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법 방치한 내부자들

2021년 10월 21일은 의미 있는 날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에 발의된 지 22년 만에 시행된 날이어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법이 시행됐음에도 스토킹 범죄에 시달리다 끝내 죽음으로 내몰리는 피해자가 끊이지 않아서다. 스토킹 처벌법에는 어떤 허점이 있는 걸까.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을 돌아봤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스토킹 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스토킹 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년 넘게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가 결국 스토킹 가해자에게 목숨을 잃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하 신당역 사건)’의 뼈아픈 내용이다. 지난해 ‘스토킹 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지만 또 한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지 못한 셈이다.

어느덧 사건이 발생(9월 14일)한 지 한달이 훌쩍 지났고, 그사이 스토킹 처벌법은 시행 1년(10월 21일)을 맞았다. 지금이야말로 스토킹 처벌법이 ‘피해자 보호’라는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999년 처음 국회에 발의된 스토킹 처벌법은 시행까지 2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법 시행 이후 ‘스토킹’은 단순한 애정 문제가 아닌 엄연한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부쩍 증가한 스토킹 신고 건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올해 8월까지 경찰에 접수된 스토킹범죄 신고 건수는 2만7234건에 달했다. 또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범죄(총 1만8806건·이하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중 스토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4266건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스토킹으로 인한 신변보호 통계가 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21일 이후 집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스토킹으로 고통받고, 신변에 위협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다.그렇다면 스토킹 신고 이후엔 어떤 조치가 이뤄질까. 피해자가 경찰에 스토킹을 신고하면 ‘응급조치→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 등 3단계의 절차가 진행된다.

응급조치는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서 취하는 ‘일회성 조치’다.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를 제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수사한다.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이 범죄로 발전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할 수 있다. 피해자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된다. 단, 긴급응급조치 기간은 1개월을 넘을 수 없다. 

잠정조치는 스토킹범죄 재범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긴급응급조치에 더해 가해자를 유치장·구치소에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기간이 한정돼 있다.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는 최대 2개월에 한해 가능하다. 가해자를 유치장·구치소에 유치하는 것도 최대 1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가해자가 접근하는 것을 막아세울 가장 확실한 방법이 유치장·구치소 유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실효성이다. 잠정조치라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잠정조치를 승인하는 법원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잠정조치는 경찰이 신청하고, 검찰이 청구한 다음 법원이 승인해야 이뤄진다.

그런데 경찰이 유치장·구치소 유치를 신청해도 최종적으로 법원이 기각하는 확률이 72%대에 달한다. 현장에서 스토킹범죄를 접한 경찰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가해자를 유치장·구치소에 유치해야 한다고 판단해 잠정조치를 신청하더라도 10건 중 7건은 법원이 거부한다는 거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가 어렵다.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언급했듯 스토킹범죄 신고 건수는 2만건을 훌쩍 넘지만 그중 구속영장이 신청된 건 1.3%(377건)에 불과하다. 이중 32.6%(123건)는 법원의 기각으로 불구속 조치됐다. 

이처럼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소극적으로 조치하다 보니, 신당역 사건과 같은 끔찍한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는 2년 넘게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를 위한 신변보호 조치는 단 한달에 불과했다.

경찰은 첫 스토킹범죄 신고를 받고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2차 신고 땐 영장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영장을 신청해도 또 기각될 것 같아서”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가해자는 얼마든지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끝내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 검찰, 법원, 누구 하나 떳떳할 수 없는 이유다. 

더 이상 신당역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법원이 더욱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스토킹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반드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권력을 활용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올해 국감이 마무리되는 대로 국회가 스토킹 처벌법을 다시 들여다볼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참고: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수 없는 규정을 의미한다.]

아울러 지난 4월 국회에 발의된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필자는 국회가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간 드러난 미비점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토대로 진정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법으로 개선해야 한다. 의지의 문제란 거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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