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불씨 남긴 잠정 합의안 
숙련 노동자의 불편한 임금 
도마에 오른 산은 경영능력

# 지난 7월 22일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51일에 걸친 파업이 끝났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협의회와 고된 협의 끝에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면서다.  

# 그로부터 한달이 흐른 지금, 대우조선해양은 제자리를 찾았을까. 그렇지 않다. 회사 내부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하다. 파업의 불씨로 작용한 근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데다, 파업이 남긴 숙제도 숱해서다. 이런 가운데, 대우조선해양 경영진과 산업은행 수뇌부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더스쿠프(The SCOOP)가 숙련공 임금문제, 손해배상소송, 산은의 경영능력 등 풀지 못한 과제가 수두룩한 대우조선해양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은 한달 전에 끝났지만 파업이 남긴 숙제가 산적해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은 한달 전에 끝났지만 파업이 남긴 숙제가 산적해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폐업 하청업체 조합원의 고용을 보장하라.” 지난 18일 김형수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대우조선 하청노조) 지회장이 이렇게 주장하면서 국회 앞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협의회(협력사협의회)와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6월 2일부터 시작한 51일간의 파업을 끝낸 지 고작 28일 만이다. 

누군가는 ‘또다시 시작된 노조의 떼쓰기’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당초 노사 양측의 잠정 합의안에는 ▲4.5%(업체별 평균치) 임금 인상 ▲설·추석 각 50만원, 여름 휴가비 40만원 등 상여금 140만원 지급(2023년부터 적용) ▲고용기간 최소 1년 보장 ▲재하도급 금지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 최우선 고용 노력 등이 담겼다. 

그런데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사측이 이중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 최우선 고용 노력’을 합의안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참고: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의 고용 보장이란 파업 기간 중에 폐업을 했거나 폐업을 앞두고 있던 4개 협력업체에 속한 조합원의 고용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김춘백 대우조선 하청노조 사무장은 “협력사협의회 측은 자신들이 노력해도 잘 안 된다는 말만 할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서 “협력업체 중엔 고용을 유지하면서 조합원만 쏙 빼놓은 경우도 있는데, 의도적으로 합의안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은 끝났지만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대우조선해양의 풀지 못한 과제는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중요한 과제들을 짚어봤다.

■문제❶ 임금 원상복구 = 가장 대표적인 과제는 임금 문제다. 노사는 잠정 합의안을 통해 4.5% 임금인상안에 합의했다. “불황기에 줄어든 임금을 원상복구(2014년 수준으로 30% 인상)해 달라”고 주장했던 노조가 한발짝 물러선 결과였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가 사라진 건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조선업 불황기(2016~2020년) 거치면서 하청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2014년 대비 30%가량 줄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평균 임금은 약 9% 줄어드는 데 그쳤고, 임원들의 임금은 큰 변화가 없었다. 하청노동자들이 불황기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준 셈이다.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파업 종료 후 한달도 채 안 돼 다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파업 종료 후 한달도 채 안 돼 다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사진=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금의 원상복구를 주장하는 노조의 논리는 과하지 않다. 

더구나 20~30년차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숙련공)의 시급은 1만원 안팎이고, 월 실수령액은 2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참고: 여기서 임원 임금은 짚어볼 게 있다. 평균 연봉을 단순 비교하면 2021년 등기이사 평균 연봉(2억8900만원)은 2014년(4억6000만원)보다 37.2% 줄었다. 하지만 2014~2016년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이 분식회계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2014년 가장 많은 성과급을 받은 고재호 전 대표이사를 제외한 등기이사 평균 연봉은 2억4500만원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등기이사 평균 연봉이 되레 늘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관계자는 “공권력 투입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려다 보니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합의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 합의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문제는 대우조선 하청노조와 협력사협의회의 협상을 통해선 임금 이슈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주장대로 임금을 원상복구를 해주려면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기성금(공사대금)을 올려주는 결정을 해야 하는데,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산은으로선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21년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원·하청노동자는 2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원청 소속은 정규직 기준으로 8600여명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일감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번과 같은 파업이 또 발생한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주주인 산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양승훈 경남대(사회학) 교수는 “산은은 노사자율 교섭을 원칙으로 내걸고 자신들은 개입하지 않는다지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는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참고: 산은의 역할 문제는 세번째 섹션에서 자세하게 다뤘다.] 

