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00일, 남은 1700일

“분골쇄신하겠다”는 다짐만으론 부족하다.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정책과 확실한 실행으로 국민에게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이게 대통령의 책무다. [사진=연합뉴스]
“분골쇄신하겠다”는 다짐만으론 부족하다.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정책과 확실한 실행으로 국민에게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이게 대통령의 책무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54분 동안의 기자회견 중 20분을 모두발언에 할애했다. 통상 모두발언은 5분 안팎으로 짧게 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이례적으로 길었다.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 폐기, 누리호 발사 성공, 민정수석실 폐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한미동맹 재건 등 집권 100일간의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머물렀다. 한국갤럽의 8월 둘째주 여론조사 결과로는 25%다. 부정 평가가 66%로 긍정 평가의 2.6배에 이른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던 시기(2016년 10월 하순)와 같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100일 무렵 지지율과 비교하면 집권 초기 소고기 광우병 논란을 겪은 이명박 전 대통령(21%·2008년 5월 31일) 다음으로 낮다. 취임 100일 무렵 지지율은 김영삼 전 대통령(83%·1993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78%·2017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62%·1998년 6월) 순서로 높았다.

윤 대통령도 낮은 지지율을 의식했는지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자세를 낮추면서도 100일의 성과가 적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국민과 언론이 몰라준다는 서운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는 언급은 생뚱맞았다. 최근 아파트값 급등세가 꺾인 것은 정책 효과라기보다 아파트값이 고점을 찍었고 가파른 금리 상승세가 영향을 미친 결과다.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정책은 정부가 출범한 지 99일째 되는 날, 대통령 기자회견 전날에야 발표됐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국민’을 20차례 언급하면서 “분골쇄신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 뜻을 살펴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정책과 확실한 실행으로 국민에게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운동 기간에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국정 운영에 대한 청사진도 없이, 준비되지 않은 어퍼컷은 독단과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시도 교육감은 물론 교사·학부모 단체의 의견 수렴도 없이 취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겠다고 덜컥 발표했다가 거센 반대에 부닥쳐 후퇴한 일을 값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지율이 20%대 후반이란 점은 대선 때 표를 찍은 지지층(대선 득표율 48.56%)도 절반 가까이 등을 돌렸다는 의미다. 언제까지 따져보고, 되짚어보기만 할 것인가.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며 넘어가기에는 국내외 경제 및 외교안보 상황이 엄중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리고 5년 임기 중 1700여일이 남았다. 축구로 치면 전·후반 90분 경기 중 전반전 5분 정도 뛴 셈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전 소속팀 멤버에 출신 대학과 고등학교 등 학연에 얽힌 선수들을 핵심 포스트에 기용한 것도 모자라 맞지 않는 전략과 때론 엉뚱한 전술까지 구사하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국정과 인사 쇄신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등 ‘하고 싶은 일’만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해결책을 찾겠다고 강조하고 나선 노동·교육·연금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확실하게 실행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용산 이전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등 ‘하고 싶은 일’만 해선 안 된다.[사진=뉴시스]
대통령이 용산 이전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등 ‘하고 싶은 일’만 해선 안 된다.[사진=뉴시스]

여론과 여야 정치권의 인적 쇄신 요구에 윤 대통령이 “국면 전환이나 지지율 반등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답한 것은 심각한 인식의 오류를 드러낸다. 국정 운영이 한계에 봉착했으니 사람을 바꾸라는 조언인데 정치 쇼를 하라는 주문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장관이나 대통령실 참모 등 요직에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들(예컨대 검찰 출신)을 앉히지 말고 일을 잘할 수 있는,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두루 찾아 기용해야 할 것이다.  

과거 정부 탓, 야당 탓, 참모 탓 말고 대통령이 스스로 변화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강조한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는 말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은 축구 국가대표팀이 전반전 5분간과는 다른 향상된 기량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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