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이언트스텝 그 후…
12월 혹한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

미 연준의 네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으로 한국은행의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사진=뉴시스]
미 연준의 네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으로 한국은행의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사진=뉴시스]

# 짧고 좁은 메시지

지금으로부터 80여일 전인 2022년 8월 25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라엘 브레이너드 부의장, 연준 이사 6명을 비롯 12개 지역의 미 연방은행 총재들이 와이오밍주州의 휴양지 ‘잭슨홀(Jackson Hole)’에 모여들었다. 미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이 매년 개최하는 경제정책 심포지엄, 이른바 ‘잭슨홀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탓에 2년여 만에 열린 대면 행사. 이 엄중한 자리에 파월이 섰다. “연설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Thank you for the opportunity to speak here today).”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고 무거웠다. “오늘 내 연설은 짧고 초점은 좁을 것이다. 메시지는 좀 더 직접적일 것이다(Today, my remarks will be shorter, my focus narrower, and my message more direct).”

# 고통과 더 큰 고통 

총 1301개 낱말로 기록된 연설문. 파월은 여기에 소프트랜딩(연착륙·Soft Landing)이란 단어를 넣지 않았다. 되레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면 그로스 리세션(Growth Recession)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밝혔다. 달라진 목소리만큼이나 차고 무거운 메시지였다.

“높은 금리와 낮은 성장률, 약해진 노동시장이 이끄는 인플레이션 하락 국면은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치러야 하는 불행한 대가다. 하지만 물가 안정에 실패한다는 건 더 큰 고통을 의미한다.”

그로스 리세션은 성장(growth)과 불황(recession)을 합친 말이다. 불황은 아니지만 성장률이 꺾이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그로스 리세션의 다음 단계를 통상 침체로 본다. 파월이 인플레이션 국면을 심상치 않게 해석했다는 얘기다.  

# 스텝 바이 스텝 

파월은 당시 절망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미 연준이 6월과 7월 각각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8%대를 맴돌았다. 2%대를 물가안정수치로 내걸었던 파월로선 당황스러운 상승률이었을 거다. 더구나 중국 봉쇄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만한 외적 변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파월은 ‘잭슨홀 미팅’ 후 한달여 만에 열린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시 자이언트스텝을 선택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연착륙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The chances of a soft landing are likely to diminish).” 사실상 그로스 리세션을 시사한 말이었다. 파월의 눈엔 고통을 감내해야 할 시간이 임박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 12월의 불확실성  

그렇게 다시 열린 11월 FOMC. 파월은 또한번 자이언트스텝을 밟았고, 미국의 기준금리는 4.00%(상단 기준)가 됐다. 연준이 세차례(6·7·9월)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한 게 사상 처음이었으니, 네차례도 당연히 최초다. 

파월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간단하다. 물가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어서다. 7월 8.5%(이하 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월(8.3%)과 9월(8.2%)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3개월 연속 8%대란 기록을 남겼다. 

더 충격적인 건 미국의 9월 근원 CPI가 6.6% 올랐다는 점이었다. 1982년 8월(7.1%)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였다.[※참고: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현행 소비자물가에서 농산물(곡물 외)·석유류를 제외하고 산출한 물가지수다. 식료품·에너지 가격 등 중앙은행에서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를 배제한 지수이기 때문에 근원 CPI가 올랐다는 건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는 의미다.]  

# 악순환의 고리   

파월이 쏘아 올린 공은 이제 한국으로 넘어왔다. 연준의 이번 스텝으로 한미 금리차는 1%포인트(한국 기준금리 3.00%)로 벌어졌다. 오는 11월 24일 한은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이상을 단행하면 그 격차가 최소 0.5%포인트로 좁혀지지만 관건은 12월이다.

미 FOMC는 12월 15일(한국시간) 한번 더 열리는 반면, 한은 금통위는 11월이 끝이다. 12월 연준이 어떤 스텝을 밟든 금리차를 좁힐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12월에 몰려올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하는 까닭이다.[※참고: 한미 금리 결정과 금리격차]. 

문제는 12월의 함의다. 한해의 문을 닫는 12월은 헤지펀드·기관투자자 등 큰손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시기다. 한미 금리차가 큰손의 마음을 흔들면 우리로선 ‘(외국인) 자본 유출→원·달러 환율 상승→수입물가 상승→고물가 압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걸려들 공산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가 전쟁 욕구를 꺾지 않고, OPEC+가 ‘원유 감산 플랜’을 접지 않는다면 말로만 나돌던 복합위기가 눈앞까지 다가올 수 있다.

# 낙관론과 위험의 늪   

친親시장주의자들은 “외국인 자본 유출은 부도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만 나타난다” “연준이 2023년 피벗(Pivot·금리정책 전환)을 준비하고 있어 별문제 없다” 등의 이유를 내걸면서 낙관론을 펼친다. 

하지만 낙관론과 비관론 중 어떤 게 맞아떨어질지는 알 수 없다. 경제는 ‘불가측不可測(짐작 못 함)’의 영역이다. 언제 어떤 변수가 출몰해 시장의 꼬리를 흔들지 모른다. 경제주체는 충동적이고, 그런 충동이 득실대는 시장은 종종 ‘위험의 늪’으로 질주한다.  

이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할 땐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비상 플랜을 짜는 게 순리다. 지금이 그럴 때다. 낙관론에 기댄 채 ‘겨울 준비’를 소홀히 했다간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럼 우린 12월 혹한 뒤에 찾아올 봄을 맞을 자격마저 상실한다. 

# 봄 준비법   

부지런한 농부는 12월이 오면 볏단을 잘게 잘라 논에 뿌린 뒤 땅을 갈아엎는다. 볏단이 부식하면서 발생한 미생물이 지친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서다. 자연에 순응해 생존해 온 그들만의 ‘봄 준비법’이다. 어느 때보다 매서울 12월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겐 부지런한 농부가 있을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현장=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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