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성장 동시에 못 잡아
지금이 감세 정책 펼 때인가
카터의 길이 보여주는 시사점

에너지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가  전세계적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에너지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가  전세계적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돈을 끌어들여야 한다. 물가가 치솟을 때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이유다. 

# 기준금리 인상의 부메랑은 경기침체다. 유동성이 줄면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침체를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시장에 ‘돈을 풀면’ 물가는 또 오른다. 


# 시장에 돈을 풀어놓은 덕분에 경기가 살아나 수요와 공급이 늘어난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이런저런 변수 탓에 공급량을 맞출 수 없다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고, 경기는 경기대로 고꾸라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우려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기본 논리다.

#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으로 보이는 지금, 윤석열 정부는 공교롭게도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듯하다. 하지만 이론에선 그럴듯해 보이는 ‘두마리 토끼’를 실전에서 잡아낸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 1970년대 미국, 지미 카터 정부의 사례는 윤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복지의 근간을 세우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했던 카터 정부는 ‘2차 석유파동’ 등 대내외 변수 탓에 인플레이션이 불어닥치자 ▲재정지출 축소 ▲감세 자제 등 변화된 정책으로 대응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란 별칭으로 불린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을 임명한 것도 카터였다. 지미 카터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인상정책, 거기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경기침체 때문에 ‘재선’에 실패했지만, 1980~1990년대 미국 호황의 발판을 놓는 덴 성공했다. 


# 지금 정부에게 필요한 건 인플레이션을 잡는 거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기침체 탓에 취약계층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정부가 나서 잠재워야 한다. 윤 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들의 정책은 지금 올바른 궤도에 올라선 걸까.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정책을 둘러싼 비판이 숱하다.[사진=뉴시스]

1978년 배럴당 12.91달러였던 원유(아랍 라이트유) 가격이 1979년 29.19달러로 2배 이상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터지면서 국제유가는 1980년 11월 39.75달러까지 폭등했다. 이른바 제2차 석유파동, 미국엔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휘몰아쳤다. 

1978년 4월 6.5%였던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1979년 4월 10.5%로 상승했고, 1980년 4월엔 14.7%를 기록했다. 연 4.2%포인트에 이르는 가파른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1978년 2분기 3.9%를 기록했던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80년 2분기 -2.1%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6.0%였던 실업률은 7.3%로 치솟았다. 석유파동이 스태그플레이션의 도화선이 된 셈이었다.[※참고: 미국의 실업률은 1982년 4분기 10.7%까지 상승했다.] 

복지를 늘리기 위해 재정을 확대해 인플레이션이 움트는 데 일조했던 당시 미 행정부(지미 카터)는 부랴부랴 정책 방향을 바꿨다. 카터 정부의 경제정책은 크게 세가지였다. ▲정부지출 축소 ▲불필요한 규제 완화 ▲감세 자제 등이다. 그러면서 1979년 6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에 훗날 ‘인플레이션 파이터’란 별칭을 얻은 폴 볼커를 임명했다. 

그는 취임 당시 11.29%였던 기준금리를 1980년 12월 22.0%까지 끌어올렸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란 ‘큰칼’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거였다. 효과는 확실했다. 14%를 웃돌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82년 12월 3.8%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금리인상 탓에 한계기업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10%를 웃도는 후유증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볼커의 결정이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장기호황의 발판이었던 건 사실이다. 

이때부터 많은 경제학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 시작했다. “물가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잡겠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허구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22년,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은 1979년의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0% 올랐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다. 

물가를 흔든 가장 큰 원인은 1979년 미국이 직면했던 것처럼 ‘외부요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과 곡물 가격이 치솟았지만, 정작 그 전쟁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글로벌 공급망이 비틀어진 것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수요에 걸맞은 공급이 어려우니, 물가가 뛸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이 이미 올랐거나 더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는 7~8%대까지 상승할지 모른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리를 올려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고,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다.

문제는 1979년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 경기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참고: 물가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수요를 지나치게 억제해서 경기가 냉각하는 상황을 경제학 용어로 ‘오버킬(overkill)’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먼저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잡지 않으면 경제에 더 큰 충격이 미칠 공산이 크다. 특히 지금처럼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기인한 인플레이션은 기업의 제품 가격 인상→시장의 수요 감소→기업 실적 악화→노동자와 생산 감축→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정부 정책과 한은의 방향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인상해 유동성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규제 혁신, 법인세 인하, 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감세정책 등 돈을 푸는 정책을 쓰고 있다.

인플레이션도 잡고 시장경제도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되는데, 앞서 언급했듯 이는 ‘허구’다. 1980년 미 연준 의장이었던 볼커가 경기침체를 감수하면서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을 단행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강경훈 동국대(경영학) 교수는 “경기를 방어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게 이론적으론 가능할 수 있지만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다른 어떤 나라도 하지 않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감세는 현재 시장에 필요한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며 “지금이 재정 곳간을 채워 정부가 우려한 퍼펙트스톰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윤 정부는)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렇다고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세·유류세 인하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민생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최배근 건국대(경제학) 교수는 “대통령이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메시지를 주면서 국민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되레 정부의 실언이 국민의 불안감만 높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이제 시작이다. 다른 나라보다 인플레이션이 늦게 나타난 데다 한국경제는 대외환경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공급난 이슈가 지속할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도 않은 임금을 올리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얼마 전 출근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국면에서 경기침체 우려를 해소할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방도는 없다.” ‘지금이 위중한 상황’이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니라면 이 답변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경제는 이론이 아니다. 실전이다. 

