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투자 빛과 그림자

음악 저작권‧미술품 조각투자‧NFT‧증권형 토큰 등 디지털 투자자산을 향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음악 저작권‧미술품 조각투자‧NFT‧증권형 토큰 등 디지털 투자자산을 향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이색적인 대체투자쯤으로 여겨지던 ‘디지털 투자자산’이 시장에서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음원, 미술품, 명품 등에 투자하는 조각투자, 원자재ㆍ기계장비를 비롯한 실물자산을 토큰화한 STO(증권형토큰공개ㆍSecurity Token Offering), NFT(대체불가능한 토큰ㆍNon Fungible Token) 등이 핵심이다.

# 문제는 디지털 투자자산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투자업체는 자본시장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증권의 성질(증권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논리가 관행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 하지만 금융당국이 지난 4월 음원투자업체 뮤직카우의 ‘증권성’을 인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증권성을 인정받으면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고, 투자상품을 발행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 디지털 투자자산업체들이 자본시장법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길은 간단하다. 증권성이 없다면 그걸 입증하고, 증권성이 있다면 규제 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몇몇 업체들은 법이 정한 길을 외면한 채 ‘혁신금융’이란 도피처를 선택했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최대 5년 6개월간 법적 규제를 피할 수 있어서다. 

# 이래도 괜찮은 걸까. 디지털 투자자산시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은밀한 시장에 펜을 집어넣었다.

규제 밖에 있는 조각투자업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규제 밖에 있는 조각투자업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20대 직장인 지민(가명ㆍ26)씨는 사회초년생이던 지난해 음원 투자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킨 음원에 투자한 게 맞아떨어졌다. 적금에 넣어뒀던 돈을 꺼내 투자금으로 활용했는데, 비교적 낯선 영역인 음원을 선택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주식투자 열풍이 거세게 불었지만 투자에 문외한이었던 지민씨에겐 딴세상 얘기 같았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은 위험하고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투자 자체가 꺼려졌다. 

그러던 중 사적 모임에서 음원 투자 이야기를 들었는데, 쉽고 수익률이 높다는 점에서 마음이 끌렸다. 지민씨는 지난해 2월 역주행으로 인기를 얻은 댄스곡의 저작권(저작료 청구권) 2주를 주당 20만원에 매입했다. 별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생각과 달랐다. 음원 가격은 뜻밖에도 가파르게 올랐고, 9월엔 주당 130만원을 웃돌았다.

김씨가 저작권을 판매한 시점은 9월 중순으로 주당 가격은 101만7000원이었다. 6개월 만에 408.5%의 수익을 올렸고, 투자금 40만원은 203만4000원으로 불어났다. 속된 말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었다.  

지민씨는 요즘도 저작권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전과 같은 대박은 터지지 않았지만 그는 투자를 계속할 생각이다. 주식이나 펀드처럼 복잡하지 않은 데다, 좋아하는 음악에 투자하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투자가 필수인 시대다. 3고高(고물가ㆍ고금리ㆍ고환율) 국면에서 투자시장이 위축되긴 했지만 수개월 전만 해도 시장은 ‘패닉 바잉(공황구매ㆍpanic buying)’ 현상에 몸살을 앓기도 했다.[※참고: 패닉 바잉은 최대한 물량을 확보하려는 심리의 영향으로 가격에 상관없이 매점매석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당연히 투자처도 몰라보게 다양해졌다. 전통적인 투자 대상인 주식과 채권·펀드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이 또다른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상자산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투자자산도 명함을 내밀었다. 조각투자, STO(증권형토큰공개ㆍSecurity Token Offering), NFT(대체불가능한 토큰ㆍNon Fungible Token) 등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투자자산의 종류 = 그럼 이들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NFT는 블록체인 기술로 만든 일종의 디지털 인증서다. 디지털 사진, 영상, 캐릭터, 게임아이템 같은 디지털 파일을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방식이어서 이론적으론 위조ㆍ변조ㆍ해킹이 불가능하다. NFT마다 고윳값을 갖고 있어 다른 NFT로 대체할 수도 없다. 이 때문인지 NFT는 투자처로서의 가치가 부쩍 높아졌다.  

STO는 조금 더 복잡하다. 채권·부동산·원자재·기계장비 등 다양한 자산을 토큰화한 증권으로 발행한 게 STO다. 가상화폐인 ‘코인’을 발행하는 ICO(가상자산공개ㆍInitial Coin Offering)와 비슷한 개념인데, 차이점은 ‘실물자산’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했다는 것이다. STO를 ‘증권형토큰공개’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STO가 대중화하려면 아직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국내에선 지난 4월 유선통신업체 세종텔레콤이 부산 블록체인 국제자유특구에서 부동산 수익증권을 쪼개서 토큰화한 상품이 유일하다.

[※참고: 부산 블록체인 국제자유특구는 블록체인을 접목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국제자유특구다. 부산시 17개 지역을 포함한다. 세종텔레콤은 부동산 간접투자 서비스 비브릭(BBRIC)을 통해 부산시 초량동의 빌딩을 STO 방식으로 판매했다.] 

