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➌ 전문가의 일침
인터뷰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회기 지난 예산안 처리는 범법
예산 법률주의로 국회 기능 살려야

639조원. 정부가 내놓은 2023년 살림살이 규모다. 당연히 국회는 이 예산안이 적절한지 따져보고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 이 조율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다. 국회가 법정기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않는 바람에 예산결산위원회 내 소위원회의 하부조직인 ‘소小소위원회’에서 세부사항을 조정했다. 국회법에 근거조항도 없는 조직이다. 정기국회 종료일인 9일에도 예산안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의 의견을 들어봤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를 위한 법적 기한을 넘긴 건 헌법을 어긴 범법행위다.[사진=뉴시스]
국회가 예산안 처리를 위한 법적 기한을 넘긴 건 헌법을 어긴 범법행위다.[사진=뉴시스]

✚ 2023년 예산안 처리가 여야 합의 불발로 무산된 후 예결위 소위원회의 하부조직인 ‘소小소위’에서 예산 심사가 이뤄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회의 범법행위다.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범죄자나 마찬가지다.”

✚ 범법행위라고 하는 근거가 뭔가.
“헌법 제54조 2항에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해야 한다’고 돼 있다.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반드시 의결을 하라는 거다. 국회의 의무인데, 이를 안 지켰으니 헌법을 어긴 거다. 처벌 조항이 없으니까 더 그러는 것 같다.”

✚ 헌법을 어긴 책임은 어느 쪽에 있다고 보나. 
“국회법에 따르면 교섭권을 가진 정당 간에 합의가 있을 경우, 기한을 넘길 수 있다. 그렇다면 거대 양당(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합의를 했다는 거다. 따라서 거대 양당이 모두 공범이다. 하지만 법을 어겼다는 것보다 더 화나는 건 예산안을 소소위가 검토하고 있다는 거다.”

✚ 이유가 뭔가. 
“현재 여야는 쟁점 예산 몇개만 남았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민생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더구나 소소위는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뭘 얼마나 증액하고 감액하는지 전혀 공개가 되지 않는다. 정치적 이슈에 가려 정작 중요한 이슈들은 살펴볼 수 없다는 점에서 예산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 소소위를 통한 예산 합의를 어떻게 예상하고 있나.
“분명 여야는 스스로 ‘대타협’이라 하면서 합의점을 들고 나올 거다. 하지만 밀실합의일 뿐이다. 심도 있게 검토해서 쓸데없는 예산을 줄인다면 국회의 권위도 서겠지만, 늘 그래왔듯 작은 기대조차 걸기 어렵다. 향후 어떤 예산이 줄었는지 다 따져볼 것이다.” 

✚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하다 보니 준예산 편성 가능성도 나온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국가 사업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예산안 합의 불발로 정부기관이 잠정폐쇄되는 미국의 ‘셧다운(shut down)’과 같은 여파를 우려하는 거다. 예산을 적기에 투입하지 못해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큰 영향이 없다.”

준예산이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일인 1월 1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정부가 임시로 전년도 예산에 준하는 경비를 집행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돼 있다. 준예산으로는 의무지출 집행만 할 수 있고, 재량지출 집행은 불가능하다. 

✚ 왜 영향이 없는가. 
“준예산을 편성하더라도 미국처럼 정부기관이 잠정폐쇄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준예산을 적용해도 법이 허용한 기존 사업의 지출은 할 수 있다. 타격을 받는 건 대부분 신규 사업들이다. 다만 건국 이후 준예산을 편성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만큼 심리적 압박감이 있지 않겠나 하는 정도다.”

✚ ‘쪽지예산’이 판을 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사실 19대 국회에서 쪽지예산을 근절하자고 의원들을 많이 설득하고 다녔다. 이후 검토가 끝난 상황에서 치고 들어오는 좁은 의미에서의 쪽지예산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쪽지예산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정황들을 발견했다. 이번 소소위를 통해서도 쪽지예산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 역시 추후에 연구주제로 다뤄볼 생각이다.”

거대 양당이 639조원의 예산안을 졸속으로 심사했다는 비판이 많다. 주호영(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뉴시스]
거대 양당이 639조원의 예산안을 졸속으로 심사했다는 비판이 많다. 주호영(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뉴시스]

 

✚ 아무래도 국회가 예산 법정 기한 내에 예산 의결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우려들인데,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할 방법은 없는가. 
“법을 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우선 관행화된 국회의 법 위반행위를 근절하려면 ‘예산 법률주의’가 도입돼야 한다. 예산 활동도 법 테두리 안에서 펼치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예산 활동이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어겨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국회의 예산안 처리도 마찬가지다. 이래선 안 된다.”

✚ 예산 법률주의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법개정이 뭐라고 생각하나.
“헌법 개정이다. 현재 헌법에선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증액이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제대로 된 예산안 검토를 할 수 있고, 예산을 법으로 정할 수 있다.”

✚ 국회의 권한을 더 늘려줘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 국회가 증액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정치적 증액이 늘어날 우려가 있는데. 
“예산은 원래 정치적이다. ‘정치적 증액’이라는 게 불합리한 증액을 우려하는 것이라면 그건 예산 편성 과정에서의 투명성 확보를 통해 풀어야 한다. 별개의 문제란 거다. 더구나 세계 주요 국가 중에 국회에 증액 권한이 없고 감액 권한만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부 국가에선 편성권까지 부여한다. 그 이유는 증액 권한이 있어야 감액을 할 수 있어서다.”

✚ 그게 무슨 뜻인가.
“현재는 증액을 하려면 정부(기획재정부)가 동의를 해줘야 하는데, 기재부가 싫어하는 감액을 하면 증액을 동의해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국회가 감액도 맘대로 못 한다. 실제 국회에서 이뤄지는 감액은 대부분 기재부가 의도한 것이다. 기재부가 감액할 수 있는 예산을 넣어두고 국회는 그 안에서 감액을 한다. 그래서 실질적인 감액이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 예산안 수정률은 1%대에 불과하다.”

✚ 정부가 증액 권한을 활용해 국회의 감액 권한을 쓸모없게 만든다는 건가.
“그렇다. 역설적이지만 국회에 증액 권한을 줘야 실질적인 감액이 가능해진다.”

✚ 예산을 법률로 정하면 정부의 반발이 클 것 같다.
“맞다. 예전에 헌법개정안을 논의할 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나가서 그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재부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예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예산의 법제화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면 정부가 예산을 다른 곳에 돌려쓸 수 없다. 맘대로 예산을 편성하고, 바꾸는 것도 할 수 없다. 그걸 어기면 법적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대한 국민 혈세를 쓰면서 철저하게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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