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회초리는 매서웠다. 4ㆍ10 총선은 야당 압승과 여당 참패로 귀결됐다.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175석, 여기에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진보당까지 포함하면 192석의 ‘거야’가 탄생했다.총선에서 표출된 민의는 안정보다 견제와 변화였다. 선거기간 내내 정권심판론이 다른 이슈를 압도했다. 국민의힘이 ‘이(이재명)ㆍ조(조국) 심판론’으로 맞서며, 각종 초대형 공약을 쏟아냈지만 통하지 않았다.여당의 참패는 집권세력 전체에 대한 심판 성격이 짙다. 국민은 소통과 타협을 외면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통
4년 전인 2020년 4ㆍ15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던 위성ㆍ비례정당 3곳은 평균 288일 존속했다. 총선 당시 합당은 없을 것이라 공언한 열린민주당을 빼면 평균 존속기간은 92일에 불과하다. 그러니 공약이 현실화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서도 이들 3곳은 존속기간 137억원에 이르는 국가보조금을 챙겼다. 이번 4ㆍ10 총선에서도 위성ㆍ비례정당들이 국민을 위하겠다면서 공약을 내놨다. 과연 이들은 정당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참고: 총선이 끝나면 공약은 이내 잊힌다. 의회 권력을 사실상 독점해온 두 거대정당이든 새로운 정치지형을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한다. 비극의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를 껄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슬픔에 무지한 사람이 돼간다.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무엇을 선택해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내몰린 자의 딜레마와 후유증을 그린 소설이다. 1947년 미국 남부 출신 청년 스팅고는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한다. 스팅고는
박일문 작가가 지난 16일 죽었다. 자살로 알려졌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작가다. 1992년에 발간된 이 소설은 ‘후일담 문학’으로 분류된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뤄진 1990년대에 자신이 관통해온 운동권 세대의 방황을 그렸던 작가였다.그래서 나에게 박일문 작가의 죽음은 한 세대의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글이 발표되고 10여년 뒤 그는 성범죄로 교도소에 갔다. 그가 운동권 성폭력 실명공개의 대표 사례로 뽑혔음을 생각했을 때 그의 삶은 어떤 면에서 ‘클리셰(clich·진부한 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주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쓰는 소설들이 많아졌다. 거대한 참사나 사건을 쓰면서 피해자들이 기억하고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사생활을 재현하는 문제가 생겼다. 2024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재현의 윤리는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동아일보 2024년 중편 신춘문예 당선작이 논란에 휩싸였다. 중편 당선작 ‘호모헌드레드(이상민 작가 作)’가 오토픽션(auto fiction)이라는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토픽션이란 자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auto’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
유행을 주도하는 패션 브랜드와 플래그십 스토어가 줄지어 있는 가로수길(서울 신사동)과 명동. 한국을 대표하는 두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 성장했지만, 그 때문에 팬데믹 국면에선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사라진 지금, 두 상권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명동은 활기를 되찾고 있는 반면, 가로수길은 그렇지 못하다. 왜일까. 서울 상권을 140개로 나눠보자. 이중 가장 매출이 잘 나오는 상권은 어딜까. 많은 이들이 명동을 꼽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인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의 명동월
올해도 예산안 심의는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긴 늑장·졸속·짬짜미 심사에다 나라살림을 정쟁 대상으로 삼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새해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정시한을 19일 넘긴 것이자 3년 연속 지각 처리다. 여야가 합의 처리한 예산을 보면 총지출 규모가 정부 원안보다 3000억원 적은 656조6000억원이다. 정부 원안에서 4조2000억원을 깎고, 3조9000억원을 증액했다. 국가채무와 국채 발행 규모를 정부안보다 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정악화 소지는 줄였다.정부가 삭감하며 현장의 반발을
윤석열 정부의 2기 내각 진용이 윤곽을 드러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리를 넘겨받는 것을 비롯해 국토교통·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중소벤처기업·국가보훈부 등 6개 부처 장관 후보자들이 4일 지명됐다. 12·4 개각으로 바뀌는 6명의 1기 내각 장관들 모두 내년 4월 총선에 나올 움직임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으로선 경쟁력 있는 인물을 차출하고 싶겠지만, 정부 정책 책임자들이 동시에 썰물처럼 선거판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는 보기에 좋지 않다. 부처 장·차관이나 대통령 참모 이력이 ‘총선 후보 경력
우리는 총선을 200여일 앞둔 지난 9월 21대 국회의 법안 처리 현황을 살펴봤다. 당시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2만3656건(9월 11일 기준)에 달했지만 그중 국회 문턱을 넘은 건 단 28.8%에 불과했다. 국회에서 낮잠만 자는 법안 중엔 민생법안도 숱하게 많았다. 그후 80여일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민생이 얼어붙고 있다. 고금리·고물가에 허덕이는 서민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나아질 거란 희망’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이
#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정부의 지방소멸 대응책이 실패하자,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플랜B’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파티 명소로 떠오른 양양이 이를 입증한 사례다. # 흥미로운 건 ‘관광’을 유도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로컬 스타트업도 있다는 점이다. 중장기 숙소 중개 플랫폼 미스터멘션이 대표적이다. 로컬 혁신 전문가 이준호 지역혁신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부회장과 함께 ‘로컬 르네상스’를 꿈꾸는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시간, ‘이준호의 로+네상스’ 2편이다.소멸 위기에 놓인 여러 지자체의 부러움
