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당하는 인터넷 피싱
요금 내주겠다며 추가 가입 유도
혜택 과도하면 십중팔구 사기

# “지금 사용하시는 기기의 인터넷 약정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괜찮은 프로모션 상품이 있는데, 한번 써보시겠어요?”

# 이런 전화를 받아본 적 있나요? 이미 유혹에 걸려든 적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먼저 전화를 걸어와서 이 말을 건넨다면 십중팔구 사기, 요즘 말로 ‘인터넷 피싱’에 노출된 겁니다.

사기꾼들은 어마어마한 할인 혜택을 준다는 말로 소비자를 유혹해 인터넷 가입을 유도합니다. 이미 사용 중인 인터넷이 있는데도 말이죠. 소비자가 ‘유혹’에 걸려들면, 실적만 챙긴 채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 혹자는 ‘○○가 아닌 이상 이런 뻔한 수법에 누가 걸려들겠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터넷 피싱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인터넷 피싱 사기꾼들의 수법을 파헤쳐봤습니다.

인터넷 피싱 사기는 알고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인터넷 피싱 사기는 알고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집에서 쓰는 SK브로드밴드 유선인터넷 약정이 6개월여 남은 직장인 민식씨. 한달 뒤 이사할 예정인 민식씨는 인터넷 재계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에게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을 KT 인터넷 가입 담당자라고 소개한 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지금 유선인터넷 약정이 6개월 남아있으시네요. 이번에 좋은 혜택을 드리고 있는 상품이 있는데, 한번 가입해 보시겠어요?”

민식씨는 담당자에게 ‘조만간 이사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지금 KT 상품에 가입하고 6개월 뒤에 기존 상품을 해지하면 된다”면서 “그렇게 하면 기존 상품의 요금을 대납해주고, 혜택을 더 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이사를 한다는 데도 굳이 새 상품을 권유하는 담당자의 말이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지금 가입하면 혜택을 더 주겠다”는 제안은 민식씨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혜택 기간인 12개월 동안은 인터넷 비용을 전액 지원해드리니 셋톱박스 비용만 내주세요. 그 이후에 조정되는 요금에 맞춰 소정의 현금보조금도 한번 더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민식씨는 KT의 유선인터넷에 신규 가입을 했습니다. KT란 대기업 이름까지 떳떳하게 댔으니, 사기를 당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본사와 무관한 계약의 비밀

그로부터 한달 후, 민식씨는 인터넷 요금 청구서 2장을 받아들었습니다. 거기엔 SK브로드밴드 요금과 함께 KT 유선인터넷 요금이 찍혀 있었습니다. ‘요금을 대신 내주겠다’는 담당자의 말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죠.

다급해진 그는 담당자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지금은 회의 중이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문자만 되돌아왔습니다. 며칠간 통화를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민식씨는 자신이 가입한 KT 상품의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당장 취소할 생각이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3년 약정이 걸려 있는 장기계약 상품이었기 때문이죠. 도중에 가입을 취소할 경우 적지 않은 위약금을 내야 했습니다.

KT 본사에 전화를 해봐도 “계약상의 문제는 없으므로 가입 취소 시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전화 한통에 3년 약정이 걸린 KT 요금을 고스란히 내야 하는 민식씨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넷 피싱 사기꾼들은 “인터넷 요금을 대신 내주겠다”는 말로 추가 가입을 유도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 피싱 사기꾼들은 “인터넷 요금을 대신 내주겠다”는 말로 추가 가입을 유도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실 한국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는 나라도 찾기 힘들 겁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초고속인터넷 가입 회선 수는 2326만4220개에 달합니다. 한국 총 가구 수(2144만8000가구)와 비교해 보면, 모든 집마다 인터넷이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인터넷 가입을 유도해 피해를 입히는 이른바 ‘인터넷 피싱’ 사기는 통신업계의 오랜 고질병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는 ‘바보처럼 왜 당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민식씨처럼 어이없이 사기를 당한 이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터넷 사기’만 검색해 봐도 “사기당했다”고 하소연하는 피해자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알면서도 인터넷 피싱 사기에 당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소비자들이 경계하는 만큼 사기꾼들의 수법도 나날이 교묘해졌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들은 어떤 수법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을까요? 인터넷 가입 대리업체 ‘백메가’의 김영호 상담자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사기꾼들의 유형과 예방법을 알아봤습니다.

✚ 백메가는 어떤 회사인가요.
“스마트폰을 살 때 대리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대리점의 역할과 거의 비슷해요. 소비자들의 인터넷 가입을 돕는 업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2008년에 창업을 했으니, 업계에선 나름 오랜 업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인터넷 피싱 관련 상담도 많이 받았겠네요.
“그렇죠. 회사 홈페이지에 2015년에 작성된 게시물이 하나 있거든요. 인터넷 피싱전화의 유형과 대응법을 적은 글인데, 아직도 그 게시물에 댓글로 문의를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조회수도 많고요. 고객들이 포털에서 인터넷 피싱을 검색하다 홈페이지까지 방문하신 것 같아요.”

✚ 주로 어떻게 피해를 입었다고 하던가요.
“유형은 굉장히 다양해요. 가장 최근에 진행했던 상담 내용을 말씀드릴게요. SK브로드밴드 인터넷을 이용하던 소비자였는데, 약정이 9개월이 남아 있었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사기꾼한테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 뭐라고 하던가요.
“남은 약정기간에 KT 장비를 쓰면 9개월 뒤 재약정을 할 때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 요금을 할인해주겠다는 게 골자였어요.”

