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필요한 내 아이 상담법
씻을 수 없는 상처 남긴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겪는 아이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또 발생했다. 꽃다운 청춘이 스러졌고, 유가족은 물론 전 국민이 충격과 고통에 빠졌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한달이 다 돼간다. 누군가는 고통에서 빠져나오고 있지만, 누군가는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들고 있다. 만약 내 아이가 이번 참사로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겪고 있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로 꽃을 피워야 할 10대 청소년 12명이 목숨을 잃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태원 참사로 꽃을 피워야 할 10대 청소년 12명이 목숨을 잃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어떤 이별이든 사람들에겐 힘겹게 다가온다. 그 이별이 납득하지 못할 사고 때문이라면 받아들이는 게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8년 전 봄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30여년이 다 되도록 잊히지 않는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그런 아픔을 남겼다. 지난 10월 29일 수많은 목숨이 덧없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번 이태원 참사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숱하다. 생존자나 유가족, 지인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퍼져나간 현장 동영상이나 자극적인 뉴스에 노출된 사람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겪은 충격도 상당했다.[※참고: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158명 중엔 중·고등학생 등 10대 청소년도 12명(11월 28일 기준)도 포함됐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10월 30일 아침부터 긴급대응에 참여했다. 센터 내부에 이태원 사고 청소년심리지원본부를 두고, 서울시 24개 자치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특별상담실을 열었다. 이 상담실에선 24시간 1388전화상담과 즉각 대면 상담을 진행했다. 경우에 따라 학교 내 특별상담실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상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학교를 방문해 심리적 안정화 교육도 진행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 속에 어느덧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한달 정도면 많은 이들이 겪었을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반응은 많이 감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개인차가 클 수밖에 없다. 평소와는 다른 이상 반응으로 일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울거나 감각 없음을 호소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그렇다면 내 아이 혹은 주변인이 심리적 외상으로 고통을 겪을 땐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흔히 ‘트라우마’라 불리는 심리적 외상은 너무 강한 충격을 받아 정신의 방어벽이 무너져 생기는 현상이다. 강한 충격의 사건이 발생하면 평소와 달리 무감각, 불안정감, 불면증, 지나친 경계나 회피, 민감함 등의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자녀에게 이런 반응이 나타난다면 부모로선 놀라고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는지 더 많이 묻고, “잊어버리라”면서 섣부른 조언을 하곤 한다. 하지만 부모의 이런 태도는 자녀가 심리적 안정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심리적 외상을 겪은 직후 2~3일 이내엔 절대적인 안정이 중요하다. 사건을 꼬치꼬치 묻기보다는 함께하면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심리적 외상 반응은 당연히 나타날 수 있는 정상 반응이며, 차츰 회복할 것이란 걸 알려줘야 한다. 사건 관련 이야기를 하거나 뉴스를 보는 등 자극을 줄 수 있는 행동은 피하는 게 좋다. 충격 탓에 불안한 상황에서 당시를 떠올리는 건 다시 한번 사건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심리적 외상 반응은 한달여가 지나면 줄어든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반응이 지속하거나 일상생활이 어렵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일례로 ▲먹고 씻고 자는 등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경우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 등엔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여러 연구 결과, 심리적 외상엔 인지치료가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사건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거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 생존자라면 이태원에 간 것이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의 선택을 탓할 수 있다.

참사로 친구를 잃은 경우, 잡고 있던 친구의 손을 놓친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이태원에 가자는 친구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자책할 수도 있다. 자신이 운이 나쁜 사람이라서 주위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건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보단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거다. 이때 인지치료를 통해 관점을 바꿔주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늘 그렇듯 모든 해결의 실마리는 문제를 올바로 보는 것에 있다. 이번 참사의 피해자들이 자책을 멈추고 편안히 숨 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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