에 쏟아부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게 없었다면, 사원에서 CEO로, 흔히 말하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아이커머의 ‘그릿(열정적 끈기)’은 마침내 하나둘씩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호에서 계속-2부 : 흙수저 CEO의 실패와 또다른 도전>


말 =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글 =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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