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윤호 변호사의 記錄
22년 만에 스토킹처벌법 시행
‘스토킹은 범죄’ 인식 자리 잡아야

헤어진 여자친구가 연락을 받지 않자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수차례 눌렀다. 단순한 사랑 싸움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명백한 ‘범죄’다.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토킹 행위를 그동안 ‘그저 남녀 간의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적 처벌 규정이 미미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지난 10월 21일 ‘스토킹 처벌법’이 22년 만에 시행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토킹을 범죄가 아닌 ‘사랑싸움’으로 치부하는 그릇된 인식이 강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동안 스토킹을 범죄가 아닌 ‘사랑싸움’으로 치부하는 그릇된 인식이 강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헤어진 연인에게 집착하는 사람, 연예인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극성팬….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토킹’의 모습이다. 그동안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경범죄’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가해자에게 10만원 미만의 범칙금만 부과되고 나면 ‘끝’이었다. 

처벌 규정이 미미하다 보니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국회 행정안전위 박완수 의원실(국민의힘)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112신고 건수는 4515건에 달했지만, 그중 처벌 건수는 488건(통고처분 338건ㆍ즉결심판 150건)에 그쳤다. 전체 신고의 89.2 %(4027건)는 대부분 현장에서 사건 종결됐다. ‘솜방망이(경범죄) 처벌’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문제는 스토킹이 단순한 집착이나 괴롭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발생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가 만나주지 않자, 집 주소를 알아내 찾아갔다. 퀵 서비스 기사로 속여 집에 침입했고 결국 피해자와 어머니, 여동생까지 세 모녀를 살해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스토킹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토킹을 범죄로 인식하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 처음 국회에 발의된 건 1999년이다. 하지만 끔찍한 사건이 반복되고 나선 후인 올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다. 법안 발의부터 시행까지 무려 22년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면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스토킹 행위’는 무엇일까. 먼저 스토킹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막아서는 행위 ▲주거ㆍ직장ㆍ학교 그 밖의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하 주거 등) 또는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ㆍ전화ㆍ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ㆍ글ㆍ말ㆍ부호ㆍ음향ㆍ그림ㆍ영상ㆍ화상을 보내는 행위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물건을 보내거나 주거 등이나 부근에 물건을 두는 행위 ▲주거 등이나 부근에 놓인 물건을 훼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같은 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경우 ‘스토킹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 제18조에 의거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장치도 마련됐다. 피해자 보호조치는 구체적으로 ‘응급조치’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로 구분된다.

1단계에 해당하는 응급조치는 스토킹 신고 후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후 즉시 이뤄진다. 경찰은 스토킹 행위를 제지, 경고해야 한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한 후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피해자를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에 보호해야 한다. 2단계인 긴급응급조치는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가 반복될 우려가 큰 경우 피해자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망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하도록 한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발의된 지 22년 만에 지난 10월 21일 시행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발의된 지 22년 만에 지난 10월 21일 시행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으로 잠정조치란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 피해자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가 이뤄진다. 여기에 더해 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할 수 있다. 만일 스토킹 가해자가 접근금지 조치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스토킹처벌법 제20조).  

스토킹처벌법의 시행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시행 첫 주에만 451건에 달하는 스토킹 신고가 접수됐다. 전년 동기 대비 5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됐던 ‘스토킹 행위’에도 적극적인 신고가 이뤄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일

례로 전북 전주에선 전 여자친구의 집 초인종을 수차례 누른 2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된 첫 사례였다. 서울에선 헤어진 연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발로 차고 수차례 일방적으로 연락한 60대 남성이 검거됐다. 

스토킹 가해자가 구속되는 첫 사례는 경기도 안성에서 나왔다. 해당 가해자는 같은 직장에 다녔던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변 비관 문자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또 자신을 피하기 위해 직장을 옮긴 피해자를 찾아가 기다리는 행위도 반복했다. 경찰은 가해자의 행위가 스토킹 처벌법상 처벌의 핵심 요건인 ‘지속성’과 ‘반복성’을 충족한다고 보고 피해자를 구속했다.

반면 여전히 ‘현장의 미흡함’을 보여준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지난 19일 전 연인이었던 가해자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당해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 A씨가 가해자의 흉기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앞서 7일 가해자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고 있다는 취지로 경찰에 신고해 신변 보호를 받던 중이었다.

A씨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경찰에 구조 신고를 했지만 부정확한 위치가 전달돼 혼선을 빚었고, 그사이 범행이 이뤄졌다. 법이 마련됐어도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종이 위의 법’으로 그치고 만다. 

필자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만큼 스토킹 행위가 더 이상 남녀 간의 ‘사랑싸움’이 아닌 범죄라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스토킹처벌법이 피해자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글=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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