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감축법 두번째 이야기
확산하는 자국 우선주의 속
국내 기업 경쟁력 지키려면
정부 차원의 보호책 필요해

지난 8월 미국 정부가 공식 발효한 인플레 감축법이 전세계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 배타적 정책들에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문제는 이런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일본ㆍ유럽 등 주요 자동차 시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인플레 감축법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지형을 흔들고 있다.[사진=뉴시스]
인플레 감축법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지형을 흔들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국내외적으로 각종 난제가 줄을 잇고 있다. 국내에선 물가ㆍ금리ㆍ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3고高’ 위기 속에서 코로나19와 계절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Twindemic) 공포가 감돌고 있다. 국제적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공급망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불안정한 대내외 환경 탓에 국내 자동차 산업도 어느 때보다 혼란한 상황에 놓여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 이로 인한 신차 생산 지연으로 완성차 기업의 실적에 적신호가 켜져서다.

그나마 지난 8월 현대차ㆍ기아의 미국 판매량이 동월 기준 역대 최고치(13만5526대)를 찍으면서 기대치를 웃도는 결과를 냈지만, 업계에선 두 회사의 앞날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8월 17일 미국 정부가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ㆍInflation Reduction Actㆍ이하 인플레 감축법) 때문이다. 

인플레 감축법으로 아이오닉5ㆍEV6 등 현대차ㆍ기아의 전기차 모델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소비자 입장에선 기존 금액보다 최대 1000만원을 더 주고 현대차ㆍ기아의 전기차를 구입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인플레 감축법을 통해 배터리 산업에도 ‘홈 어드밴티지’를 적용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 때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의 광물을 일정 비율(2023년 40% →2027년 80%) 이상 사용해야 보조금 혜택을 주기로 한 거다. 배터리 외 다른 부품도 북미 지역에서 생산한 비율이 50%를 넘어야 한다. 

문제는 현대차ㆍ기아를 포함한 완성차기업들이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해 배터리와 부품을 만들고 있다는 건데, 미국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중국 의존도가 높은 완성차기업의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인플레 감축법을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속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국 우선주의’다. 향후 전기차 시장에서 자국 기업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신규 공장 유치→일자리 창출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중국산’은 배제하고, 다국적 기업들에는 ‘의무’를 강요하는 일종의 틀을 만들어낸 셈이다.  

주목할 건 이런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일본은 자국 기업이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지키기 위해 순수전기차가 아니더라도 외부에서 충전이 가능하기만 하면 해당 차종에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르노의 대표 전기차 모델 조에(ZOE)에서 볼 수 있듯, 자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경형ㆍ소형 전기차에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을 주고 있다.

전통의 자동차 강국 독일 역시 자국 시장에서 15%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ㆍ외부 충전이 가능한 하이브리드차) 모델에 보조금 등의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 지킬 묘안 

반면 우리나라는 지금껏 국산ㆍ외국산 구분 없이 공평하게 인센티브 정책을 시행해왔다. FTA에 기반한 수출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섣부른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되레 국제 사회에서의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재의 변화는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내 자동차 업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자국 우선주의란 장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제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FTA에 근간을 둔 호혜주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실익이 되는 ‘실용적’ 대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전기차의 경우, 국산ㆍ외국산 구분 없이 비교적 공평하게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유지하되, 국산 전기차에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행거리ㆍ충전시간 등의 기본 성능에 더해 충전 환경ㆍ정비서비스와 같은 인프라 영역을 포함해 인센티브 등급을 설정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이 자국 우선주의란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선 정부의 보호책이 필요하다.[사진=테슬라 제공]
우리 기업이 자국 우선주의란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선 정부의 보호책이 필요하다.[사진=테슬라 제공]

예를 들어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400㎞ 안팎, 가격은 4590만원으로 스펙이 비슷한 국산ㆍ외국산 전기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올해 서울시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적용하면 이들 차종에는 총 900만원(국고보조금 700만원ㆍ지방비보조금 200만원)의 구매 보조금이 제공된다. 

여기에 ‘충전기 의무설치’를 별도의 인센티브의 기준으로 적용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 국내 완성차기업인 현대차는 이미 다목적 충전시설인 이피트(E-Pit)를 구축했기 때문에 추가 보조금을 확보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현대차 입장에선 충전 인프라를 확장하는 것만으로 동급 차종을 보유한 해외 브랜드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우위에 서는 동시에 소비자 편의성을 제고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언급했듯 세계 각국이 자동차 시장의 문턱을 속속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다시금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부터 확고히 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과 보호책이 필요한 이유다. 배타주의로 무장한 ‘경제적 마초이즘(machoism)’의 시대, 정부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겁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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