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네가지 전략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두고 글로벌 시장이 떠들썩하다. 물가를 잡기 위한 법이라지만 철저히 미국 우선주의에 방점을 찍고 있어서다. 국내 자동차업계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 법을 적용하면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미국과 협상을 펼치고 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 라인에 필요한 협상 전략은 무엇일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여러모로 허점이 많다.[사진=뉴시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여러모로 허점이 많다.[사진=뉴시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ㆍInflation Reduction Act)은 지난 8월 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하원이 발의한 법안 제5376호에 서명하면서 탄생한 법이다. 말 그대로 물가를 잡기 위한 법이다. 

물가상승의 원인은 여러가지인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무래도 석유ㆍ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다. 특히 가파르게 오른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전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미국의 물가를 부추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유럽연합(EU)의 에너지 대란에서 기인한 유가ㆍ천연가스값의 상승이 미국의 물가상승으로 이어진 셈이다. 

물가상승의 또다른 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그동안 미국은 설비투자 비용을 줄여 연구ㆍ개발(R&D) 등 무형자산에 투자해왔다. 생산은 해외 아웃소싱으로 해결했다.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국 내에 생산설비가 많지 않은 탓에 공급난에 대처하기 힘들었던 미국은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재생에너지, 친환경 자동차, 건물에너지관리 등의 분야에서 세액공제를 확대하거나 보조금을 늘리겠다는 건 에너지 가격에 대응(화석연료 수요 억제)하기 위한 거다. 자국 내에 생산설비를 늘리겠다는 건 공급난에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이 두가지의 지향점은 물가잡기로 수렴한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특정 업종을 지원하는 게 자유무역협정(FTA) 체계 안에선 경쟁을 제한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U나 일본 등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반발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내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이 적지 않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미국은 친환경 자동차 생산 보조금을 늘린다. 다만, 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몇가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한 차량이어야 한다. 둘째, 배터리 부품(2029년까지 비중 100%)의 원산지가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 혹은 북미지역에서 재활용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미국이 특정하는 국가에서 생산한 부품을 사용할 경우 세액공제 적용을 금지(2024년 혹은 2025년부터)한다.  

이 세가지 조건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에서 조립해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최근 친환경 자동차로 미국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가던 현대차와 기아로선 악재임에 틀림없다.[※참고: 지난 1분기 현대차ㆍ기아의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9.0%로 테슬라(75.8%)에 이어 2위(CNBC 통계)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 이후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건 그래서다. 

미국도 한국이 인플레 감축법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한국이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중심엔 현대차가 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한 기간에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105억 달러(약 15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했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에게 “절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응답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약속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공수표가 됐다. WSJ은 “현대차 그룹이 투자 대비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전략이다. 뭘 준비해야 할까. 크게 4가지다. 무엇보다 인플레 감축법의 유예를 이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우리나라만을 위한 예외 규정이나 특례 조항을 넣어달라고 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반면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로 한정해 법 적용을 유예해달라고 하면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법안을 손질할 필요도 없고, 미국 정부도 수용할 수 있는 요구다. 

한미 FTA의 당위성을 주장할 필요도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북미 지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캐나다와 멕시코가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는 손에 꼽는다. EU도 일본도 FTA를 체결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FTA 체결국가다. 미국 주변의 FTA 국가는 포함하면서 한국을 제외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도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이 서명한 직후에 곧바로 법이 발효하는 건 관례적으로 비상시국에 한해서다.  바이든이 법안에 서명한 8월 16일 이전엔 보조금을 주다가 다음날인 17일부터 주지 않는 건 통상적이지 않다. 우리 정부가 지적해야 할 지점이다. 

IRA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캐나다‧멕시코를 보조금 지급 대상국에 넣었지만 한국은 제외했다.[사진=뉴시스]
IRA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캐나다‧멕시코를 보조금 지급 대상국에 넣었지만 한국은 제외했다.[사진=뉴시스]

마지막으로 배터리 생산국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야 한다. 인플레 감축법에 따르면 당장 내년부터 배터리 부품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의 것으로 채워야 한다. 현재 배터리 선도국은 한ㆍ중ㆍ일이지만, 인플레 감축법의 기준상으로 보면 한국의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ㆍ삼성SDIㆍSK온)가 배터리 공급을 책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현재 미국 내 10여개 이상의 자동차 제조사와 손을 잡고 있다. 국내 배터리 산업과 미국의 전기차 산업이 얽혀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미국이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설득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될 때 이를 반대하는 이들이 미국 내에서도 절반에 달했다. 그만큼 이 법이 설득력이 크지 않다는 거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이 아무리 강대국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지만, 그대로 끌려가선 곤란하다. 살펴본 것처럼 우리에게도 강대국을 움직일 수 있는 무기가 있어서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건 현명한 계획 수립과 냉철한 실행력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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