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 | 임금피크제 담론 1편
연금재정 문제는 연금만의 문제 아냐
노동정책으로 연금 문제 풀 수도 있어

연금고갈론의 근거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연금을 낼 사람은 부족한데, 받을 사람은 많다는 겁니다. 다름 아닌 ‘고령화’가 문제라는 거죠. 그렇다면 일하는 ‘노인’이 더 많아지면 연금고갈을 막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게 훗날 연금을 못 받을까 걱정하는 청년을 위한 길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역시 단점이 있습니다. 일하는 노인이 늘면 청년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일하는 노인이 늘면 연금재정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사진=뉴시스]
일하는 노인이 늘면 연금재정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사진=뉴시스]

연금제도 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입니다. 이런 공약이 나온 덴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인구의 고령화 때문입니다. 노인 인구의 비중이 늘면 연금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연금수급자가 더 많아지니까 연금을 줄 돈이 부족해질 것이란 논리입니다. 연금고갈론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손보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젊은이들의 반발이 만만찮습니다. 가뜩이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 수준에 불과한데, 훗날 자신들은 그보다 더 낮은 연금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내가 납부하는 보험료를 얼마나 더 내야, 혹은 내가 받는 수급액이 얼마나 깎여야 안정적인 상황이 되는지도 불투명합니다.

뭔가 색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더스쿠프의 ‘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 시리즈에서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와 함께 그 아이디어를 고민해봤습니다.

✚ 인구 고령화로 연금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다면 당연히 손을 봐야죠. 그런데, 그 전에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가 걱정하는 게 과연 무엇이냐는 겁니다. 단순히 수명이 늘어나 노인이 많아지는 게 걱정인 걸까요. 아니면 일하지 않는 노인이 늘어나는 게 걱정인 걸까요.”

✚ 당연히 후자 아닌가요. 일하는 노인이 많다는 건 보험료를 내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거고, 그건 연금재정에 긍정적이니까요. 그에 따라 수급 시기를 더 늦출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맞습니다. 그래서 연금고갈론으로 대변되는 연금제도 개혁의 문제는 사실 노인의 일자리 문제와 엮여 있습니다. 일하는 노인이 많아지면 연금재정에도 긍정적이니까요.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빨리 퇴직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연금개혁에 앞서 노인들이 빨리 퇴직하지 않고 일을 좀 더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그렇긴 합니다만, 노인들이 일을 더 오래 하면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지 않을까요.
“많은 이가 그런 걱정을 하죠.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노인들이 일을 하면 왜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느냐는 겁니다.”

✚ 일자리가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한정된 일자리를 나눠 가지려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런가요. 그럼 그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 천천히 한번 곱씹어 보죠. 우선 임금체계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 기업들은 대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택하고 있습니다. 초임을 적게 받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받는 구조죠.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치가 쌓이고, 그 경험치들이 회사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니까요.”

✚ 직급이 올라갈수록 돈을 더 받는 것도 같은 이유죠. 
“맞습니다. 하지만 그 임금이 무한정 늘어나진 않습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노동자의 능력보다 임금이 더 높아지겠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임금이 깎입니다. 임금이 ‘피크(정점)’를 찍고 내려온다고 해서 이걸 임금피크제라고 합니다. 문제는 노동자의 능력보다 임금이 더 높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 노동자의 능력도 개인 편차가 있으니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기가 쉽지는 않겠네요. 
“그렇습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단순히 나이에 따라 임금을 깎으면 차별’이라는 판결을 내놨습니다. 그래도 기업들은 여전히 ‘나이가 들수록 능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그게 가장 이해하기가 쉽잖아요. 문제는 임금이 피크에 도달했는지도 알 수 없는데, 임금을 얼마나 깎아야 적당한지 그 기준도 없다는 점입니다.”

최근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깎는 것은 차별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깎는 것은 차별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기업으로선 터무니없이 임금을 깎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기준이 없으니까요. 실제로 A은행 지점장의 경우 1억원이 넘던 연봉이 하루아침에 5000만원으로, 이듬해에는 3000만원으로 깎인 사례도 있습니다. 그 지점장의 능력이 갑자기 반토막 난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자, 그럼 기업 입장에서 3000만원을 주고 그 지점장을 쓰는 게 나을까요, 5000만원을 주고 신입사원을 쓰는 게 나을까요.”

✚ 지점장을 쓰는 게 더 이익이겠죠.
“당연합니다.” 

✚ 그런데 약간 극단적인 비유를 드신 건 아닌가요?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입니다. 모든 직종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임금피크제 탓에 고령 노동자의 임금이 아무런 기준 없이 낮게 책정되는’ 이상한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일자리 경쟁에서 고령 노동자가 임금경쟁력을 갖게 되고, 일자리를 두고 청년들과 경쟁을 펼치게 되는 거죠.”

✚ 단순히 노인이 늘어나기 때문에 청년들과 일자리 경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임금피크제가 그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인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난 이유를 공공일자리 증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변에는 시장 논리가 깔려 있는 거죠.” 

✚ 그렇다면 고령 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인상해줘야 하는 걸까요? 그럼 고령 노동자와 청년이 경쟁하는 상황이 줄어들까요? 되레 청년의 취업문이 더 좁아질 듯한데요. 
“우리는 무조건 고령 노동자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임금피크제 하나만을 고집합니다만, 늘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영미권 국가들은 모든 걸 시장에 맡기는 식이지만,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임금피크제보다는 ‘점진적 퇴직’이라는 시스템을 운용합니다.”

✚ 그건 어떤 방식인가요. 
“노동시간당 임금 수준은 그대로 유지한 채, 전체 노동시간만 줄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줄어든 노동시간들을 모아서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은 있을지언정, 세대간 일자리 경쟁을 펼친다는 느낌은 적죠.”

✚ 노동시간이 줄면 임금도 감소할 텐데, 이 역시 반감의 원인이 되진 않을까요?
“독일의 예를 들면 노동시간이 줄어도 임금의 절반은 유지되도록 기업에 책임을 지웁니다. 거기서 모자라는 임금은 정부가 실업수당이나 연금으로 채워줍니다. 반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정부 보조가 조금 더 줄어듭니다. 그러니 일하는 노인이 늘도록 부추기는 정책을 펴는 거죠.” 

✚ 결국 젊은이들의 반감 없이도 일하는 노인을 늘릴 방법이 있다는 거군요. 연금재정 문제가 그저 노인들의 증가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변수가 아니라, 사실은 노동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혹자는 유럽 국가들의 연금수급 연령이 80세가 넘는다는 주장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면에는 이런 노동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분석과 해법은 언제나 다양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금고갈론과 임금피크제에 갇혀 다양한 사고를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다음호에서 좀 더 다양한 사고를 이어갈까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이정우 인제대 교수
socwjwl@hanmail.net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