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에 집착하는 마음
고달픈 인생, 집밥으로 위로

SNS에 올리기 위해 맛보다는 예뻐 보이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누군가는 바쁜 생활 속 어떻게든 밥 먹는 시간이라도 줄여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도 늘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집밥’이다. 이젠 집밥이 하나의 트렌드가 돼 집밥 레시피가 유행처럼 나돌고 있다. 집밥이라는 게 대체 뭐기에 이토록 집착하는 걸까.

집밥엔 누군가의 오랜 시간과 노력, 정성이 담겨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집밥엔 누군가의 오랜 시간과 노력, 정성이 담겨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최근 학생들과 진행했던 수업 하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최근 10대~70대 소비자 455명을 대상으로 식품 트렌드를 조사한 후 학생들에게 ‘소비자 면접’을 해보라는 과제를 내줬다. 조사 결과를 한데 모아놓고 보니 대답들이 꽤 다양했다. 새로운 트렌드도 발견했다. 

초단기간에 조리하고 먹어치우기 위해 ‘초초패스트푸드’를 즐긴다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재미로 먹는 ‘펀(FUN) 푸드’가 유행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SNS로 소통하고 소비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맛보다는 스타일이 중요한 ‘패션 푸드’를 선호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집밥’ 트렌드다. 외식과 배달음식이 늘어나고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 시점에도 ‘집밥이 최고’라는 인식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은 유독 집밥에 집착한다. 객지 생활을 하면서 늘 집밥을 그리워하고, 집밥을 먹으면 힐링이 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에게 집밥은 어떤 의미일까. 집밥은 그저 집에서 먹는 밥이 아니다. 엄마 또는 그 누군가가 먹는 사람을 위해 정성껏 차려주는 음식이다.

여기엔 꽤 까다로운 조건도 있다.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야 하고, 인공조미료나 첨가제는 들어가면 안 된다. 무엇보다 ‘정성’이 필요하다. 정성이 들어가야 집밥이 완성된다. 

정성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그 음식을 먹을 사람이 평소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 음식을 먹게 될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음식을 만들면서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가령,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짧은 시간에 빨리 만들 수 있다면 그건 ‘그리운 집밥’에 해당하지 않는다. 

미국에 필스버리(Pillsbury)라는 식품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가정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빵을 만들 수 있도록 반죽(생지)을 만들어 판다. 필스버리의 생지가 식탁에 오르는 과정은 생각처럼 간단치가 않다. 일단 30분 넘게 숙성을 시켜야 한다. 그다음엔 오븐에 구워야 비로소 바삭한 크루아상을 먹을 수 있다. 

필스버리는 전자레인지에 넣어 3분 만에 뚝딱 부풀어 오르는 제품을 만들어 팔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이렇게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반죽을 파는 이유는 뭘까. 답은 아주 단순하다. 3분 만에 부풀어 오르는 크루아상은 정성스러워 보이지 않아서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많은 소비자가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정성을 보이기 위해 이 반죽을 구매한다고 말한다.

집밥을 완성하는 요인은 정성만이 아니다. 학생들과 진행한 조사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집밥은 꼭 밥(Rice)이어야 한다는 결괏값이었다. 소비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전체의 85.4%가 “하루 한끼는 꼭 밥을 먹어야 한다”고 답했다. 40대 이상에서는 그 비율이 90%를 넘었다. 놀라운 건 10대~30대 응답률이다. 그들 중 75% 이상이 하루 한끼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답했다.

빵과 국수, 야채, 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식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요즘 세대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조사를 본 적도 있는데, 의외의 결과다. 어찌 된 걸까. 기숙사에 산다는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위로가 되니까요.” 

팍팍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는데, 하루 한끼 밥도 먹지 않으면 자신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느낌이 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집에서 먹는 빵이나 국수 등은 밥이 아니라 끼니를 때우는 것이라는 한 학생의 대답은 의외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여졌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인 가구는 664만 가구가 넘는다. 전체 가구 중 31.7%가 1인 가구로 그 비중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식사를 혼자 준비하기 힘든 노인도 증가 추세다. 이들을 겨냥한 각종 밀키트(Meal Kit)가 출시되고 있는데, 조사 결과를 보면 식사준비 시간을 줄여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선 그냥 때우고 마는 끼니가 아니라 집밥이라는 걸 인식시켜줘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결국 소비자에게서 찾아야 한다. 소비자를 관찰하고, 소비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소비자가 대답을 하면, 왜 그런지 또 물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한번, 두번, 다섯번쯤 반복하면 답이 보일 거다. 소비자도 모르는, 집밥에 집착하는 그들의 마음 말이다. 


글 =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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