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찬·윤정희의 흙수저 2부작
조상현 아이커머 대표 2부
실패는 곧 미래 결실 얻기 위한 투자
최근엔 IT기술-인문학 결합 새 도전
도전 즐겁고 직원 행복한 기업 꿈꿔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앞면(성공)이 나올지 뒷면(실패)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실패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졌느냐’일지 모른다. 흙수저 2부작의 기록,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말하는 조상현(47) 아이커머 대표의 ‘독특한 실패학’을 들어봤다.

조상현 대표는 “직원들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사진=아이커머 제공]
조상현 대표는 “직원들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사진=아이커머 제공]

도저히 풀기 힘든 숙제 앞에서 필요한 건 어쩌면 전략도, 돈도 아닐지 모른다. 낡고 뻔한 관념이긴 하지만, 차라리 그럴 땐 열정과 끈기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숱하다. 미국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Ang ela Duckworth)는 그중 한명이다. 그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그릿(GRIT)」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성공의 비결은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정진할 수 있는 열정과 끈기에 있다.” 

심리학에서 그릿(GRIT)은 투지란 의미로 통하는데, 그 기반은 ‘노력의 꾸준함(perse verance of effort)’이다. 앤젤라 더크워스의 말을 풀어보면, 꾸준한 노력에서 투지가 나오고, 그 투지가 바로 ‘성공의 열쇠’란 거다. 

하드웨어에서 IT서비스로, IT서비스에서 또 컨설팅으로…. 2002년 창업 이후 ‘팔색조 변신’을 거듭해온 IT 엔지니어링 서비스업체 아이커머에 내재된 그릿(투지) 역시 열정과 끈기에서 기인했다.

이 회사의 사원에서 시작해 대표에 오른 조상현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어렵고 힘든 고비 앞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굴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되돌아보면 노력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스쿠프의 새 연재 ‘흙수저 2부작’, 그 첫번째 주인공인 조상현 아이커머 대표의 두번째 이야기를 들어보자.

✚ 어떤 기업이든 DNA를 바꾸는 건 힘든 일입니다. 하드웨어 중심의 업체에서 IT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난 아이커머도 숱한 역경을 겪었을 듯한데요. 
“또 ‘라떼(나 때는…)’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창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던 시절엔 주말을 반납하고 밤낮없이 일했어요. 회사 내부적으로도 대외영업팀, 신기술팀, 특정기업 전담팀 등으로 팀을 따로 분류해서 (사업 확장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죠.” 

✚ 답은 ‘노력’이었군요. 그렇다면 ‘우리의 노력이 통했구나’ 싶었던 순간도 있었나요?
“국내 기업 삼성SDI가 한국휴렛팩커드(HPE)에서 출시한 신형 블레이드 서버(bla de server ㆍ고밀도 서버)를 구매했던 2002년의 일이 문득 떠오르네요.”

아이커머는 뛰어난 성과와 실적으로 2018년 HPE의 톱 파트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사진=아이커머 제공]
아이커머는 뛰어난 성과와 실적으로 2018년 HPE의 톱 파트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사진=아이커머 제공]

✚ 어떤 일이 있었나요?
“블레이드 서버는 당시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이어서 국내에선 이 제품을 다룰 인력이 전무했어요. 여러 곳에서 난제를 풀지 못해 우리에게 기회 아닌 기회가 왔죠. 처음엔 답답하더라고요.” 

✚ 경쟁업체에서도 실패했다면, ‘못해도 본전’ 아니었나요?
“아니요, 정반대 분위기였어요. 우리 엔지니어들이 그렇게 일하는 걸 처음 봤어요. 끈질기게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제품의 버그(bug ㆍ오류 및 오작동)를 잡아냈더니 HPE가 직접 버그를 해결할 수 있는 패치(patch ㆍ수정용 프로그램)를 만들어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이 패치를 받아서 삼성SDI에 무사히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죠.”

✚ 그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아까 그릿이라고 말씀하셨나요? ‘투지는 이런 거다’란 걸 많은 이들에게 보여준 것 같았어요. 정말 좋은 기억이에요.” 

물론 아이커머의 그릿이 ‘성공의 문’을 매번 활짝 열어준 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4년, 아이커머는 일본의 가정용 보안시스템 업체에 투자했다가 거금을 떼였던 ‘흑역사’를 갖고 있다. 

친환경이 화두였던 2008년엔 중국에서 ‘펄라이트’란 흙을 수입해 친환경벽돌 사업에 도전했는데, 손해만 보고 철수했다. 조 대표는 “실패 사례만 얘기해도 책 한권을 쓸 수 있을 정도”라며 옛 기억을 털어놨다. 

하긴,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는다고 매번 성공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실패 없는 성공 신화’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실패한 후後’다. 뼈아프게 실패했지만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 

이런 면에서 아이커머의 시스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커머는 실패를 ‘단순한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성공의 발판이자 또다른 그릿이다. 

조 대표 역시 같은 생각이다. “20년이란 시간을 지나오면서 ‘미끄러진’ 사업들이 왜 없을까요? 하지만 큰 맥락에서 회사가 가는 방향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사업 과정에서 나오는 실수는 언젠가는 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실패를 통해 배우는 조직입니다.” 그의 얘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자. 

✚ 경영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단 한번의 실패라도 회사에는 큰 타격을 줄 수 있는데요.
“맞습니다. 아이커머도 실패를 겪을 때마다 손실을 봤죠. 하지만 우리는 그 실패를 ‘미래를 위한 투자’로 해석했습니다.”

✚ 아이커머만의 ‘실패론’이라고 할 수 있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신다면요.  
“도전이든 실패든 그 정의는 다양합니다. 어처구니없이 지는 경우도 있지만 ‘졌잘싸’일 때도 있죠. 그래서 저는 ‘어떻게 실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되레 실패를 통해 얻는 게 많을 수도 있으니까요.”