조각투자는 디지털 투자자산 가운데 가장 대중화에 성공한 투자처다. 음원 저작권·미술품·명품·슈퍼카·가축 등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수익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미술품이나 명품의 소유권을 수백에서 수천 조각으로 나눈 뒤 투자자에게 판매한다. 투자자는 미술품이나 명품을 재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익을 수익으로 삼는다. 

조각투자 업계 관계자는 “조각투자는 미술품이나 명품 등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투자처를 대중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20~30대를 중심으로 아트테크 열풍이 불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조각투자 증권성 논란 = 다양한 디지털 투자자산 중 최근 시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조각투자다. 발단은 음악 저작권(음악 저작료 참여 청구권) 투자업체 뮤직카우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뮤직카우가 판매하는 음악 저작권에 ‘증권성證券性’이 있다고 판단했다. 뮤직카우가 발행한 음악 저작권이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규정한 거다. 

증권성이란 ‘증권’이란 용어에 ‘성질’을 뜻하는 ‘성性’을 붙인 거다. 한마디로 증권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적절하지 않은 표현 방식이지만, 현재 쓰고 있는 용어여서 차용했다. 어쨌거나 디지털 투자자산에 ‘증권성이 있다’는 건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증권성’이 인정된 뮤직카우의 예를 들어보자. 통신판매사업자였던 뮤직카우가 음원 저작권을 발행·유통하려면 ▲증권신고서 제출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 등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따라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금융당국의 인허가(투자중개업 또는 집합투자업 등)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뮤직카우가 함께하고 있는 ‘음원 저작권’의 발행과 유통 과정을 분리해야 한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발행은 증권사만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참고: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8일 뮤직카우를 혁신금융서비스 업체로 지정했다. 이를 통해 뮤직카우는 ‘증권성 문제’에서 당분간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금융위가 지난 4월 ‘증권성 논란(자본시장법 관련)’을 일으킨 뮤직카우를 제재하는 대신 사업개편·투자자보호 조치 강화 등을 이행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10월 중 뮤직카우의 이행 결과를 보고받은 후 제재 여부를 최종 판단할 예정이다. 이와 무관하게 혁신금융서비스 문제는 중요한 논제여서 뒷부분에 별도로 설명했다.] 

■다른 플랫폼은 괜찮나 = 뮤직카우를 둘러싼 ‘증권성’ 논란은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미술품·가축 등 조각투자업체에도 불똥이 튀었기 때문이다. 몇몇 업체는 ‘우리는 음원과 달리 증권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홍기훈 홍익대(경영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조각투자 업체들은 민법상 소유권을 쪼개서 팔기 때문에 증권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럴듯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 주장이 인정되려면 투자자가 조각투자한 대상을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각투자는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 조각투자를 매각 차익을 얻기 위해 발행한 증권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조각투자업체 중 공식 경로를 통해 반론을 펼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4월 금융위는 “조각투자업체가 금융당국에 관련 자료를 내면 투자상품의 증권성 여부를 판단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자료를 제출한 조각투자 플랫폼은 한곳도 없었다. 

■규제와 혁신금융서비스 = 문제는 지금부터다. ‘금융당국에 문의’란 절차를 외면한 조각투자업체들이 ‘혁신금융서비스’란 우회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아트앤가이드(미술품 조각투자)를 시작으로 뱅카우(한우 투자ㆍ7월), 아트투게더(미술품 조각투자ㆍ8월), 테사(미술품 조각투자ㆍ8월) 등이 혁신금융서비스를 줄줄이 신청했다. 조각투자업체들은 “혁신을 꾀하고 시장을 더 넓히기 위해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시장 안팎에선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시장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금융위가 이들의 서비스를 혁신금융으로 지정하면 최대 4년(2년+2년)간 관련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쉽게 말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조각투자업체는 그 기간만큼은 상품의 유통뿐만 아니라 발행도 할 수 있는 셈이다. 빡빡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혁신금융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참고: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이 지난 3월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일부 조건을 충족하는 혁신금융서비스의 특례 기간이 기존 4년에 최대 5년 6개월로 1년 6개월 길어졌다.]

문제는 조각투자업체들이 신청한 건을 곧이곧대로 받아주느냐다. 금융위의 태도를 감안하면, 가능성은 반반이다. 금융위는 지난 4월 발표한 ‘조각투자 등 신종 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법령상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면 금융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조각투자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 만큼 혁신성 등의 요건을 더 엄격하게 볼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동일한 사업자가 조각투자상품의 발행과 유통을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따져봐야 할 게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또다른 의문이 생긴다. “혁신서비스를 신청한 조각투자업체들이 금융위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업체들은 증권 발행 업무를 포기하고 유통에만 전념할까” 등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조각투자 증권의 유통만으로는 큰 수익을 남길 수 없다. 조각투자 업체들이 발행 업무를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디지털 투자자산은 불과 몇년 사이 투자시장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그만큼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부작용도 숱하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건 단적인 사례다. ‘혁신금융서비스’가 도피처가 돼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지금이 디지털 투자자산이 맞이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일지 모른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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