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위협하는 중국산 전기차
현대차·기아 글로벌 패권 위해
국내 시장 경쟁력 잃지 말아야

현대차ㆍ기아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시장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완성차 브랜드를 줄줄이 뛰어넘고 있어서다. 한편에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였던 현대차ㆍ기아가 전기차를 등에 업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약점도 있다. 공교롭게도 그 약점은 ‘안방’에서 노출되고 있다.

올 들어 중국의 전기차 메이커들이 상용차를 중심으로 국내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올 들어 중국의 전기차 메이커들이 상용차를 중심으로 국내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격세지감.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달라진 위상을 대변하는 말이다. 지난해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開花하면서 국내 대표 완성차기업인 현대차기아가 이 시장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떠오른 까닭이다.

일본의 도요타,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수의 완성차기업보다 ‘한발 앞서’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현대차ㆍ기아의 발빠른 행보는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ㆍ기아의 전기차 판매량은 34만대로 세계 5위를 차지했다.[※참고: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위는 미국의 테슬라(105만대)가 차지했다. 다음으로 ▲독일 폭스바겐그룹(71만대) ▲중국 BYD(60만대) ▲미국 제너럴모터스(GMㆍ52만대)의 순이었다.] 

더 고무적인 건 현대차ㆍ기아가 주요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현대차ㆍ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13만5526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올해 기준 월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유럽시장 점유율도 두자릿수(10.4%)를 돌파하며 BMW(7.4 %)와 아우디(5.9%)도 제쳤다. 선두기업을 뒤쫓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 가까웠던 현대차ㆍ기아가 이젠 전기차를 앞세워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국내 시장 침투하는 중국 전기차

하지만 국제무대에서의 선전 이면에는 분명한 ‘위협’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중국산 전기차다. 중국의 전기차 메이커들은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버스ㆍ소형트럭 등 상용차를 중심으로 한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 A)의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중국산 전기상용차 판매량은 총 135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59대) 대비 749.7%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에 불과했던 중국산 전기상용차의 시장점유율도 올 상반기 6.8%로 6배 이상 뛰었다.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잡기 위해선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력부터 단단히 해야 한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잡기 위해선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력부터 단단히 해야 한다.[사진=현대차 제공]

사실 중국산 전기상용차의 ‘폭격’은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에 가깝다. 중국 전기차 메이커들의 연대기를 훑어보면 그 연원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전기차 메이커들은 2014년 중국 정부의 산업지원정책을 등에 업고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부터 중국 교통당국은 ▲미래차 육성 ▲미래차 고도화 ▲친환경차 보급 ▲외국자본 규제 완화라는 큰 틀 안에서 적극적인 전기차 보급 정책을 펼쳤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기차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보조금 및 크레딧(보상) 제도는 물론 ▲순수전기차 제조 분야의 규제 완화 ▲로컬 부품사 육성 ▲스마트교통 인프라 구축 ▲외국자본 지분 규제 철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체계적인 지원책을 시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중국 내수시장에는 32만개(2021년 9월 기준)가 넘는 전기차 관련 사업체들이 생겨났고, 중국을 대표하는 전기차 메이커 BYD는 올 상반기에만 총 64만7000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업계 선두였던 테슬라(57만5000대)를 앞질렀다.

기술적인 성장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최대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CATL이 셀투팩(CTP) 기술을 통해 1회 충전만으로 1000㎞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제품명 기린麒麟)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건 대표적 사례다.[※참고: CTP란 셀ㆍ모듈ㆍ팩으로 이뤄진 배터리 구성에서 모듈을 생략한 채 셀을 바로 팩에 조립하는 방식을 말한다. CTP는 기존의 제조 방식보다 배터리 경량화 및 열 관리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CATL은 내년부터 ‘기린’의 양산에 돌입할 예정인데, 만약 수율(생산한 제품 중 결함이 없는 양품의 비율) 관리에 성공한다면 이는 전기차 시장의 또다른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주행성능 향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완성차기업들이 CATL의 배터리를 채택할 경우, CATL이 적용한 CTP 방식의 배터리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중국 기업들이 핵심 부품(배터리)을 필두로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양과 질 모두에서 폭발적 성장을 이룬 중국의 전기차 기업들은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른 내수시장에서 눈을 돌려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15만5400대에 불과했던 중국의 전기차 수출량이 올 상반기 2배 이상(36만2200대)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 성장세도 가파르다.

비교적 수출ㆍ수입 요건이 까다롭지 않은 상용차를 중심으로 국내 시장에 침투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메이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 중국산 전기차는 아직까지 버스와 소형트럭에 한정돼 있지만, 빠른 속도로 수출 레퍼런스(re ferenceㆍ평판)를 쌓아가고 있는 중국 메이커들이 언제 전기승용차 시장에서 공세를 펼칠지 모를 일이다.

전기차, 승부는 지금부터…  

119년 역사의 완성차기업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어느 정도는 터무니없는 속임수다(History is more or less bunk).”

현대차ㆍ기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거둔 당장의 성과가 ‘순간의 속임수’에 그치지 않으려면, 중국 메이커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우리 안방(내수 시장)부터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행랑(대문간에 붙은 방)을 빌려주면 안방까지 든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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