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녹음과 소탐대실

현행법상 대화 당사자의 녹음은 불법이 아니다. 이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학교폭력, 성폭력 등을 둘러싼 법적 공방 과정에서 녹음 파일이 증거 자료로 활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당사자 간 통화·대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녹음 파일을 이용한 협박 등 악용 사례가 많다는 게 발의 이유 중 하나인데, 이 논리를 받아들여야 할까. 

피해자는 증거를 밝히려 하고, 가해자는 증거를 숨기려 한다. 당사자 간 통화 녹음이 합법으로 유지돼야 하는 이유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피해자는 증거를 밝히려 하고, 가해자는 증거를 숨기려 한다. 당사자 간 통화 녹음이 합법으로 유지돼야 하는 이유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통화 녹음’이 뜨거운 이슈로 다시 떠올랐다. 지난 8월 18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다. 이 법안은 “당사자 간 대화일지라도 대화 참여자 모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녹음할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화 녹음이 이슈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에도 이른바 ‘통화 녹음 알림법(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바 있다. 당시 김광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 중 녹음을 할 경우 상대방에게 알림을 보내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거세게 일어난 반대 여론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 하나를 살펴보자. 여론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 ‘통화 중 녹음 금지’ 관련 조사를 실시한 결과, ‘휴대전화로 통화를 녹음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2.9%였다. 통화 녹음을 하는 이유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책임 소재를 확실히 해두려는 용도 등)’가 70.0%(이하 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학업·업무에 활용하기 위해서(28.0%)’가 뒤를 이었다. 

아울러 대부분의 응답자는 통화 녹음 효과를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부정부패 고발과 약자 방어 수단의 역할을 한다’는 응답률(73.6%)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는 답변(36.5%)보다 훨씬 높았다.

이런 긍정적인 기능을 받아들인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당사자 간 대화일 경우, 다른 대화자의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하더라도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참고: 제3자가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불법으로 처벌하고, 이는 증거로도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당사자 간 녹음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사기, 직장 내 괴롭힘, 아동학대, 성폭력 등 입증이 어려운 범죄에선 통화를 통해 확보한 녹음자료가 증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 녹음을 금지하는 법안이 다시 발의된 이유는 뭘까. 윤 의원 등은 법안 발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통화 녹음이 협박 수단 등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방의 사생활 자유 또는 통신 비밀의 자유와 헌법에 보장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 침해 소지가 있다.” 

그럼 사생활을 중시하는 다른 나라는 어떨까. 캐나다·스페인·이탈리아·영국 등 대부분 국가에선 당사자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 녹음을 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역시 50개주 중 74.0%에 달하는 37개주에서 이를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참고: 프랑스·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는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 여론도 통화 녹음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8월 통화 녹음 금지법안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법안을 반대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64.1%에 달했다. ‘찬성’ 응답자는 23.6%에 그쳤다. 통화 녹음이 ‘공익 목적이나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보다 많은 셈이다.

누군가를 변호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는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는 순간에 ‘당사자 간 대화 녹음’이 얼마나 중요한 열쇠인지를 자주 경험한다. 일례로 아동학대 가해교사는 “그런 말(폭언 등)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아이의 녹음 파일에는 가해교사의 폭언과 막말이 녹음돼 있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 피해자가 겪은 피해 상황을 드러내거나, 반대로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가해자가 돼버린 피해자의 누명을 벗길 때에도 녹음 파일은 중요한 증거 역할을 한다. 

필자는 사적인 단둘의 대화일지라도 ‘내가 뱉은 말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몰래 녹음을 했더라도 자신의 말에 떳떳하다면 문제 될 게 없지 않을까.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녹음을 아예 막는 건 지나친 사생활 보호이자 누군가의 법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교사가 아동학대를 일삼는 ‘수업시간’을 교사의 사생활 보호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직장 내 괴롭힘의 일환인 ‘폭언의 순간’을 가해 근로자의 사생활 보호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당사자 간 대화 녹음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사진=게티이지뱅크]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당사자 간 대화 녹음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사진=게티이지뱅크]

물론 윤 의원의 법안 발의 취지처럼 당사자 간 대화 녹음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현존하는 규정으로 예방·처벌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통화 녹음으로 협박을 할 경우, 협박죄로 처벌할 수 있다.

통화 녹음 공개로 명예가 훼손됐다면 명예훼손으로 대응하는 게 가능하다. 대화를 녹음한다고 해서 모두가 이를 협박수단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악용 사례가 있다는 이유로 녹음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 

법조계엔 “피해자는 증거를 밝히려고 하고, 가해자는 증거를 인멸하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두 법익이 충돌할 땐 어느 한 법익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당사자 간 대화 녹음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선 ‘피해자’라는 법익과 ‘실체적 진실’이라는 법익이 ‘사생활 보호’란 법익보다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마땅하다.

글 =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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