강경훈 교수의 주장처럼 이론에선 가능할지 몰라도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경제성장에 성공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로선 일정 수준의 경기침체를 인정하면서 물가를 잡는 게 급선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시각은 이런 점에서 옳은 측면이 있다. 그는 외환위기 시절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윤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은 국민을 향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해야 할 때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사진=뉴시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사진=뉴시스]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도 같은 주장을 했다. “금리인상이라는 무딘 칼을 휘두르면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고, 국민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이 ‘사회적 안전망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심리적·경제적 정도가 다르다. 소득이 많은 이들은 소비를 조금 줄이면 된다. 1년에 2번 가던 해외여행을 1번 줄이면 그만이다. 

허리띠를 더 졸라맬 수 없는 취약계층은 다르다. 가뜩이나 치솟은 물가도 견디기 힘든데, 빚까지 있는 차주借主라면 이자 갚기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어려움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무주택 전세가구가 부담하는 이자 비용은 지난해 1분기 대비 23.3% 증가했다. 특히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이자 부담은 2만7925원에서 6만4336원으로 130.3% 늘어났다. 이는 소득 5분위(상위 20%)의 이자부담 증가율 14.9%보다 8배 이상 높다.

취약계층 지원방안 서둘러 내놔야 

전체 가구 중 소득 1분위의 가계만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올 1분기 1분위 가구는 월평균 104만3000원을 벌어 135만6000원(소비지출 116만원+비소비지출 19만6000원)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1분위 가구에 월 31만3000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4분기 기록한 적자액 30만5000원과 비교하면 8000원 늘어난 수치다.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인상의 악영향이 저소득층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인지 윤석열 정부도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망을 확충하고 있다. 윤 정부는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1조7000억원 규모의 긴급생활안정지원금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고물가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에 최대 100만원의 ‘긴급생활지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긴급복지생계지원금 예산도 1000억원 증액해 4인 가구 기준 지원 금액을 130만490 0원에서 153만6300원으로 늘렸다(7월 시행).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바우처 예산도 900억원 증액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 대부분은 “이 정도론 부족하다”면서 “취약계층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물론 윤 정부로서도 고민은 있다. 안전망 확충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려면 국채 발행 등의 방법을 써야 하지만, 직전 정부 때 나빠진 재정 건전성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윤 정부가 정부 지출 예산을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으면서 줄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취약계층의 붕괴를 막으려면 현재로선 그 방법뿐이란 지적도 많다.

[※참고: 2017년 660조2000억원을 기록했던 국가채무(중앙정부+지방정부)는 지난해 965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GDP 대비 국가채무는 36.0%에서 47.3%로 치솟았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정부 정책의 방향성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비용 문제라는 점에선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주는 감세 정책을 사용한 것은 나쁘지 않다. 당장 부족해질 수 있는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빠져 있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지원에 재정을 집중하기 위해선 불요불급한 정부지출은 줄여야 한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산업경영학) 교수도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저소득층의 붕괴를 막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 예산을 조정해서라도 복지에 사용하는 재정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 정책을 잠시 유보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배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약계층의 소득을 정부가 지원해 줘야 한다. 부족한 재원은 위기 상황에서도 돈을 많이 번 기업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영국의 보수당 정부도 ‘횡재세(Windfall tax)’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걷은 세금을 취약계층에 쓰면 경기부양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 앞엔 다양한 위기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국경제 앞엔 다양한 위기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국경제가 놓인 상황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실제로 일본의 투자은행(IB) 노무라는 지난 5일 향후 12개월 내 미국·유럽연합(EU)·영국·일본·캐나다·호주·한국 등 주요국이 경기침체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무라는 “한국의 올해 3분기 GDP 성장률이 -2.2%를 기록하며 가장 큰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이상 숫자만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물가와 성장을 동시에 잡겠다는 허구적 가설에 매몰돼 있을 때도 아니다. 한국경제 앞에 놓인 대내외적 변수를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은 당분간 계속될 공산이 크고, 경기는 악화일로를 걸을 게 분명하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엔 국민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취약계층이 붕괴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사회 밑단에서 시작된 위기의 불씨가 중산층으로 옮겨붙을 수도 있어서다. 

이런 면에서 윤 정부의 대책은 이상하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는데, 정부는 감세 등 사실상 돈을 푸는 정책을 쓴다. 복지를 위해 재정확대정책을 썼던 카터 행정부도 인플레이션이 밀려왔을 때 방향을 바꿨다. 그 중심엔 카터가 임명한 볼커가 있었다. 윤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그들은 지금 올바른 대책을 내놓고 있는 걸까. 의문이 많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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