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과제로 떠오른 웰에이징
더 긴요해진 디지털 역량

소비 활동은 나이를 초월해 이뤄진다. 하지만 디지털 관련 시장에서만은 다르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디지털 역량 격차 때문이다. 이는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당면한 숙제임이 분명하다. 노인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향후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웰에이징을 위해선 경제력만큼이나 디지털 역량도 중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웰에이징을 위해선 경제력만큼이나 디지털 역량도 중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제 막 90대 인생에 진입하신 필자의 어머니는 여전히 총기가 좋으시다. 그런 어머니에게도 올봄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일단, 아파트 현관을 드나드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디지털 스크린을 터치해 비밀번호를 눌러야 현관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데 그게 영 쉽지 않으신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발을 들여도 어머니는 집 앞에서 다시 숨을 가다듬으신다. 이번엔 디지털 도어록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안은 또 어떤가. 불을 켜고, 에어컨을 끄는 것도 쉬운 게 없다. 주방에서마저 인덕션이 어머니를 괴롭힌다. 이것저것 눌러보다 실패하신 어머니는 이후 “무뇌아가 된 것 같다”고 자조하시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면서 ‘잘 나이가 든다’는 뜻의 웰에이징(well-aging)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나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노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우선 신체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보람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도 웰에이징의 조건이다. 이를 위해선 기본적으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최근엔 그것만큼 중요한 게 하나 더 생겼다.

다양한 디지털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디지털 역량을 갖추는 거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잘 사용하며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디지털 에이징(Digital aging)’이란 용어가 생긴 것도 디지털 역량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오늘날의 디지털 역량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어릴 때 배운 알파벳이나 구구단만큼 중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의 온갖 가전제품을 다룰 때나 밖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쇼핑몰에서 결제를 할 때도 나이를 막론하고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야 해서다. 디지털 역량이 낮으면 더 비싼 값을 지불하거나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손자들과의 소통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실시했던 한 조사 결과를 보자. 60대 이상의 소비자의 디지털 역량을 묻는 설문조사였는데, 전체의 35.0%는 키오스크를 사용해야 하는 레스토랑에서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셀프 계산대를 이용해봤다는 응답자는 28.0%에 불과했다.

TV에서 원하는 영화를 골라보거나 AI 스피커를 이용해 TV를 켜고 끄는 것 이외에 다른 정보검색 활동을 한다는 응답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무슨 무슨 페이(pay)를 이용해 온라인쇼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로에 가까웠다.

사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는 MZ세대를 향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끼고 자란다는 ‘디지털 원주민’인 그들에게 어필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쉬워서다. 노인세대에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 외에 그 혜택을 얻는 방법, 그걸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야 하니 기업 입장에선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점을 가진 기업이라면 나이 든 사람에게 디지털 기술이 얼마나 유용하고 절실한지를 이해해야 한다. 누구나 노화로 신체적·사회적 한계를 겪을 수밖에 없지만 이를 극복할 서비스는 무궁무진해서다.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세워 디지털 시장에 노년층 고객을 끌어들이는 건 어떨까. 그 첫번째는 MZ세대에게 인기가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운이 없고 다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한 ‘노인용用’으로 만들어보는 거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노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많은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 기본기능만 있으면 된다. 기능은 줄이되, 터치가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위해 버튼을 만들거나 목소리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거다.

VR체험장도 노인용으로 만들 수 있다. 총쏘기게임, 롤러코스터 체험,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젊은 세대에게만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덜 어지럽게, 조금 천천히 움직이도록 하면 노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또 하나의 전략은 노인들의 디지털 역량 제고에 투자하는 거다.

대부분의 노인은 50여년 전 초등(국민)학교와 중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평생을 산다. 그 말은 최첨단 기술이 난무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게 그만큼 괴롭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안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디지털 역량은 중요해질 대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런데도 MZ세대만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텐가. 노인을 위해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정책적 투자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그것은 머지않아 노인이 될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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