■문제❷ 손해배상 이슈 = 손해배상 문제도 풀지 못한 과제 중 하나다.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이번 파업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원청)의 생산시설(도크)을 점거했다. 그곳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일터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도크는 대우조선해양의 재산이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남의 사업장을 점거한 셈이 됐던 거다.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쟁의 과정이 정당함에도 불법이란 딱지가 붙은 이유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조선 하청노조를 상대로 생산차질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배임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게 대우조선해양 측 입장이다.

[※참고: 대우조선해양이 당초 주장한 피해액은 약 8000억원이다. 올해 목표 매출액인 6조6000억원을 영업일로 나눠 일평균 매출액(259억원)을 잡고, 여기에 실제 도크 점거기간인 30일(6월 21일~7월 22일)을 곱한 값이다. 하지만 지난 19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손해배상청구액을 500억원으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구 대상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하청노조가 모든 시설을 점거한 게 아니어서 당초 금액을 피해액으로 주장하긴 힘들고, 여론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이 역시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감당하기엔 힘든 수준이다.]

 

중요한 건 이 소송이 실제로 진행된다면 또다른 문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가령, 소송에서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이긴다면 이는 법원이 ‘불법점거’를 인정해주는 셈이 된다. 반대로 대우조선해양이 이긴다면 대우조선 하청노조부터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되레 배임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다. 

변수는 또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법원이 대우조선해양의 소송 당사자로 노조가 아닌 협력업체들을 지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청노동자들이 협력업체 소속인 데다, 그 관리 책임 또한 협력업체에 있어서다.

맹점은 협력업체 대표들 중엔 대우조선해양 출신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대우조선해양의 손해로 귀결되고, 그 과정에서 노조 측과 또다른 갈등을 빚을 우려가 없지 않다.  

M&A와 노동문제 전문가인 송호연 ESOP 피에이지앤컨설팅 대표는 “배임의 측면에서 보면 대우조선해양의 주장에 명분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실리를 위해선 하청노조가 빠져나갈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소송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❸ 산은의 혁신과 매각 = 대우조선해양이 풀지 못한 과제는 또 있다. 경영 능력이다. 사실 기업 경영에는 많은 리스크가 존재하고,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된다. 리스크 관리가 곧 경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도 수많은 리스크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참고: 여기서 ‘관리’란 노조탄압이 아니라 협상과 조율을 통한 사전 개입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그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느냐다. 파업은 노조의 의지에 달렸지만, 이 파업이 51일까지 이어진 덴 원청을 넘어 산은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번 파업을 두고 산은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건 그래서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로 분리된 대우조선해양을 20년이 넘게 실질적으로 관리해온 게 산은이기 때문이다. 

사실 산은의 관리 능력이 도마에 오른 건 한두번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2016년 1조원 넘는 분식회계를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경영진들로부터 속았다며 자신도 피해자라는 논리를 폈다. 경영능력과 무관한 정치권의 낙하산 사외이사가 들어설 때는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산은 입장에선 ‘대우조선해양의 관리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의 몫’이라 주장할지 모른다. 문제는 산은이 틈날 때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해왔다는 점이다. 

산은 혁신 필요하지만…

양승훈 교수는 “산은은 ‘파업을 끝내지 않으면 청산을 고려하겠다’고 했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의사결정”이라면서 “그러면서 경영에 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에 리스크가 발생해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산은이 혁신을 담보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다. 

양 교수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지난 20년간 산은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다. 하지만 이를 통해 증명된 건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는 기업에 넘기는 게 최선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과연 산적해 있는 난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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