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우표 NFT 발행했지만
판매 기능 없어 한계 명확해

정부가 우표 원화 NFT를 비매품으로 공개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정부가 우표 원화 NFT를 비매품으로 공개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 9월 22일, 우정사업본부가 국내 최초로 우표를 소스로 만든 ‘우표 원화 NFT’를 선보였습니다. 아날로그의 상징과도 같은 우표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됐다는 점, 갈수록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우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란 점에서 이번 NFT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 그런데, ‘우표 원화 NFT’는 어딘가 이상합니다. 상품성이 충분한데도 구매할 수가 없습니다. 우정사업본부가 애초에 ‘전시’를 목적으로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표 원화 NFT’는 비매품非賣品인 셈입니다.

# 문제는 ‘팔 수 없는 NFT’로 우표의 새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입니다. NFT가 업계를 막론하고 인기를 끄는 건 소유권 입증이 불가능해 판매 행위가 불가능했던 디지털자산을 판매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표 원화 NFT’를 비매품으로 만든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최초 우표 NFT’의 명암을 들여다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우표를 사용해본 게 언제쯤인가요? 아마 기억이 까마득할 겁니다. 우표는 편지를 보낼 때 우편 요금을 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증표’인데, 요즘 현대인에겐 익숙지 않은 물건입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편지 자체를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전화는 물론 이메일·SNS·메신저 등 즉시 상대방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든지 있으까요.

우체국의 등기 시스템이 바뀐 것도 사람들이 우표와 멀어지는 데 일조했습니다. 예전엔 등기를 보내려면 우체국에 가야 했지만, 2016년 ‘선납등기라벨’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이런 불편함이 해소됐고, 당연히 우표를 사용할 일도 줄어들었습니다.[※참고: 선납등기라벨은 미리 사둔 라벨을 붙인 다음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등기를 보낼 수 있는 제도입니다.]

통계에서도 이런 우표의 현주소가 잘 드러납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2017년 2억4237만통이었던 등기 물량은 지난해 3억3219만통으로 37.0% 증가했습니다. 반면 2016년 연평균 75.3통이었던 1인당 우편 이용량은 해마다 감소해 2021년엔 연평균 57.2통을 기록했습니다. 5년 새 4분의 1이 줄어든 셈이니, 우표 사용량도 그만큼 감소했을 겁니다.

이 현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우표에는 우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붙이는 ‘일반우표’와 의미 있는 행사 등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하는 ‘기념우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념우표로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기념해 만든 ‘제20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를 꼽을 수 있겠네요. ‘기념해야 하는’ 것만 기념우표에 담는 건 아닙니다. 2019년엔 라이언·어피치 등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담은 기념우표가 발행되기도 했죠.

문제는 일반우표와 기념우표의 판매량이 동시에 줄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8년 4490만장이 판매됐던 일반우표는 지난해 1620만장으로 판매량이 급감했습니다. 일반우표만큼은 아니지만, 기념우표 판매금액도 2011년엔 81억900만원에서 지난 2021년 55억5400만원으로 10년 새 31.5% 줄었습니다. 사람들이 편지를 쓰지 않으니 일반우표 사용량이 감소한 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수집이 목적인 기념우표 판매량마저 줄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세대가 바뀌면서 우표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주요 소비계층이자 온라인 문화에 친숙한 MZ세대는 우표를 쓸 일도, 우표에 흥미를 가질 이유도 없다. 일반우표는 물론이고 기념우표도 판매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교수의 말대로라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우표를 찾지 않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젠 추억으로 밀려난 호출기 ‘삐삐’가 그랬던 것처럼 우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죠.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지 정부에서도 우표의 활로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우정사업본부는 매년 ‘대한민국 우표전시회’를 열고 새로 나온 기념우표나 국내외 희귀한 우표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우표 알리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소풍을 테마로 삼은 ‘2022년 대한민국 우표 전시회’를 지난 9월 22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열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선 길거리 음식인 달고나와 씨앗호떡을 소재로 만든 기념우표 2종을 64만장 발행했고, 소풍을 주제로 제작한 그림엽서 2종도 5만4000장 발행했습니다.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은 “이번 우표전시회를 통해 우표가 우표 수집 같은 취미활동을 넘어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수단이 되길 바란다”며 전시회 취지를 밝히기도 했죠.

