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피싱 돕는 사람들

“투자자의 욕심, 허술한 규제, 제도적 허점….”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성행하는 이유를 꼽을 때 언급되는 요인들이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또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유령법인을 만들어주는 법무사, 대포폰을 제공하는 별정통신사 등 사기꾼이 활개칠 수 있게 도와주는 세력이 숱하다는 점이다. 더스쿠프가 돈이면 뭐든 괜찮다는 ‘사기꾼의 조력자’를 취재했다.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성행하는 이유는 이를 돕는 조력자가 많아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성행하는 이유는 이를 돕는 조력자가 많아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성행하고 있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미끼로 서민을 울리는 사기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거다. 이같은 사기가 유행할 수 있는 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불었던 주식투자 광풍, 2021년 기업공개(IPO) 열풍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초조함에 증시를 열어젖힌 투자자가 증가했고, 그런 그들을 노리는 사기꾼도 늘어났다.  

당연히 사기의 영역도 넓어졌다. 주식 리딩방 사기는 물론 레버리지 사기, 비상장주식 사기, 코인사기, 선물옵션 등으로 파생됐다. 그렇다고 수법까지 다양해진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이버피싱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화나 SNS를 사용해 투자자에게 접근한 후 돈을 갈취하는 ‘피싱’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공통점은 또 있는데, 사이버피싱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는 조력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기꾼을 돕는 조력자들은 누구일까. 

■ 유령법인 만드는 법무사 = 사이버피싱 사기꾼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법인을 차리는 것이다. 그럴듯한 법인을 실제로 만들어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기업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다. 사기꾼에겐 이때 법무사가 필요하다. 2009년 법인 설립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5000만원) 제도가 폐지되면서 법인 설립이 쉬워졌지만 그 절차는 여전히 복잡해서다. 

실례實例를 들어보자. 2019년 유령법인을 설립해 주고 사기꾼들로부터 돈을 챙긴 법무사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사기꾼에게 돈을 받은 법무사 사무장이 89여개에 이르는 유령법인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는 심각한 범죄다. 유령법인은 대포통장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이렇게 개설된 대포통장은 피해자들이 돈을 보내는 창구로 활용돼서다. 

최정미 레버리지박멸단장은 “유령법인 하나당 200만~300만원의 돈을 받고 있다”며 “검찰에서 관련 사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령법인과 대포통장을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대포폰 만드는 별정통신사 =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에서 빠져선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대포폰’이다. 전화나 SNS로 투자자를 유혹하는 사기꾼들에게 대포폰이 필수여서다. 경찰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집중 단속을 통해 대포폰 2만739대를 적발했다. 전년 동기(1086대) 대비 1810% 증가한 수치다. 대포폰의 유통량만 봐도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대포폰은 사이버피싱 업체들이 만들 순 없다. 그래서 대포폰을 만들어주는 세력이 필요한데, 전문가들은 별정통신사(알뜰폰)를 유력 조력자로 꼽는다. 실제로 경찰이 적발한 2만739개의 대포폰 중 70%가 넘는 1만4530대가 별정통신사를 통해 유통됐다. 

문제는 ‘대포폰의 온상’으로 보이는 별정통신사를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9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별정통신사는 552곳(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앙전파관리소 기준)에 달하지만, 이를 관리하는 체계가 허술해서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영세한 별정통신사 중 일부가 도용한 명의로 만든 알뜰폰을 유통하고 있다”며 “국내를 방문한 외국인의 명의를 이용하는 사례도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별정통신사가 불법의 온상으로 보일까 걱정”이라며 “별정통신사업 시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진입 규제를 강화하고,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객정보 뿌리는 기업들 = 사이버피싱의 조력자는 또 있다. 고객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유통하는 기업들이다. 사이버피싱의 성공률을 높이는 요건은 고객의 정보다. 작업을 거는 피해자가 주식계좌를 갖고 있는지, 코인투자를 하는지 등을 사전에 알고 있으면 접근하기 용이해서다. 사기꾼들이 돈을 주고 고객 DB(데이터베이스)를 사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렇다면 고객 DB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사기꾼들은 시중 금융회사와 투자관련 기업, 심지어 주식 리딩방에서도 고객 DB를 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레버지리 사기 상담원으로 일했던 이정민(가명·49)씨는 “이름만 들어도 알고 있는 주식정보회사에서 DB를 판매한다는 건 사기꾼들 사이에선 알려진 사실”이라며 말을 이었다.

“어떤 고객 DB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무작정 전화를 걸어 주식 리딩방이나 레버리지, 선물 투자를 권하는 시절은 지났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주식정보회사나 주식 리딩방은 100% 고객 정보를 판매한다고 보면 된다. 한곳에 가입하면 이후부턴 비슷한 투자권유 전화나 연락이 끊이질 않는다. 사기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증권사 고객 DB다. 사용하고 계신 증권사 제휴업체라고 말을 꺼내면 훨씬 이야기를 이어가기 좋다. 그만큼 사기당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다.” 

■사기꾼 변호하는 변호사 = 만에 하나 사기가 적발됐을 때도 사기꾼을 돕는 조력자는 존재한다. 다름 아닌 돈이라면 누구든 돕겠다고 나서는 일부 변호사다. 물론 사기를 쳤다고 해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건 아니다. 형량을 낮추거나 재판을 받으려면 변호사의 법적 조언이 불가피하고, 이는 당연한 권리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악용해 돈을 벌려는 변호사와 법률사무소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무죄, 혐의없음, 집행유예 받는 법’이라는 글을 직접 올려 영업하는 법률사무소도 있다.

어떤 법률사무소의 인터넷 블로그에는 ▲유죄인 경우 ▲무죄로 인정될 때 취해야 할 행동요령 등을 설명해주는 상세한 글까지 올려져 있다. 사기꾼을 변호하는 것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영업 활동을 하는 게 직업윤리에 맞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는 “레버리지 사기꾼을 검거했지만 구속영장이 계속 기각돼 애를 먹은 적이 있다”며 “사기꾼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가 과거 유명했던 검찰 간부 출신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뒷말이 무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면 사건이 이송된 지역의 판사출신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사기꾼들이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사기꾼들이 피해자에게서 갈취한 돈으로 몸값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호소하는 피해자도 숱하다”고 토로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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