✚ ‘장비를 쓴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KT 인터넷에 가입하라는 걸 돌려 말하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인터넷에 중복가입할 이유가 없잖아요. 상대방이 거부감이 들지 않게 에둘러 표현한 거죠.”

사기꾼은 “TV 셋톱박스(방송용 수신장비) 요금만 납부하면 인터넷 비용은 전부 대신 내주겠다”면서 “그러면 기존에 이용하던 구형 셋톱박스도 최신형 장비로 무상 교체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최신 셋톱박스 무상교체’란 혜택을 주는 듯하지만, 사실 이는 당연한 얘기입니다. KT에 신규 가입을 했으니 셋톱박스도 최신형으로 설치되기 때문이죠. 이처럼 사기는 ‘말장난의 연속’입니다.

✚ 그럼 인터넷 요금을 소비자가 중복으로 내는 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중복된 인터넷 요금을 대신 내주겠다는 말로 소비자를 꼬드겨요. 몇개월만 중복가입을 유지하면 재약정 때 요금을 대폭 할인해주겠다는 식이죠.”

✚ 그렇게 해서 중복가입을 유도한 다음에 잠적하는 거군요.
“그렇죠.”

✚ 다른 사기 방식도 있나요.
“이건 주로 고령층이 자주 당하는 수법이에요. KT 약정이 9개월 남은 고객이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사기꾼은 이 고객에게 기존 통신사를 해지하라고 권유해요. 그런 다음 LG유플러스에 신규 가입하고, 1년 뒤에 다시 KT로 재가입하면 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꼬드깁니다.”

✚ 그러면 해지 위약금이 대량으로 발생하지 않나요.
“맞아요. 그래서 사기꾼은 ‘KT 해지 위약금을 대신 내주겠다’고 설득해요. LG유플러스에 신규가입했기 때문에 사은품이 나오니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 1년 뒤 LG유플러스를 해지했을 때 발생하는 위약금은요?
“KT 재가입 혜택으로 현금과 상품권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으로 LG유플러스의 위약금을 상쇄하라고 말합니다. 또 재가입인 만큼 요금도 할인된다고 하죠.”

✚ 실제로 상품권이나 현금이 지급되기도 하나요.
“일부 사기꾼은 현금을 계좌로 보내주기도 해요. 피해자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죠.”

✚ 그런데 신규 또는 재가입하면 통신사에서 혜택을 제공하지 않나요.
“물론이죠. 이걸 사기꾼들은 자신들이 주는 것처럼 포장하죠.”

✚ 사기꾼들이 중복가입을 유도하는 이유가 뭔가요.
“이유는 하나예요. 인터넷 가입 실적을 유치하기 위해서입니다. 사기꾼들이 차린 회사들도 겉으로만 보면 어엿한 인터넷 가입 대리업체거든요. 자신들이 어떤 방법을 쓰든 소비자가 가입만 하면 끝인 셈이에요.”

✚ 통신사에 잘잘못을 따질 순 없는 건가요.
“안타깝게도 통신사에 구제를 요청하기는 힘들어요. 대리점을 거쳐 가입하는 경우 소비자와 대리점 간에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이라서요. 통신사가 ‘우리와 직접 계약을 한 게 아니니 우린 잘못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거든요.”

✚ 사기를 당했을 때의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인터넷에 중복가입한 경우, 피해자들은 당장 새로 가입한 인터넷을 해지하길 원하거든요. 그러면 약정 해지 위약금이 발생하는데 이 경우엔 가입 기간이 짧으니 그나마 상황이 나아요. 통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받았던 사은품과 이용 기간만큼의 할인 요금을 돌려주면 되거든요. 가장 피해가 큰 건 약정 만기가 가까워진 인터넷을 해지한 경우예요.”

✚ 얼마나 피해가 큰가요.
“이걸 해지하면 지금까지 할인받아 온 금액을 전부 통신사에 돌려줘야 해요.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30만~40만원의 위약금이 발생합니다. 사기꾼들이 대신 납부해주겠다고 했던 금액이죠. 액수도 액수지만 몇 개월만 참으면 내지 않아도 되는 금액이니 피해자들 입장에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인터넷 피싱범들의 사기행위를 사전에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김영호 상담자는 “사기꾼들의 수법이 다양한 듯하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약정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해지를 종용하는 경우 ▲전화한 적이 없는데 먼저 전화가 오는 경우 ▲위약금을 대신 납부해주겠다는 말로 유혹하는 경우 ▲자신이 본사 직원이라고 말하며 인터넷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 4가지 공통점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되면 인터넷 피싱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특히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면 대부분 인터넷 피싱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사기꾼들은 고객의 전화번호를 불법으로 취득해 전화하기 때문이죠. 일반 대리점은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하지 않아요.”

✚ 사기꾼의 전화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스팸전화 차단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전화를 받기 전에 앱이 스팸전화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주기 때문에 무척 유용해요.”

김 상담자는 “어떻게든 신규 가입을 유치하는 게 사기꾼들의 목표”라면서 “멀쩡히 인터넷을 잘 쓰고 있는데 중복가입이나 해지 후 신규 가입을 유도한다면 인터넷 피싱이라고 봐도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제대로 된 대리점이라면 절대로 중간 해지를 권유하지 않아요.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무조건 3년 약정을 채우라고 조언하죠. 그게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이점을 꼭 명심하셨으면 좋겠어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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