흥미로운 건 올해엔 우정사업본부가 국내 최초로 우표에 NFT(대체불가능한 토큰·Non Fungible Token)를 접목하는 ‘색다른 시도’를 추진했다는 점입니다. 총 24종의 우표를 활용해 이른바 ‘우표 원화 NFT’를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게 ‘책가도’입니다. 책가도는 조선후기 화가 이형록의 동명 그림을 본떠 만든 우표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를 오밀조밀한 3D 디자인으로 재해석해 22초 길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한 다음에 NFT를 적용했습니다.

이외에도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우표 속 등대가 AR 속에서 세워지게 하거나(팔미도등대), 우표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앙부일구 등). 이를테면 우표 속에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작품을 넣어 NFT를 적용한 셈입니다.

[※참고: NFT는 블록체인 기술로 만든 디지털 인증서로, 디지털 사진·게임 아이템·캐릭터 등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NFT마다 고윳값을 갖고 있어 거래 내역을 위변조하거나 해킹하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NFT의 파급력은 거래 과정에서 형성되는 커뮤니티에서 나온다.[사진=뉴시스]
NFT의 파급력은 거래 과정에서 형성되는 커뮤니티에서 나온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이 NFT는 일반 NFT와 조금 다릅니다. 열람만 할 수 있을 뿐 구매는 불가능합니다. 우정사업본부가 공식적으로 NFT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살 수도 없는 NFT를 왜 만든 걸까요?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국우편사업진흥원 관계자는 “애당초 전시가 목적이었으므로 따로 판매를 염두에 두고 NFT를 제작하지 않았다”면서 “아직은 판매 계획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10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만을 위해 우표 원화 NFT를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혹자는 “전시를 목적으로 NFT를 만든 게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잊힌 우리의 우표를 NFT로 재탄생시켜 대중에게 알리는 것 자체가 뜻깊은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매가 불가능한 NFT는 파급력이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표를 NFT화한다고 해서 저절로 홍보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운철 한국NFT콘텐츠 협회 위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NFT의 파급력은 커뮤니티에서 나온다. NFT를 사고팔면서 소비자들이 소통하고 모임을 만들면서 소문이 확산하고 해당 NFT의 값어치와 인지도가 올라가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점에서 구매할 수 없는 NFT는 그저 디지털 파일에 디지털 소유권을 덧댄 것에 불과하다. 그 자체론 별 의미가 없다.” 우표 원화 NFT를 만든 목적이 우표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만큼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해외의 사례를 찾아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미국·스위스 등 국가들은 판매를 목표로 우표에 NFT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미 연방우체국(USPS)은 남미의 명절인 ‘망자의 날’을 기념해 해골 디자인의 디지털 우표를 6달러(8454원)에 발행했습니다. 반응이 괜찮았는지 올해 1월엔 새해를 기념하는 ‘루나 뉴 이어(Lunar new year)’란 이름의 디지털 우편 3종(6달러)을 NFT로 발행했죠.

스위스 우정국도 지난해 11월 ‘스위스 크립토 우표(Swiss crypto stamp)’를 발행했습니다. 이 우표는 일반 우표와 기능이 동일하지만, 여기에 NFT를 더해 수집가치를 높인 상품입니다. 우표 표면에 인쇄된 QR 코드를 활용하면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 우정국은 이 우표를 13개 디자인으로 제작해 총 17만5000장을 한정 발매했습니다. 가격은 9스위스프랑(1만2000원)으로 우표치곤 비싼 값을 책정했지만,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 덕분에 스위스 크립토 우표는 금세 완판됐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지난 8월엔 새로운 10가지 디자인으로 25만장을 한정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의 NFT 우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한국 기념우표는 발행날만 되면 우체국 앞에 긴 줄이 설 정도로 꽤 인기가 많습니다. 2020년 우정사업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4만장씩 20여차례 발행된 기념우표의 98%가 모두 판매됐다고 합니다. 그만큼 기념우표가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이 충분하단 얘깁니다.

그렇다면 한국도 NFT로 우표를 디지털화해 판매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배 소장은 “우표는 증표로서의 기능보다는 수집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우표의 매출을 늘리려면 구매자가 수집욕을 불태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NFT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NFT가 디지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문화에 친숙한 구매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NFT는 우표의 명맥을 잇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한때 국민의 파발마擺撥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우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집품의 가치도 빛이 바래는 듯합니다. 이런 현상은 해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들은 NFT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새 활로를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정사업본부가 국내 최초로 만든 ‘우표 원화 NFT’를 ‘비매품非賣品’으로 결정한 건 아쉽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과연 한국의 우표는 NFT를 발판으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아직은 지켜볼 일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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