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새로운 과제

현대차그룹 노사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무분규로 타결했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그룹 노사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무분규로 타결했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마쳤다. 현대차는 4년, 기아는 2년 연속 ‘파업 없는’ 임단협 타결이다. 그렇다고 두 회사가 ‘노조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졌다곤 할 수 없다. 1년마다 돌아오는 임단협에서 또다른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현대차그룹이 때만 되면 불거지는 노사 갈등을 방지하려면 노사 문화와 임단협의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자동차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터져 나온 숱한 경제적 변수의 한복판에 있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가 초래한 부품 수급난, 치솟는 물가와 금리로 인해 수직상승한 생산비용은 완성차기업들이 미래를 고민하게 만드는 위협으로 작용했다.

국내 대표 완성차기업인 현대차ㆍ기아 역시 글로벌 복합위기의 출발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두 회사의 실적이 위태로운 업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올 3분기 현대차ㆍ기아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102만5008대(현대차), 75만2104대(기아)로 지난해 3분기 대비 각각 14.0%, 9.9% 증가했다. 두 회사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년 전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팔았다는 뜻인데, 문제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 장사였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1조5520억원으로 1년 전(1조6070억원)보다 3.4% 감소했다. 기아의 사정은 현대차보다 더 심각하다. 올 3분기 기아는 76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전년 동기(1조3270억원) 대비 42.1%나 감소한 수치다. 

여기엔 오래 전부터 불거진 현대차그룹의 오리지널 엔진 ‘세타2 Gdi(이하 세타2)’의 안전 이슈가 반영돼 있다. 2015년부터 세타2 엔진을 장착한 차종에서 소음, 시동꺼짐, 화재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서 미국에선 현대차그룹을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벌였다. 

이후 지난해 10월 현대차그룹이 세타2 엔진을 평생 보증하는 데 합의하면서 올 3분기 총 3조4000억원(현대차 2조1000억원ㆍ기아 1조3000억원)의 충당금을 쌓았고, 이게 손실로 이어졌다.

[※참고: 기업이 한해 동안 쓸 돈에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지출 비용을 미리 책정해둔 것을 충당금이라고 한다. 충당금은 당해 연도 회계장부에선 손실금으로 잡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론 기업의 실적이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대차ㆍ기아는 “충당금을 미리 털어낸 덕에 4분기엔 호실적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하지만 미래란 영역에서 장담할 수 있는 건 없다. 무엇보다 완성차기업을 둘러싼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민간 소비가 줄고 있는 데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ㆍ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미국 시장 수출에도 장벽이 생겼다.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북미산 광물을 확보하는 일부터 미국 현지 공장의 유치까지 완성차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두개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동차 시장이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지금, 현대차ㆍ기아의 우선과제는 무엇일까. 혹자는 “IRA 완화ㆍ유예를 위한 필승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할 거다. 또다른 누군가는 “원재료ㆍ부품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모두 중요한 일이지만,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근본 문제가 있다. 바로 ‘조직 안정화’다.

현대차그룹은 연구ㆍ개발(R&D) 본부에 배터리개발센터를 신설하고 기존 파워트레인(동력생성장치) 개발팀을 전동화 부문에 배치하는 등 전기차를 중심에 놓고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차는 자회사 ‘포티투닷’을 통해 자율주행기술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포티투닷의 인력 대부분은 구글ㆍ네이버 등 기존 IT빅테크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무게추가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기업에서 하이테크 중심의 종합 모빌리티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풀어야 할 과제는 조직 쇄신만이 아니다. 노조와의 관계도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 일단 현대차ㆍ기아 모두 올해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타결하면서 급한 불은 껐다. 현대차는 4년 연속, 기아는 2년 연속 무분규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노조 리스크가 줄었다’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우선 현대차ㆍ기아 모두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진통이 적지 않았다. 현대차는 국내 전기차 공장 유치, 기아는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평생 신차 할인이 막판 협상 결렬의 원인이었다. 기업 고유의 경영방침을 침해하느냐(현대차), 근로자로서 혜택이냐 특권이냐(기아)를 두고 첨예한 공방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현대차는 국내 첫 전기차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기아는 평생 신차 할인 혜택을 축소하기로 했지만, 1년 주기로 벌어지는 임단협의 특성상 내년에는 또다른 노사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임단협 구조가 이어지는 한,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노조 리스크는 변수가 아닌 상수인 셈이다. 

신차를 구입한 소비자가 해당차를 인도받는 데까지 최소 1년이 걸리는 시대다. 한대의 자동차를 더 만들어도 모자란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는 ‘예견된’ 리스크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노사 문화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당해 임단협을 완료하지 못하면 다음해로 넘어가 1년에 두 번이나 임단협을 진행해야 하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 국내에선 노조가 파업을 한번 단행하면 정상적으로 자동차 생산을 할 기간이 반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해 2~ 3년에 한번씩 임단협을 진행하면서, 노조가 파업을 해도 물량 차질을 최소화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현장 파업에도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작업 현장은 전적으로 경영진의 범주 안에 놓여 있다. 노조는 작업 현장 대신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데, 이때 경영진에겐 빈 현장에 대체 인력을 투입할 자유가 주어진다. 

반면 국내에선 노조가 작업 현장을 점령하면 경영진은 속수무책으로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파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업의 손실은 커지고, 기업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상품 가격에 비용을 전가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마저 ‘파업의 빚’을 부담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과연 조직 혁신을 성공으로 이뤄낼 수 있을까.[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그룹은 과연 조직 혁신을 성공으로 이뤄낼 수 있을까.[사진=현대차 제공]

마지막으로 노조는 기업 고유의 경영권을 침해하기보다 연봉ㆍ작업 환경 등의 기본적인 근로 조건에 한해 협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지금까지는 국가별ㆍ지역별 자동차 생산 대수까지 노사 합의 사항으로 진행했는데, 이는 공급 유연성을 떨어뜨려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구조대로라면 노사는 국내 첫 전기차 공장 설립을 두고 ‘국내와 미국 물량 비율을 어느 정도로 둘지’ ‘국내와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각각 무엇인지’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갈등을 빚을 공산이 크다.

단체협약 규정상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노조의 과도한 권한은 발빠른 변화가 필요한 지금 상황에선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도 있다.[※참고: 현대차의 단협 41조 5항에선 ‘신차종 양산 시 생산량과 투입인력을 조합과 사전 협의해 결정하되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 차에 올라탈 수 있을까

글로벌 경제의 격변기, 자동차 산업의 과도기에서 현대차그룹이 문제없이 달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앞뒷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일단 앞바퀴(내연기관ㆍ하드웨어→전기차ㆍ하이테크)는 바꿔 달았지만, 이를 받쳐줄 뒷바퀴(노사문화 개선)까지 잘 갈아 끼워야 현대차그룹은 혁신에 성공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새 차를 타고 글로벌 경쟁에 나설 수 있을까.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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