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시행
현대차·기아 전기차 보조금서 제외
하루빨리 미국 현지 생산 확대해야

지난 8월 17일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시행하면서 현대차ㆍ기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법의 시행으로 전기차 보조금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두 회사의 모델이 보조금 지원을 받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현대차와 기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17일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정식 발효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17일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정식 발효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국내 자동차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8월 1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ㆍInflation Reduction Actㆍ이하 인플레 감축법)’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다. 

인플레 감축법은 바이든 정부가 임기 초부터 추진해온 경제정책의 일환이다.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의료비 절감이란 세가지 국정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총 4330억 달러(약 562조원)를 투입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인플레 감축법엔 대규모 재정지출 계획뿐만 아니라 7400억 달러(약 971조원)에 달하는 재원 마련 방안도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방안은 대기업에 최소 15% 수준의 법인세를 물리고, 기업의 자사주 매입 시 1%의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등의 세수 확보 정책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플레 감축법과 국내 자동차 산업 사이엔 별다른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바이든 정부는 세수 확보를 이유로 인플레 감축법에 기존과 다른 방식의 전기차(EV) 보급 대책을 포함했는데, 이로 인해 국내 완성차기업인 현대차와 기아가 타격을 입게 됐다. 기존에는 모든 전기차를 대상으로 최대 7000달러까지 지급했던 보조금을 이제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하는 ‘미국산’ 전기차에만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플레 감축법이 정식 발효하면서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보조금 사각지대’로 빠져버렸다. 전기차를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던 두 기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셈이다. 

현대차ㆍ기아는 올 상반기(1~6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2위(9%)를 달리고 있다.[※참고: 1위는 시장점유율 75.8%를 기록한 테슬라다.] 지금처럼 보조금 혜택에서 배제되면 두 회사의 전기차 가격은 1000만원 정도 비싸져 판매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외교부)는 인플레 감축법이 발효된 즉시 미 국무부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의미 있는 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경제안보를 근거로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상황에서 교역 상대국의 안위를 고려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물론 보조금 중단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에 적용하는 ‘최혜국 대우’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WTO에 제소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2025년 미국 신공장 완공을 앞둔 현대차ㆍ기아로선 재판에만 최소 4~5년 걸리는 WTO 제소에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사실상 없어서다.

정부의 외교적 압력이 언제쯤 효과를 볼지 알 수 없고, 국제기구의 힘을 빌리기엔 시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현대차ㆍ기아는 어떻게 위기를 타개해야 할까. 현재로선 두 회사가 미국 현지 공장의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들어설 예정인 전기차 전용 공장의 완공을 2025년에서 2024년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앨라배마주 몽고메리공장에 전기차 생산라인을 구축해 올 연말부터 양산(제네시스 GV70)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미국 현지 생산물량을 확대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노조의 반발이다. 현대차의 노사 단체협약에는 ‘국내에서 생산 중인 차종의 해외 생산계획을 확정할 때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해 노사공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기아 역시 비슷한 단협 조항을 갖고 있다. 현대차ㆍ기아가 미국 내 생산을 늘리려면 국내 노조의 동의가 필요한 셈이다. 

그나마 지난 7월 노사 협상을 완료한 현대차의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내(울산)에도 새로운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미국 현지 생산에 관한 큰 틀에서의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수는 남아있다. 물량 배분 문제다. 현지 생산물량을 얼마나 배정하느냐에 따라 국내 공장의 물량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서 이 문제가 향후 노사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임금협상을 진행 중인 기아의 여건은 좋지 않다. 기아 노조는 고용 안정을 위해 미래차 공장 신설을 요구하면서 사측에 13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도 철회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현재 기아가 북미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모델 EV6와 니로 EV는 전량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노조와 대립각이 계속된다면 기아는 최악의 경우 미국 수출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인플레 감축법으로 어느 때보다 선제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에서 노사 갈등이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으로 현대차·기아의 모델은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사진=현대차 제공]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으로 현대차·기아의 모델은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사진=현대차 제공]

심각한 건 이번 미국의 사례처럼 제2ㆍ제3의 인플레 감축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이 동맹과 우방보다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실익을 챙기려는 경향이 짙어져서다. 인플레 감축법에 대응하는 현대차ㆍ기아의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경제질서 속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의 위기부터 극복해야 한다. 과연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의 순항을 이어갈 수 있을까.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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