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5 일본 출시의 함의
일본 완성차기업, 전기차 입지 ‘흔들’
과거 일본 시장 공략 실패한 현대차
전기차 앞세워 우위 점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톱클래스 선수였다. 그럼에도 실력(기술)과 체력(시장 규모) 모두 1등에겐 뒤처졌다. 1등의 ‘안방’에서 정면승부를 펼쳤지만, 처참하게 패했다. 2008년 일본 시장에서 발을 뺀 현대차의 이야기다. 그랬던 현대차가 최근 ‘열도 공략’에 다시 나섰다. 전기차 ‘아이오닉5’를 선봉에 세우면서다. 이번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현대차가 일본에서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의 현지 인도를 앞두고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가 일본에서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의 현지 인도를 앞두고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올여름, 일본 자동차 시장에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승용차 시장에 재진출한 현대차가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5의 인도를 앞두고 있어서다.

현대차는 2001년 주력 차종인 쏘나타와 아반떼를 앞세워 일본 시장을 공략했지만 7년 만인 2008년 판매 부진으로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했다. 현지 운전자들의 기호와 운행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전략적 미스로 벌어진 결과였다. 

그로부터 14년이 또 흐른 지금, 현대차는 전기차를 앞세워 다시 한번 열도 공략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수입차 브랜드가 이미 일본 시장에서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지만, 현대차의 새로운 도전은 의미가 남다르다. 아이오닉5의 성패가 향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의 경쟁력을 가늠해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체 일본 자동차 시장의 현주소가 어떻기에 아이오닉5의 출시가 이목을 끄는 걸까. 또 아이오닉5의 결과가 한일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일본 자동차 시장의 현주소부터 살펴보자.

■현황❶ 덮쳐오는 디지털화 = 지난 5월 일본 미즈호은행은 한가지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일본의 신차 판매 대수가 2021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전환해 2050년엔 2018년(430만대)의 50%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담겨 있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자가용과 택시를 포함한 승용차 보유 대수도 2021년 6192만대에서 2050년 1372만대로 77.8%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즈호은행은 일본 자동차 시장이 급격하게 쪼그라드는 원인으로 ‘디지털화’를 꼽았다. 재택근무, 온라인 쇼핑, 온라인 진료 등 디지털 서비스가 자리 잡으면서 집을 떠나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는 수요 자체가 줄어들 것이란 게 근거였다. 

이는 과한 분석이 아니다. 이동 수요가 감소하니 개개인이 자동차를 직접 소유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완성차기업은 ‘신차 수요 감소→판매량 쇠퇴→경영위기’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일본 내수시장의 93.4%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완성차기업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도요타ㆍ혼다ㆍ닛산 등 일본의 전통적인 완성차 메이커는 암울한 미래를 맞지 않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미즈호은행은 보고서에 이런 힌트를 남겼다. “이제 개인이 소유하는 자동차는 일상의 발 역할을 하는 저가의 소형차와 이동 수단 이상의 가치를 갖는 고급차로 양분될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중심에 전기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완성차 메이커 중엔 ‘전기차’를 내세운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현황❷ 한발 늦은 타이밍 = 2021년은 자동차 역사에 중대한 변곡점이 만들어진 해였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이 앞다퉈 신형 전기차를 출시하면서 전기차 시대의 포문을 열어서다. 2017년 100만대 수준에 그쳤던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660만대를 기록하며 5년 새 6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분석업체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사상 첫 10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에서 볼 수 있듯 글로벌 시장의 대세는 이미 전기차로 굳어졌지만, 어쩐 일인지 일본 자동차 시장의 전기차 전환 속도는 글로벌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전체 승용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은 0.6%에 불과했다. 주요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유럽-미국의 전기차 판매 비중이 각각 16%, 10%, 3%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시장은 아직 전기차 불모지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는 전기차의 빠른 확산을 예측하지 못한 일본 완성차 메이커들의 오판이 부른 결과다. 일본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중간 모델인 하이브리드 차종에서 기술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행성능과 충전 인프라에서 약점을 가진 전기차보단 하이브리드 모델에 집중하는 편이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박자 느린 전기차 투자 

하지만 소비자들은 일본의 완성차 메이커들처럼 보수적이지 않았다. 전기차를 향한 소비자들의 ‘도전적인’ 선택이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지난해 글로벌 순수전기차(BEV) 판매량(460만대)은 처음으로 하이브리드차(330만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결국 전기차에 미온적이었던 일본의 3대 완성차 메이커(도요타ㆍ혼다ㆍ닛산)는 올 초 대대적인 전기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 규모만 3사 도합 11조엔(약 108조원)에 이른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기차 각축전에 뒤늦게 뛰어든 셈이다. 

현대차는 아이오닉5를 통해 일본 시장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는 아이오닉5를 통해 일본 시장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사진=현대차 제공]

■현황❸ 현대차 승부수 = 이처럼 자국시장에서의 판매량 감소, 한발 뒤처진 전기차 경쟁력 등을 원인으로 일본이 그동안 누려왔던 ‘자동차 강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균열은 14년 만에 일본 시장에 재도전하는 현대차가 전기차 경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발판이 되기에 충분하다.  

만약 아이오닉5가 일본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이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한국과 일본의 권력관계가 바뀌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일본의 완성차 메이커들이 아이오닉5를 전기차 시장의 ‘스탠다드(standardㆍ표준)’로 삼고 뒤쫓아올 가능성이 높아서다. 

반대로 현대차가 이번에도 일본 시장 공략에 실패한다면 일본의 완성차 메이커가 경쟁력을 키우는 시간을 벌어주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현대차의 실패를 통해 그 한계와 보완점을 학습한 일본 기업들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4년 만에 다시 링 위에 오른 현대차는 일본 시장을 발판으로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잡을 수 있을까. 경기는 시작됐다. 힘이 빠진 상대(일본 완성차 메이커)를 완전히 쓰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어퍼컷, 그 한방이 필요할 때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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