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업체들의 꼼수
국산과자 대신 수입과자 인기
철저한 현장 조사 필요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덤으로 왔다.” “과자봉지를 뜯었는데, 질소가 70%다.” 질소과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전보다 내용물이 더 줄어든 것 같다”는 소비자들의 원성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왜일까. 관행처럼 내려오는 업체들의 나쁜 버릇을 바로잡을 방법을 마련해왔지만 느슨한 감시체계와 솜방망이 처벌 탓에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탓이다.

과대포장 규칙을 어겨도 처벌이 약하다. 질소과자가 끝없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뉴시스]
과대포장 규칙을 어겨도 처벌이 약하다. 질소과자가 끝없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뉴시스]

# 2014년 대학생들이 한강을 건넜다. 그들은 잠실한강공원에서 뗏목을 타고 30분 만에 한강 도하에 성공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화제의 주인공은 한강을 건넌 대학생들이 아니었다. 국산 과자봉지 160개를 테이프 등으로 이어 붙인 뗏목이었다.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제과업계의 과대포장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기획한 퍼포먼스였다.

# 김서영(가명)씨는 과자를 먹을 때마다 허탈함을 느낀다. 가볍게 맥주 한캔 할 때 안주로 감자칩을 먹곤 하는데, 그의 손은 종종 봉지 안에서 헛손질을 한다. ‘이쯤이면 내용물이 있겠지’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반도 들어있지 않은 내용물 탓이다. 감자칩뿐만이 아니다.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과자를 사도 마찬가지다. 상자 안에 든 속포장까지 뜯고 나면 실제 내용물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김씨는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들어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내 입에서도 절로 나온다”고 토로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소비자물가•생산자물가 할 것 없이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래서일까. 제품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품의 양과 품질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란 용어가 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단어가 낯설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입에 오르내리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질소과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질소과자는 포장의 부피에 비해 과자의 양이 매우 적은 과자를 비꼰 말이다. 내용물인 과자보다 질소가 많다는 의미에서 질소과자라고 부르곤 하는데,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부터 업체들이 원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내용물을 줄이면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2014년 과대포장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과자봉지 뗏목으로 한강을 건넜던 대학생들의 퍼포먼스.[사진=뉴시스]
2014년 과대포장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과자봉지 뗏목으로 한강을 건넜던 대학생들의 퍼포먼스.[사진=뉴시스]

1998년 한국소비자원(당시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발표했던 자료를 다시 꺼내보자. 소비자원은 1998년 10~12월 13종의 스낵류를 조사했는데, 그중 6종은 내용물 비중이 60% 이하, 7종은 70% 이하였다. 내용물이 70%를 초과하는 제품은 4종뿐이었다.[※참고: 당시 조사에서 콘치즈(크라운제과)는 내용물이 46.4%로 가장 적었고, 쟈키쟈키(빙그레)는 87.3%로 가장 많았다.] 

소비자원은 “과대포장은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한다”면서 “사업자 자발적으로 포장공간과 포장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자발적인 노력으로 과대포장이 사라지길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내용물보다 질소가 점점 많아진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국산 과자의 부실한 내용물은 수입과자의 인기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수입과자는 국산 과자와 비교해도 내용물 용량 면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포장 안에 꽉 들어찬 수입과자의 높은 가성비는 국내 소비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018년(14만2869만톤·t) 이후 수입량이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양의 과자가 수입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참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과자류는 14만7816t이다. 수출량은 14만6455t이다.] 

그렇다면 과대포장을 제재할 방법이나 규정은 없는 걸까. 아니다. 엄연히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이 있다. 과대포장 문제가 끊이지 않자 2011년 환경부는 관련 규칙을 따로 정했다.

규칙에 따르면 제과류는 포장공간(빈 공간)이 20~35% 이내여야 하고 포장 횟수도 2회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이를 어기면 최대 300만원(1차 100만원, 2차 200만원, 3차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런데도 과대포장의 질소과자가 계속 등장하는 건 그 제재가 있으나 마나여서다. 일단,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1998년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후속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과대포장 조사를 했지만, 새벽배송에 국한된 조사였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과대포장과 관련해 정부 과제가 있거나 해당 이슈가 크게 떠오르면 조사를 하기도 하는데, 최근엔 그런 사례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소비자시민모임도 2015년까진 유통 중인 제품들의 포장공간비율을 조사해 발표하는 등 감시 활동을 이어왔지만 감시망이 느슨해진 게 사실이다. 최근엔 명절 선물세트 위주로만 조사를 하고 있어서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업체들이 제품 용량을 은근슬쩍 줄이는 등의 꼼수는 지속적으로 있었다”면서 “업체들이 스스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시장 실태 조사를 해서 업체들의 행태를 감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 현명하게 소비를 하면 좋겠지만, 그러는 덴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단체들이 현장에 나가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되는 거 같진 않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업체들은 히트작 하나가 탄생하면 그걸로 매년 수십•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런 업체들이 과태료 300만원에 벌벌 떨 리 없다. 업체들을 향한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고는 누군가는 또 과자봉지를 강에 띄우고, 다른 누군가는 봉지 안에서 계속 헛손질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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