✚ 실패도 ‘잘’ 한다면 성과가 될 수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끈질긴 도전이 결실로 이어졌던 사례도 있었나요?
“그럼요. 2014년 르완다에서 진행했던 사이버 보안관제 구축 사업이 기억납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내륙국가여서 자재 운반이 쉽지 않은 데다 밤마다 민족간 다툼ㆍ절도ㆍ폭력 등 위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이 사업 힘들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사업을 진행하기엔 열악한 환경이었죠.”   

✚ 사업 철수를 고민하지는 않았나요? ‘손절’도 때론 전략이 될 수 있을텐데요. 
“음, 그땐 이 일을 꼭 완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냥 철수할 수도 있었지만, 손해가 더 커지더라도 할 일을 하는 게 우리의 몫이었어요.”

✚ 결과가 어땠나요? 
“사업 수행이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행하고 현장 리스크를 관리해서 르완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우리가 끝내 관제센터를 구축하자 르완다 정부에서도 박수를 보내더군요. 이것이 시발점이 돼서 이후 아프리카와 남미 17개국에 전산실을 구축하게 됐죠.”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는 독특한 경영전략을 발판으로 아이커머는 2002년 창업 후 20년 만에 연매출 800억원을 넘보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HPE의 하드웨어 제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에서 출발해 컨설팅-설계-솔루션을 아우르는 IT기업으로 거듭난 이 회사의 ‘변신술’은 놀랍기만 하다. 

더 흥미로운 건 이 회사의 변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커머는 IT서비스를 넘어 ‘콘텐츠’의 영역으로 발을 뻗치고 있다. 작명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 ‘지음(2017년)’, 궁합 앱 ‘케미(2019년)’, 개명을 돕는 앱 ‘이름드림(2021년)’ 등이 이 회사가 출시한 신상품들이다. 

✚ 하드웨어, IT서비스, 컨설팅… 여기까진 알겠는데, 앱은 뭔가요?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요.
“언뜻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기술이 유용하려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의미를 가지려면 결국 ‘사람’을 이해해야 하니까요.” 

✚ 아, 난해한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중심 기술을 펼치겠다” 뭐 이런 건가요?
“하하, 맞습니다. 이런 식의 공학(기술)과 인문학(사람)의 결합은 저의 오랜 화두이기도 합니다. 국어국문학과 정보통신학을 모두 공부한 대학 시절의 경험에서 출발한 고민이죠.”

✚ 어떤 이유에서 국문학과 정보통신학을 모두 전공했나요?
“현실적인 이유가 컸습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평소 관심 있던 개발 분야로 취직을 해야겠다 싶었죠. 3개월간 죽어라 공부해서 공대로 편입했고, 첫 직장을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 이제야 ‘콘텐츠’ 사업을 시작한 이유를 조금 알겠네요. 그런데 숱한 아이템 중에서도 왜 하필 작명과 개명이었나요?
“두 서비스에도 제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느지막이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는데, 이름을 짓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죠. 고육지책으로 여기저기 작명소를 찾다 발견한 게 ‘모바일 작명 앱’이었습니다. 들여다보니 작명뿐만 아니라 개명ㆍ궁합 등이 개인용 앱 서비스 영역에서 틈새시장이 되겠다 싶더라고요. 특히 개명의 경우 제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의 손아섭(개명 전 손광민) 선수가 이름을 바꾼 후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앱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아이커머는 모바일 앱 서비스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사진=아이머커 제공]
아이커머는 모바일 앱 서비스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사진=아이머커 제공]

✚ 앱 서비스는 이용자들의 심리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맞습니다. IT에서 인문학은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누구나 다 잘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관심 있는 부분, 원하는 부분을 얼마나 잘 파악해서 서비스와 접목하느냐죠.”

✚ 아이커머에선 IT기술에 인문학적 가치를 녹여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임직원과 고객들을 위해 ‘인문학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시인, 빅테크기업 구글의 임원을 초빙해서 강연도 듣고 사막탐험, 뇌과학, 미술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죠. 바리스타나 와인 소믈리에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요.” 

✚ 내부 구성원들의 공감과 지지도 중요할 텐데요. 
“사내 소통에 많은 신경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노사협의회를 열어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도 듣고, 유연근무제를 도입해서 근무 시간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죠. 아울러 직원들이 편하게 일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2년 전부터 계획했던 ‘휴게공간’의 인테리어 공사도 올해 완료했습니다.”

✚ 재미있는 이벤트도 열고 있다고요.
“한두달마다 ‘슬기로운 회사생활’이란 이름의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1만보 걷기대회를 열어서 상위권을 차지한 5명에게 상품을 증정했습니다. 한번씩 뜬금없는 치킨파티를 할 때도 있죠(웃음).”

✚ 이런 소통을 통해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직원들이 아이커머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그 과정에서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죠. 직원들이 경제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는 최대한의 여건을 보장해 나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 아이커머가 어떤 기업이기를 꿈꾸시나요? 
“직원들이 일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동시에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됐으면 합니다. 아이커머의 사훈은 변화, 상생, 도전입니다. 예전엔 고루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표 자리에 오르고 보니 모두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가지 가치를 실현하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정년까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갖습니다. 이를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기업문화를 계속해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사원에서 CEO까지 오른 조 대표. 그는 스스로 ‘특별한 기회’를 받았고, 이젠 그 기회를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 CEO를 넘어 정년, 정년을 넘어 평생직장…. IT와 인문학이 교차하는 아이커머란 독특한 회사에서 그는 특별한 가치를 일궈낼 수 있을까.


대담 =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글 =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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