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국내 자동차 산업 대표하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시대 맞아 적극적인 글로벌 공략
패스트 팔로워 벗어나 퍼스트 무버 향해

지난해 세계 자동차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전기차였다. 2019년 220만대 수준이었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660만대를 기록하며 2년 만에 3배 성장했다. 흥미롭게도 전기차 시대의 도래는 국내 양대 완성차기업인 현대차 · 기아에 새로운 분기점이 되고 있다. 내수 시장에 의존하던 두 회사가 전기차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현대차·기아가 펼치는 글로벌 전략의 중심에는 전기차가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기아가 펼치는 글로벌 전략의 중심에는 전기차가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와 기아는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인 완성차 기업이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87.7%(2021년 기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자국 브랜드의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한 일본 자동차 시장과 비교해도 어마어마한 수치다. 

일본 최고의 완성차 기업 도요타의 지난해 내수 점유율은 31.4%에 불과하다. 도요타가 지분을 보유 중인 중견 완성차기업(스즈키 · 다이하쓰 · 마쓰다 · 스바루)의 점유율을 합쳐도(61.4%) 현대차 · 기아의 내수 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자국에서의 시장지배력은 현대차와 기아가 도요타에 비해 훨씬 높은 셈이다. 

하지만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도요타는 지난해 주요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 15.5%의 점유율로 업계 1위에 올랐다. 미국의 대표적인 완성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 · 14.6%)와 포드(12.7%)마저 제친 기록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점유율은 10.0%로 5위를 차지했다. 미국 시장이 완성차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와 기아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세계 시장에서 두 회사와 도요타의 격차가 벌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40년간 일본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군림했다. 1989년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론칭해 고급차 시장을 주도하고, 1997년에는 ‘프리우스’를 출시하며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개척했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는 1위 기업을 빠르게 뒤쫓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 가까웠다. 기술력을 집약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통해 영업이익률을 극대화하기보다 규모의 경제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해외 시장보다는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도요타와는 정반대의 경영전략이 두 회사의 성장에는 되레 한계점으로 작용한 거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흐름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옮겨가면서 완성차기업들의 경쟁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의 비중은 8.6%(전체 7640만대 중 660만대)로 아직까지 파이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2017년(100만대 · 1.3%)과 비교하면 6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본격 개막한 전기차 시대 

전기차 시장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만큼 완성차기업들의 경쟁도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시점에서는 전기차 열풍을 주도한 테슬라가 가장 앞서나가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 상황이 뒤바뀔 수 있는 변수도 숱하다. 

GM이 2025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며 (전기차 사업에) 42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의 완성차기업인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2030년까지 54조원을 투입해 전기차 전문 메이커로 완전히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 현대차와 기아도 가세했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전기차 17종 출시 ▲글로벌 판매량 187만대 ▲글로벌 시장점유율 7%를 목표로 총 95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기아 역시 2026년까지 28조원을 투자해 총 14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하기로 했다.

전기차 시장을 향한 두 회사의 적극적인 행보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구사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선제적인 투자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다행히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가 출시한 첫 전기차(아이오닉5 · EV6)의 성과도 나쁘지 않다. 전용 플랫폼(차체)인 E-GMP를 적용한 디자인은 물론 기술적 완성도까지 호평을 받으면서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준비를 갖췄음을 입증했다.

현대차 · 기아 세계 1등 향해   

현대차의 경우, 아이오닉5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근 ‘수입차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 자동차 시장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01년 쏘나타 · 아반떼 등 대표 모델을 내세워 일본 시장에 진출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08년 철수했다. 

지금은 예전과 시장 환경이 다르다. 현재 일본은 주요 자동차 시장 중 전기차 전환 속도가 가장 느린 곳으로 꼽힌다. 도요타조차 올해 첫 전기차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현대차가 도요타의 뒤를 쫓았다면, 이번에는 현대차가 도요타에 앞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완성차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랄프 브란트 슈테터 폭스바겐 CEO.[사진=폭스바겐 제공]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완성차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랄프 브란트 슈테터 폭스바겐 CEO.[사진=폭스바겐 제공]

이렇듯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정체돼 있던 현대차와 기아에 전기차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다. 물론 두 회사의 앞에 탄탄대로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글로벌 공급망 대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극복해야 할 난관이 숱하다. 

하지만 두 회사가 지금처럼 미래를 향한 확신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을 수립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선전한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를 통해 대한민국 1등이 곧 세계 1등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어쩌면 그날이 머지않았을지 모른다.


글=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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