1420억원.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등 큰 선거를 두차례 치른 2022년, 정당들에 지급한 국고보조금 규모다. 사상 최대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양대 정당이 각각 600억원 넘는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정의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도 수십억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국회의원이 없는 민생당에도 18억원을 지급했다. 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국가가 정당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지급하는 것이다(정치자금법 제3조 6호). 정당 보조금은 1980년 제정한 제5공화국 헌법에 처음 명문화한 이후 정당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어묵 한 개 2000원, 탕후루 5000원, 랍스터구이 2만원…. 명동에서 팔고 있는 길거리 음식 가격이다. 바가지요금 논란에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한차례 가격을 내렸다지만, 여전히 혀를 내두를 만큼 비싸다. 몇년 동안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발걸음이 뚝 끊겼던 탓에 ‘이참에 본전 뽑자’는 심리가 꿈틀대는 걸까. “6년 5개월의 기다림 끝에 유커가 돌아왔다.” “한중 수교 31주년 기념 ‘유커 맞이’ 총력.” 최근 면세ㆍ관광업계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유커맞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8월 11일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 비
한국작가회의 기관지인 『내일을 여는 작가』 2023년 봄호(82호)가 최근 출간되었다. 이번 호의 기획 특집은 '기후 재난과 참사'로, 기후와 재난의 관계에 대한 신승철의 진단, 문종필의 「방구석 시인 유튜버」를 통한 현실 인식 등 다양한 시각을 담았다. 또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어머니와 태안화력발전소 희생자 김용균 어머니와의 대담을 실어 사회적 문제를 짚어냈다.‘나의 문학론’에서는 권서각 원로 시인과 도재경 젊은 소설가의 단상이 소개되었다. 권서각 시인은 시 쓰기와 농부의 생존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도재경 소
국회의원들이 가장 즐겨 쓰는 어휘는 바로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없다. 그동안의 경험치 때문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들은 국회 운영 개선 관련 법안과 민생ㆍ개혁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면서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그런데 그들이 처리하겠다는 법안은 수준 이하의 내용이었다. 지난 4일,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었다. 이날 김 의장 주재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양
용산구청은 2019년 ‘경리단길(이태원2동)’에서 보행정비사업을 추진했다. 이곳을 ‘다시 오고 싶은 거리’로 만들겠다는 구상에서였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23년, 용산구청은 이번엔 ‘용리단길(한강로동)’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 보행로를 정비한 경리단길에선 기대한 만큼의 ‘다시 찾는’ 효과가 창출됐을까. 용리단길은 또 어떨까.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 사이. 한강대로에서 동쪽 골목길로 들어가 보자. 한강로2가로 불리던 이곳은 몇년 전 새 별명을 얻었다. 유명한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즐비했던 ‘경리단길’
# 2022년 10월 15일 새벽 6시께,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 SPC그룹 계열의 SPL 평택공장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해당 배합기엔 뚜껑과 뚜껑을 열면 작동을 멈추는 연동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 배합기에 뚜껑이 없었던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효율성’ 때문이다. 매번 뚜껑을 여닫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들고,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거다. 노동자의 안전보다 효율성이 중요했단 방증이다. # SPC 측은 잘못을 시
지난 1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 중앙도서관에서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가 「여기 자식을 잃은 두 어머니가 있습니다」라는 이름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본 간담회는 이태원 압사사고의 사망자 故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와, 일명 ‘컨베이어 벨트 사고’ 라고 불리는 태안 화력 발전소에서 사망한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초청되었고, 작가회의에 소속된 40명의 작가들이 참석하였다.이날 조미은 씨는 이지한 씨가 사망하던 순간을 회고하며, 극단적인 선택도 두 번이나 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이번 사고를 통해 정부와
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만나지 못했던 가족·친지들이 3년 만에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세배도 하게 됐다. 일상 회복에 따라 귀성·귀경객은 물론 여행객이 동시에 몰리며 설 연휴 기간 교통 혼잡이 상당할 전망이다.명절이면 흔히 ‘민심의 용광로’가 열린다고들 한다. 차례와 밥상머리에서 으레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이것이 여론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달라 보인다. 이미 지난해 추석 때부터 그런 흐름이 있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모여도 과거보다 정치 이야기를 덜 한다. ‘정치 말
한국작가회의는 지난달 30일,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추모시 낭독회(이하 낭독회)”를 이태원 합동분향소에서 열었다. 이날 추모시 낭독회에는 박일환 시인이 사회를 맡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윤정모 소설가가 추모사를 이어갔다.특히 이도흠 교수는 이날 연대사에서 “158인의 피지도 못한 채 져버린 꽃이 있다”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영원한 단절을 곱씹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근처에 있던 극우 운동가는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기도 했다.이날 낭독회에서는 시 낭독을
참 이상하다. 대형 참사가 터졌는데, 상부 사람들은 온전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만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다. 현장 관계자에게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건 아닐진대, 왜 이런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걸까. 고위 공직자의 무고와 책임 회피에 벼랑에 몰렸던 이순신을 통해 그 이유와 답을 찾아보자. 함경도 병마사 이일은 순신에게 ‘패전사유를 써서 올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억지 자백서를 받아 조정에 패전했다고 보고한 근거로 내놓을 심산이었다. “제가 녹둔도를 수비하는 군사가 적은 것을 걱정해 증병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