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의 探스러운 소비 | 코로나19의 유산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쾌락

쾌락을 즐기고 싶지만, 나의 쾌락을 위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나무일 수도, 동물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를 확진자로 만들어버린 코로나19를 겪으며 소비자들의 이런 책임감은 더 견고해졌다. 그렇다고 재미를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방법은 없을까.

책임감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은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쾌락을 원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책임감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은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쾌락을 원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는 의도치 않은 변화들을 불러왔다. 소비시장도 그렇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 대비 21.0% 증가하며 193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감염을 최소화하려는 소비자들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며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이 가속화한 거다. 면역력 증진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제품 소비가 늘어난 것도 코로나19 영향이다.

인류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다양한 도전과 마주한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불청객처럼 다수의 소비자를 이토록 위협한 건 없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개인의 자유는 철저하게 제한됐다.

원하지 않아도 마스크를 써야 했고, 사람을 의도적으로 멀리해야 했다. 여행·운동·쇼핑 등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것들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어디 그뿐인가.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고, 극심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세상을 다 같이 건강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살기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물질적인 풍요보다 ‘안전한 사회’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엔데믹(endemic·풍토병화)으로 전환하면 소비자들은 또 한번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나의 행동이 사회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늘 품고 살았다면, 이제 여기에서도 벗어나고 싶어질 게 당연하다. 죄책감 없이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Freedonism(Free+hedonism·자유+쾌락주의)’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신나고 즐거운 경험은 이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게임·스포츠·공연·파티·여행의 형태로 다양하게 개발해 왔다. 위기를 지나며 사회적 의식과 책임감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한 재미보다는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윤리적인 쾌락(conscious hedonism)’을 추구한다. 

쉽게 얘기하면 이런 거다. 아무리 재미가 있다 한들 기후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 나의 재미를 위해 사회적 약자나 동물을 착취하는 구조도 원치 않는다. 최근 생태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에코(Echo) 여행’이나 동물학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비거니즘(Veganism)’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재미있으면서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이게 쉬운 게 아니다. 기후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지친 소비자에게 ‘재미’가 덜하다. 반대로 재미있는 제품과 서비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재미를 추구하면서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몇몇 기업이 있어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하와이의 Skyline 여행사는 집라인(Zip line)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상에서 하와이의 멋진 자연을 누릴 수 있는 데다 ‘안전한 짜릿함’은 덤이다. 이 여행사가 산악바이크나 카누체험이 아닌 집라인을 선택한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그것들보다 집라인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글로벌 여행사 Fair Voyage와 Very Local Trip은 지속가능한 여행을 표방한다. 특별한 요구를 가진 여행자와 로컬 지역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로컬 푸드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에게는 그 지역의 요리전문가, 지역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이에겐 역사해설가를 소개해준다. 여행자의 개인적인 요구와 지역사회 발전을 동시에 충족하는 거다.

이번엔 2018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에서 열렸던 한 뮤직페스티벌을 보자. 이 페스티벌에선 플라스틱 물병과 일회용 컵을 금지했다. 종이티켓도 없앴다. 10만명에 이르는 관객은 분리수거에도 동참했는데, 7개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6개 유형으로 나눠 버렸다. 그 결과, 전체 쓰레기의 53%가 재활용 가능한 형태로 배출됐다. 이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페스티벌’로 회자되곤 한다. 

쾌락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에선 그것만큼 좋은 해독제도 없다. 두려움의 시대, 소비자는 이제 환경·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소비자를 죄책감 없이 재미있게 만들어줄 비즈니스를 개발한다면, 그 기업은 상한가上限價 보장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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